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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원도 갑천
▲ 봄나물을 캐는 할머니 강원도 갑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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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땅은 겨우내 품고 있던 뿌리의 몸에 초록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그 초록생명의 기운은 향기롭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이긴 냉이뿌리나 도라지나 더덕 같은 것들은 언땅이 녹자마자 캐면 향기가 더욱 진합니다.

고난의 깊이만큼 향기도 깊은 셈입니다. 다시 피어날 봄, 그 봄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어떤 고난도 달게 감내하며 감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추위에 얼어터진 것들도 있으니, 감히 고난받는 타인에게 '감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강원도 갑천
▲ 옥수수를 심는 할머니 강원도 갑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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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씨앗을 뿌립니다. 씨앗이 흙을 만나 변화되어 이내 초록의 빛으로 싹을 내면, 바람과 햇살과 비와 밤의 별과 풀섶 사이의 풀벌레들이 친구가 되어 줍니다.

씨앗 한 알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은 상징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우리는 작은 씨앗 한 알에 들어 있는 우주를 먹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우주를 먹고 사는 생명, 그래서 우주를 품고 사는 존재이고, 그런 존재답게 다른 우주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도리인 것이지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노부부
▲ 파종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노부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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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늘의 일이지만, 씨앗을 뿌리는 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하늘의 일과 사람의 일을 착각하면 삶이 피곤해 지고,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집니다.

국민을 섬기는 종인지, 군림하는 독재자인지도 착각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힘들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 씨앗이 하늘일 수는 없는 것처럼, 국민을 섬기는 종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조금 더디더라도 말입니다.

겨울감자를 캐는 아낙들(제주)
▲ 감자캐기 겨울감자를 캐는 아낙들(제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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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사람들, 구약성서를 기록한 히브리어에서는 '암하레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무지렁뱅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신은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뤄가시고, 예수도 그들의 친구가 되었으며, 그들을 높여주었습니다.

'먹는 문제'만큼 우리에게 원초적인 것은 없습니다. 의식주 중에서도 '식'의 문제는 사실 가장 중요합니다. 당장 입을 옷이 없어도, 잠잘 곳이 없어도, 먹을 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을 생산하는 이들은 거룩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로 높이 대접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곡식을 선별하는 할머니(제주)
▲ 곡식 곡식을 선별하는 할머니(제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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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제시대의 수탈은 물론이고, 5.16구테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땅의 사람들은 교묘하게 착취당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허울좋은 빈 껍데기였고,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에 몰두한 정권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기 위해 농촌을 피폐화 시키는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도시, 공장주변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농어촌의 젊은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사회 제반시설도 도시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이제 대부분의 농어촌은 낙후되었고,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노인들만 남아있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바닷가 바위틈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할머니(제주)
▲ 삶의 터전 바닷가 바위틈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할머니(제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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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들은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각종 무역규제들을 풀어주면서 대기업 중심의 수출을 보장해주기 위한 정책일변도로 진행하다보니 늘 피해자는 농어민입니다. 한미FTA는 물론이요, 대부분의 무역체결은 가진 자들의 이익만을 보장해 줍니다.

농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면, 당연히 그 수익을 농민들과 나눠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으며, 농민들이 애타게 최저농산물 가격이라도 유지해 달라치면 외면해 버렸습니다.

썰물 바다에서 조개를 캐는 할머니(제주)
▲ 조개캐기 썰물 바다에서 조개를 캐는 할머니(제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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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농어촌은 살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생명을 살리는 먹을거리를 생산해내는 곳, 그곳이 피폐화된 후에도 여전히 이 나라는 건강할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 수입농산물을 싼 값에 수입한다지만, 우리 나라의 생산기반이 다 무너진 후에도 여전히 먹을거리를 싼 값에 수입할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요. 그때는 후회를 해도 이미 늦습니다.

수확한 마늘을 다듬고 있는 할머니
▲ 마늘 수확한 마늘을 다듬고 있는 할머니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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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땀 흘려 일해도 이들의 삶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맨날 정쟁이나 일삼고,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는 이들이 국민 세금으로 고액연봉을 받고, 뉴스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맨날 입으로만 국민경제, 민생 이야기를 하면서 오로지 정쟁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나라 꼴이야 어찌되든 말든 정권만 잡으면 되고, 국민 세금이야 어떻게 쓰이든 말든 제 주머니만 챙기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했어도 지금껏 떵떵거리며 살아올 수 있었던 대한민국, 그 역사가 사실은 부끄러운 것이지요.

수확하는 기쁨만큼 그들의 삶도 기뻐야 정상이 아닌가?
▲ 감자캐기 수확하는 기쁨만큼 그들의 삶도 기뻐야 정상이 아닌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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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의 후손도 아니고,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던 이들의 후손이 떵떵거리고 살아가고 있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수많은 이들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되었어도 퇴임 후에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 나라입니다. 아버지가 쿠데타를 일으켰어도 대통령이 되는 나라요, 부친의 삶을 미화하기 위해 마음만 먹으면 역사교과서도 바꿀 수 있는 미친 나라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들, 땅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강요당하고 있습니까? 그들 스스로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일까요? 선거철만 되면, 자신들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표를 주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수확한 감자를 크게에 따라 선별한다.
▲ 감자선별 수확한 감자를 크게에 따라 선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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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홀대받아야 할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아닙니다. 땅의 사람들은 홀대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거룩하게 높임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은 생명과 직접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심판 받아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온갖 정쟁만 일삼고, 말로만 민생을 외치는 사람들, 선거철에만 납작 엎드리는 사람들, 제 생각과 맞지 않으면 이념몰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옵니다. 긴 겨울, 냉이나 더덕이나 도라지 같은 것들이 혹한 덕분에 더 깊은 향기를 간직하는 것처럼, 겨울공화국 같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진짜 사람의 향기를 깊게 품은 이들이 자라나길 바랄 뿐입니다.


태그:#땅의사람들,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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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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