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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생산되고 공유되는 디지털 데이터들, 이 숨막히는 디지털 데이터 더미에 압사당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요. 만약 디지털 데이터도 나이를 먹고 병들어 죽는다면 어떨까요."

전 세계에서 매일 엄청난 속도로 생산되고 누적되는 디지털 데이터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성하게 해주지만 적지 않은 '비용'도 요구한다. 철없던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재미 삼아 올린 글과 사진이 유망한 청년의 취업을 좌절시키고, 무명 시절 팟캐스트에서 '개념 없는 농담'을 했던 스타연예인이 뒤늦게 논란에 휩싸여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일도 벌어진다.

지난 3월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라는 책을 펴낸 송명빈(46) 개발기획자는 그래서 모든 데이터에 사용자 스스로가 소멸시효를 부여할 수 있는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Digital Aging System)'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지난 6월 4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 1층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 개발기획자 송명빈씨가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 1층 로비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 개발기획자 송명빈씨가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 1층 로비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강한

소멸 없는 데이터 누적은 '대재앙' 초래

"지금 시스템은 일방적입니다. 디지털 데이터는 누군가 삭제하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하게 됩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가 진화함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더 큰 재앙이 올 것입니다."

그는 인류가 디지털 정보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데만 집중했을 뿐 지금까지 소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 사람들은 무한복제가 가능하고 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의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최근 유럽에서 '잊혀질 권리(특정 디지털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권리)'가 논란이 된 것처럼, 소멸하지 않는 디지털 데이터가 누군가에겐 가혹한 '족쇄'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인 이엠씨(EMC)의 '디지털 유니버스 보고서(IDC Digital Universe Study)'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데이터 총량은 해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 2018년 사물인터넷(IoT:모든 물건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네트워크)이 상용화하면 인간 뿐 아니라 전자화된 물건들도 데이터를 생산하게 된다. 디지털 데이터가 늘어나면서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는 사회, 그 기록이 영원히 저장되고 누군가에 의해 도용될 수 있는 사회'가 성큼 다가왔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주민번호 무단도용과 개인정보 무단수집 등을 포함한 개인정보 침해 신고 건수는 지난 2013년  17만여 건으로, 10년 전인 2003년의 1만7000여 건에 비해 10배 가량 늘었다. 개인이 무심코 노출한 신상정보가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영구불변한 것이 우리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댓글이 무한히 보존되는 것이 문제가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10년 이상 인터넷 관련 업무를 해오면서 느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케이블방송 온미디어(BTV)에 프로듀서(PD)로 입사했다가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KBS)의 인터넷 부서 등을 거쳐 한 대형통신사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틈틈이 뉴미디어와 방송정책 분야의 공부를 병행해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그가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아내 이경아(42)씨가 제자를 상담한 얘기를 해줬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된 제자가 찾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실명으로 인터넷에 댓글을 달면서 한 욕설이 시간이 한참 지나도 검색이 된다며 개명을 하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이씨는 "철없던 시절의 실수가 평생 주홍글씨로 남지 않도록 어른들이 대책을 세워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남편에게 말했다.

송씨는 기술실무자들의 도움을 받아, 입력 시점에 데이터의 소멸 시점을 지정하면 정해진 시기에 데이터가 사라지는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을 개발했다. 2013년 4월 아내 이씨와 공동명의로 디지털 소멸 원천특허를 취득했고, 그해 말 '잊혀질 권리 관리기' 개발을 완료했다. 이 기술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경제타운에서 우수아이디어로 선정돼 개발비 1억 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강원도와 손잡고 웹사이트 대상 사업화 착수 

그는 이 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특허관리회사인 마커그룹에 특허를 위탁했고, 마커그룹은 강원도와 손잡고 오는 11월 도청 웹사이트부터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DAS)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후 강원도 내 18개 군구 홈페이지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궁극적으로는 국내 모든 인터넷과 모바일 사이트에 DAS를 적용하는 것이 마커그룹의 목표다. 강원도는 MBC 사장 출신인 최문순 지사가 특별히 '잊혀질 권리'에 관심을 갖고 있어 이 사업에 앞장서게 됐으며 마커그룹과 함께 다음 달 중 춘천시에 전문기업인 '달(DAL:Digital Aging Laboratory)'을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지난 17일 발표했다. 

유럽의 경우 지난해 유럽사법재판소(ECJ)가 구글에 대해 "이용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디지털 기록을 삭제할 수 있도록 '잊혀질 권리'를 받아들이라"고 판결한 것을 계기로 스페인 등 각국에서 개인의 디지털기록 삭제요구권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업체들도 '게시중단요청'이나 '명예훼손신고' 등을 통해 합당한 사유가 인정된 게시물을 차단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처럼 데이터 입력 당시에 소멸 시점을 지정하고 자동 이행하는 기술은 '스냅챗'이나 네이버의 '타이머챗' 같은 메신저 서비스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 외에 세계적으로 선례가 없다고 송명빈씨는 강조했다.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 데이터를 입력할 때 데이터가 소멸될 시기를 함께 입력한다. 6월 5일 오후 11시 31분에 입력된 이 게시물은 24시간 뒤인 6일 오후 11시 31분에 자동 삭제된다.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데이터를 입력할 때 데이터가 소멸될 시기를 함께 입력한다. 6월 5일 오후 11시 31분에 입력된 이 게시물은 24시간 뒤인 6일 오후 11시 31분에 자동 삭제된다. ⓒ 강한

그는 "모든 기록이 다 사라지고 잊혀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사용자들에게 삭제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라는 것이 디지털 소멸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글을 올리는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는 주장이다. 그는 인간의 유전자 안에 '텔로미어(telomere: 생명체의 수명과 노화를 결정하는 부분)'가 있는 것처럼 디지털 데이터 안에 수명관리 소자를 넣어서 디지털 기록에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주고, 정한 시간에 죽게 만들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디지털 기기의 출현이 대략 70년 정도입니다. 인터넷 사용 기간은 20~30년에 불과합니다. 한 세대가 지나지 않다 보니 그동안 죽은 사람에 대한 고민도 제대로 없었고요. 법안이나 약관이 시대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회원과 데이터 늘리기에만 몰두했을 뿐이죠. 이제 디지털 소멸을 학술적, 산업적 영역으로 보고 IT 강국인 한국이 가장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 같이 고민해보자는 겁니다."

그는 오는 11월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의 2부를 출간할 계획이다. 디지털 소멸의 정의와 철학 등을 보다 심도 있게 소개하고 금융권, 로봇, 자동차, 의료기기,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분야별 적용 가능성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의 매체 단비뉴스 (www.danbinews.com)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송명빈#디지털에이징#디지털소멸#잊혀질권리#신상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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