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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사박물관은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과 주제별로 구성하였으며,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수원의 자연환경', '선사 역사시대의 변천사', '60년대 수원만나기', '근대 수원의 문화'로 과거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현대의 발전하는 역동적인 수원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서예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초로 건립한 상설전시 서예 전문 박물관으로, 2003년 우리나라 대표 서예가 근당 양택동 선생으로부터 기증받은 유물을 계기로 건립되었으며 약 6천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예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서예의 이해', 서예의 감상', '문방사우' 등의 주제로 전시되어 있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영조와 정조의 어필 등이 있다.

'화성도' 지지대비 부근에 비각이란 글씨가 보인다.
▲ 화성도 부분 '화성도' 지지대비 부근에 비각이란 글씨가 보인다.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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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박물관에서는 수원시내 초등학교 3학년 사회과목 '수원이 좋아요'와 5학년 한국사 수업과 연관하여 하루에 1개반씩 박물관을 방문하여 재미있는 유물 속 수원역사 이야기를 듣는다. 코스별 선택에 따른 다양한 체험으로 현장학습이 진행되고 있어 초등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박물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주말교육, 나눔교육, 한국사교육, 청소년을 위한 교육, 성인을 위한 인문학강좌인 박물관대학, 만화그리기, 서예 문인화 전각강좌 등이 있어 박물관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수원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수원, 수원사람들의 독립운동'이 11월 8일까지 열리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의 치열했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수원사람들을 통해 광복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자 마련된 기획전시이다. 이런 뜻있는 전시는 많은 수원시민이 관람하면 좋겠다.

'화성도' 만석거 부근, 만석거 여의교 영화정이 보인다.
▲ 화성도 부분그림 '화성도' 만석거 부근, 만석거 여의교 영화정이 보인다.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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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박물관 2층 역사박물관에 가면 '화성도(華城圖)'란 그림이 있다. 조선, 19세기 후반에 그려졌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이고,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열두 폭 화면에 화성을 부감법과 평행사선식 구도로 그린 화성도이다. 총 둘레 4600보의 성곽에 4대문과 5암문, 두 곳의 수문을 비롯하여 옹성, 장대, 공심돈, 봉돈, 노대, 각루, 적대, 포루, 치성, 포사 등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을 비롯하여 산천과 성곽을 중심으로 중요한 지형물인 행궁과 관아건물, 누정, 사묘 등이 잘 묘사하였다.

이 밖에도 국왕의 행차와 관련 행사의 모습이 성 곳곳에서 펼쳐지는 모습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전해 줄 정도로 세세하고 꼼꼼한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 산은 주로 미점으로 나타내었고 단풍이 든 수목들이 배치되어 계절은 가을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화성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지지대고개에서부터 행차하는 모습이 보인다. 지지대고개를 지나 만석거의 여의루, 영화정을 지나 장안문으로 들어가는 행렬과 전체적인 수원화성, 화성행궁 모습을 볼 수 있고, 매교를 지나 소황교, 옹봉, 대황교까지 자세히 그려져 있다.

'화성도' 장안문 옹성위에 누각이 없고, 길가에 표석이 보인다.
▲ 화성도 부분그림 '화성도' 장안문 옹성위에 누각이 없고, 길가에 표석이 보인다.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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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도'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몇 가지 읽어낼 수 있다.

첫째, 화성도에는 정조대왕 능행차길인 필로에 세웠던 표석이 몇 개 보인다. 장안문 앞 길가 좌측에 한 개, 향교 앞에 두 개, 옹봉 우측에 한 개, 대황교 우측에 한 개가 있다. '화성지' '필로'부분의 표석 설명과 방향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런데 장안문 앞에 있는 표석이 어떤 표석인지 궁금하다. 만석거(萬石渠)와 영화정(迎華亭)을 지나 장안문까지 가는 길가에 있는 표석은 대유평(大有坪), 영화역(迎華驛), 관길야(觀吉野) 세 개며, 모두 길 동쪽에 있다고 했는데, 장안문과의 거리나 위치로 봤을 때 영화역이나 관길야가 아닐지?

'화성도' 소황교, 옹봉, 대황교 부근에 표석이 보인다.
▲ 화성도 부분그림 '화성도' 소황교, 옹봉, 대황교 부근에 표석이 보인다.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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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화성도' 그림은 수원화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했기에 그림을 통해 '화성도'를 그린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화성도' 설명에는 19세기 후반에 그렸다고 했는데 그림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시기를 잘못 산정한 것으로 보인다. '화성도' 그린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두 가지 단서가 있다.

하나는 화성도 그림 오른쪽 위에 비각(碑閣)이란 글씨가 보인다. 지지대고개에 있는 지지대비를 그린 것인데 지지대비는 1807년에 세워졌으니 최소한 1807년 이후에 그린 것이다. 또 하나는 수원화성 장안문과 팔달문 옹성의 홍예위에 누각을 그리지 않았다. 1831년(순조 31)에 화성유수 박기수가 편찬한 '화성지(華城誌)' '성곽(城郭)'편 '북옹성' '남옹성' 조에 보면 갑신년(1824)에 2간 누각을 세웠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림에서 두 가지 사실로 볼 때 화성도는 19세기 전반인 1807년 이후 1824년 이전에 그려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화성도' 그린 시기를 미술사적으로 판단해 19세기 후반에 그렸다고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두 가지 단서로부터 19세기 전반에 그렸다는 추정에도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원박물관, #화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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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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