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딩보체(4350m)입니다. 루클라(2800m)에서 산행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일이 지났습니다. 해발 4천 미터 중반은 해수면에 비해 산소가 절반 정도여서 산을 오를수록 호흡이 불규칙해집니다. 들숨과 날숨의 균형이 어긋나면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얼굴과 헐어버린 인중

고도에 적응하지 못한 몸은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소 때문에 얼굴은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고 감기 때문에 코를 자주 풀다보니 인중이 헐었습니다.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입술은 가뭄 논바닥처럼 갈라졌으며 사타구니는 마찰로 인해 헐었습니다. 발바닥 곳곳에는 물집이 생겨 휴식을 취할 때에는 바늘과 실로 치료를 합니다.

해발 4,350m 딩보체 마을. 칼라파타르와 추쿵 갈림길이도 함.
▲ 딩보체 마을 모습 해발 4,350m 딩보체 마을. 칼라파타르와 추쿵 갈림길이도 함.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몸 전체가 총체적인 난국임에도 마음은 맑아집니다. 매일 새롭게 연출되는 히말라야 모습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황홀합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히말라야를 걸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라고 이야기 한 지인의 말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딩보체 마을에서 본 아마다블람(6,856m) 모습
▲ 아마다블람 딩보체 마을에서 본 아마다블람(6,856m) 모습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양지바른 곳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아마다블람(6856m)을 바라봅니다. 아마다블람의 자태는 고도에 따라 다른 모습입니다. 오늘은 동네 앞산처럼 편안해 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가장 위험한 산으로는 K2를 꼽는 반면 가장 아름다운 산은 아마다블람이라고 산악인들은 말합니다. 7천, 8천 미터 고봉이 즐비한 쿰부 히말라야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의 멋을 맘껏 뽐내고 있습니다.

소마레 마을부터 이틀을 함께한 개의 고고한 모습
▲ 쿰부의 인연 소마레 마을부터 이틀을 함께한 개의 고고한 모습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한밤중, 별을 보기 위해 객실 문을 여는데 무엇인가 발에 밟힙니다. 순간 긴장을 하여 내려다보니 검은 개 한 마리가 문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오후 소마레(4010m) 마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산을 함께 올랐습니다. 인적이 뜸한 겨울 히말라야에서는 개도 사람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인연은 다음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쿰부 히말라야의 '3리 3라'

딩보체는 로부제와 추쿵의 갈림길입니다. 로부제는 쿰부 트레킹 목적지인 칼라파타르(5545m)로 손쉽게 갈 수 있는 반면 추쿵(4730m)에서는 꽁마라 패스(5535m)를 넘어야 칼라파타르로 갈 수 있습니다. 쿰부 히말라야에 '3리 3라'가 있습니다. '3리'는 '추쿵리, 칼라파트라와 고쿄리'입니다. '​3라'는 '꽁마라, 촐라 그리고 렌조라'입니다. 모두 해발 5천 미터 중반을 넘어야 하기에 많은 준비와 체력이 필요합니다.

추쿵을 선택하였습니다. 가이드는 폭설 때문에 꽁마라를 넘을 수 없다고 조언하지만 무모한 저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판단은 추쿵에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이드의 판단은 절대적입니다. 한 번의 실수로 목숨까지 잃을 수 있기에 만용은 금물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에 추쿵행을 선택하였습니다.

추쿵은 쿰부의 병풍입니다. 7천, 8천 미터 봉우리가 추쿵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좌측에는 눞체(7893m)와 에베레스트(8848m)가 뒤편에는 로체(8516m)와 임자체(6198m)가 우측에는 아마다블람(6856m)이 버티고 있습니다. 추쿵은 어머님의 품 안에 있는 아기처럼 편안해보입니다.

추쿵 뒷편으로 보이는 임자체(6,198m) 모습
▲ 임자체 추쿵 뒷편으로 보이는 임자체(6,198m) 모습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쿰부 히말라야에서는 매일 다른 봉우리를 만났습니다. 루클라에서 남체까지는 탐세르크와 캉데가를, 남체에서 딩보테까지는 아마다블람을 바라보며 걸었는데 오늘은 로체와 아일랜드 피크(임자체)를 만났습니다. 같은 듯 서로 다른 설산 모습은 내가 왜 걷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눈이 화려한 것과 달리 추쿵으로 오르는 발걸음은 더디기만 합니다. 해발 4천 미터 중반을 넘었기에 최대한 천천히 걸어야하며 자주 쉬며 물을 마셔야 합니다. 수분은 땀이나 오줌뿐만 아니라 호흡을 통해서도 빠져나갑니다. 일상생활에서는 하루 1.5에서 2리터의 수분이 필요하지만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는 4, 5리터의 물을 마셔야합니다. 거대한 개활지와 너덜지대로 이루어진 트레일은 ​완만하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습니다.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서 살고 있는 야크 모습
▲ 야크 모습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서 살고 있는 야크 모습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생명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메마른 대지에서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야크는 히말라야 고산지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입니다. 운송 수단, 옷감, 고기 그리고 배설물은 건축 재료이자 땔감으로 이용됩니다. 뿐만 아니라 야크는 어린 풀들을 송두리째 뜯지 않고 뿌리를 남깁니다. 풀을 뿌리채 뽑아 먹는 양과 달리 다른 생명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개발을 앞세워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문명 세상에서 온 저에게 야크는 자연과의 상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

타루초가 흩날리는 작은 추모탑이 보입니다. 비명에는 세 명의 산악인 이름이 있습니다. 모두 남체 남벽을 등방하다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그중 한 분은 세계적인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1949~1989)입니다. 폴란드 출생의 산악인이 그는
8천 미터 14좌의 두 번째 완등자입니다.

세 명의 산악인을 추모하는 추모비. 세계적인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 이름도 있음.
▲ 추모비 세 명의 산악인을 추모하는 추모비. 세계적인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 이름도 있음.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산악인은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1919~2008)이고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처음 완등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66)입니다. 세상은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메스너는 16년 걸려 완등하였지만 그는 8년 만에 끝냈으며 로체를 제외한 나머지 13좌는 새로운 루트를 만들며 등반하였습니다.

그는 "여러분은 에베레스트를 두 번 째 오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합니까"라며 2인자의 설움을 토로하였습니다. 1등만 중시하는 것은 히말라야와 저잣거리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1989년 로체 남벽에서 로프가 끊어지는 바람에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목숨까지 버려가며 히말라야를 올라야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지만 산악인들의 발길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딩보체에서 세 시간을 걸어서 추쿵에 도착하였습니다.

해발 4,730m에 있는 추쿵 롯지
▲ 추쿵 롯지 모습 해발 4,730m에 있는 추쿵 롯지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올해 1월 네팔 쿰부 히말라야를 다녀온 후 트레킹 기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4월 25일 지진의 발생으로 네팔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고 저는 4월 25일 ‘히말라야에 아들 남겨 놓고 하산하는 아버지’라는 기사를 끝으로 멈추었습니다.

네팔의 바람은 예전처럼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네팔 관광청에서는 'Back on Top of the World'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네팔과 히말라야에 관광객들이 찾아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히말라야 트레킹 기사를 작성을 재개합니다.



태그:#히말라야, #쿰부, #딩보체, #추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