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추석을 앞둔 9월 24일, 전주시외버스터미널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번잡했다. 추석 연휴기간에는 서울과 부산, 대구 등 전국 주요도시를 가는 버스표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전주시외버스터미널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전주가 고향인 누군가와 고향을 찾아 떠나는 누군가가 지나치는 터미널. 전주시외버스터미널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이들이 이곳을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4일 오후 2시, 이곳 터미널에서 군산과 부안, 순창과 진안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10장의 표를 구매했다. 기자회견을 겸한 이 표 구매에 정보과 형사들부터 터미널 관계자들까지 동태를 살피러 터미널에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이 표는 1시간 후에 환불을 해야 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체장애인을 태울 수 있는 시외버스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진안, 남원, 고창 등으로 출발하는 시외버스표. 이 표를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 구매했다면, 사용할 수 없는 표가 된다. 장애인 차별의 한 풍경이다.
 전주에서 진안, 남원, 고창 등으로 출발하는 시외버스표. 이 표를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 구매했다면, 사용할 수 없는 표가 된다. 장애인 차별의 한 풍경이다.
ⓒ 문주현

관련사진보기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법률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시외버스 회사들은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단 한 대도 구비하지 않았다. 2014년 10월 기준으로 고속버스 1905대와 시외버스 7669대가 전국 곳곳을 다닌다. 하지만 이들 버스는 전동휠체어를 탈 수밖에 없는 지체장애인들에겐 무용지물이다.

10장의 표를 구매하고 장애인들이 탑승구로 향했다. 입구에 서자 한 버스기사는 "접어져요? 접어져요? 안 접어지면 못 들어가요. 되는 것을 이야기 해야지"라며 짐칸 문을 닫고 출발을 준비한다.

"가지 말라고요. 우리도 버스 타고 싶다니까요."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 활동가가 마이크로 소리를 높혔다. 한 시간 가까이 이런 갈등이 반복됐다. 장애인들은 버스 앞에서 섰지만, 버스기사는 이들의 표를 받지 않았다. 버스들은 비장애인들을 속속 태운 채 목적지로 떠났다.

"장애인들도 고향가고 싶어요.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지켜지고 않아요."

언론사 기자를 포함해 현장에 있던 비장애인들은 이와 같은 외침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되어 버렸다.

장애인들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도 있었지만, 장애인들이 터미널에서 요구하는 것을 불편하게 바라본다. 멀리 이들의 모습을 채증하는 광경도 보인다.
 장애인들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도 있었지만, 장애인들이 터미널에서 요구하는 것을 불편하게 바라본다. 멀리 이들의 모습을 채증하는 광경도 보인다.
ⓒ 문주현

관련사진보기


"시외이동권 보장 요구 정당하지만, 대책은 없다"

터미널 관계자들에게, 비장애인들에게 하나의 '쇼'로 보인 이날의 외침에 대해 지난 7월 10일 법원은 이미 "정당한 요구"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지영난)는 장애인단체들이 금호고속과 서울과 경기권 시외버스회사들과 국토부, 서울시, 경기도를 상대로 제기한 '시외이동권 보장' 소송에서 교통사업자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또한, 국토부 등이 휠체어 승강설비를 설치하는 계획이나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것도 차별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다만, 법원은 교통행정기관이 교통약자 이동편의를 위해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지원하는 등의 교통약자법에 따라 시외·고속버스에 대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부분은 기각했다).

이 소송은 '시외버스와 광역급행버스, 직행좌석버스, 좌석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라'는 내용의 소송이었다. 24일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들의 외침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재판부의 이런 판단에도 장애인들의 시외이동권 보장의 길은 요원하다.

국토부는 최근에서야 장애인들의 지역 간 이동권 보장을 위해 고속버스 전동휠체어 장애인 탑승 설비를 갖추는 시범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는 비용과 안정성 문제 등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범사업이 빠르면 2017년부터 시작된다고 볼 때, 시외버스까지 도입되는 것은 2020년이 넘어서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설과 추석에도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두고 떠나는 시외버스를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외이동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