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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불반도 한게임 유저가 만든 지옥불반도 모습. 이른바 헬조선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 지옥불반도 한게임 유저가 만든 지옥불반도 모습. 이른바 헬조선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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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분교수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크게 분노하며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피해자는 왜 참고 견뎠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해당 교수는 제자의 미래를 위해 훈육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일고의 가치도 없고, 피해자 역시 교수의 감시와 보복이 두려워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해석하자면 사회적으로 극단적인 경쟁과 승자독식이 구조화되면서 갑은 사적 욕망을 위해 타자를 짓밟는 것을 당연시하고, 을은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의식이 내재화되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한국의 이러한 상황을 헬 조선 또는 지옥불반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 말대로 이 나라 사람들은 살아서 지옥을 맛보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심화되는 청년실업, 최저 수준의 출산율,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상징화되는 부조리한 현실은 맨정신으로견디기 어렵다.

그들은 좁디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공부와 스펙 쌓기에 매달려야 하는 자신들을 한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3포 세대'라 불렀다. 그리고 지금은 3포에 취업과 주택을 더해 5포 세대, 인관관계와 희망을 잃은 7포 세대, 더 나아가 건강과 학업까지 포기한 9포 세대, 다포 세대라 부르고 있다. 게다가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 되어야 하는 나라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

헬조선 사이트 첫 화면 최근 한 누리꾼이 개설한 헬조선(www,.hellkorea.com)의 첫화면. 죽창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구호가 이채롭다.
▲ 헬조선 사이트 첫 화면 최근 한 누리꾼이 개설한 헬조선(www,.hellkorea.com)의 첫화면. 죽창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구호가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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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능력주의와 물신화가 판치는 헬 조선에서는 최소한 윤리도 내팽개치고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판치고 있다. 무능력은 폭력을 통해서라도 교정해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굴욕이라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젊은 누리꾼들은 '헬조선' 계급을 태어난 환경에 따라 금·은·동·흙수저·똥수저로 나누고 자신들의 굴욕적인 체험담을 각종 커뮤니티에 올리고 있다. 사연들은 서비스 업종에서 갑질하는 고용주나 몰상식한 손님들에게 당한 것에서부터 무보수로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단순하다. 최소한의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다.

'헬조선' 담론은 진보는 물론이고 일베같은 극우사이트에서도 흘러 넘치고 있다. 이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다. 최근에는 아예 웹사이트 헬조선(www.hellkorea.com)까지 등장했다. 일부 보수 매체에서는 선동으로 간주하거나 조국 비하 게시물이라고 비난하지만 젊은 세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같은 지옥불반도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그 답은 한국천주교수장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면서 거리로 나선 사제단 신부들을 향해 "지금은 반정부 활동보다 대중의 현실적인 필요에 그들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기존 방법론을 고집한다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라고 했다. 원론적이지만 자신이 믿은 예수가 주변부 인생을 위해 살다가 죽은 존재임을 망각하고 권력과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종교가 물신에 굴복한 사회

불교의 경우, 음주도박이나 폭력사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최근 동국대 총장사태는 학생들에게 큰 절망을 주고 있다. 자신들은 치솟는 등록금에 뼈골이 빠지고 눈물겨운 스펙 쌓기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학내에서 표절판정을 받은 승려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총장까지 됐으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조리한 총장문제는 학교의 위상과 가치를 추락시키고, 그 불이익은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그나마 비빌 언덕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국사회 자체가 극도의 불신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도피적인 사이비 종교나 반문화적인 근본주의가 판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주류종교는 노동문제나 동성애 같은 인권적 의제에 대해서는 나몰라라하거나 공격적인 반면 기득권의 이익과 부조리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서울의 강남 일대에 들어선 수천억짜리 교회들이 어떻게 지어졌겠는가? 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는 일반적인 악인들뿐만 아니라 탐욕스런 성직자들도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클레멘스 5세를 비롯한 교황도 여럿 있다. 아마도 현세를 지옥처럼 만든 책임에는 부조리한 현실권력뿐만 아니라 종교인들에게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날처럼 종교가 물신에 굴복한 사회에서 붓다나 예수가 들어설 틈은 없다. 오로지 불신지옥만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에 비슷한 제목으로 보냈으나 원고 한계 때문에 제대로 다루지 못한 부분을 추가했음.



#헬조선#천주교#불교#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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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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