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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이 유람선를 타고 리기산을 향하고 있다
▲ 루체른 호수 여행객들이 유람선를 타고 리기산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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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일찍 눈을 떴다. 6시가 채 되지 않았다. 옷을 간단히 걸치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구름이 많이 끼어 있다. 그러나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숙소 옆에는 역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철길이 뻗어있고, 역 반대쪽으로는 커다란 산이 우뚝 솟아있다.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분명 루체른의 명소임이 틀림없다.

지도를 찾아보니 필라투스라는 산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는 트램이 다니는 철길이 뻗어 있고, 공중으로는 철길을 따라 전선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가로수는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다. 하지만 한국의 플라타너스에 비해 잎이 조금 작아 보인다.

아침을 먹은 후, 역 주변으로 나왔다. 배를 타고 비추나우로 가서 리기산에 오를 셈이다. 리기산은 루체른 호와 추크 호에 둘러싸여 있는 산으로 높이는 1798m이다. 여름에는 하이킹, 겨울에는 스키와 썰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산의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기산은 루체른 역에서 배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으며,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 갈 수 있다. 스위스패스가 있다면 배와 산악열차 모두 무료다. 유람선 선착장은 루체른 중앙역 바로 앞에 있다. 짐을 맡겨두기 위해 기차역에 있는 무인보관함을 찾았다. 배낭 한 개 정도 들어가는 보관함인데 요금은 6천 원 정도 한다.

오전 8시 30분, 리기산으로 가는 유람선에 올랐다. 배는 2층으로 되어 있고, 1등석과 2등석으로 구분되어 있다. 배는 미끄러지듯이 루체른 역을 떠나 호수 가운데로 나선다.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 뒤로 우뚝 솟은 필라투스가 거인처럼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호숫가 언덕에 자리한 화려한 모양의 집들과 호수에 떠 있는 수많은 요트들은 루체른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하고 있다. 우윳빛의 호수는 깊이를 알 수 없으나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도시를 거꾸로 비추고 흔들어 댄다. 호수의 물빛이 우유색을 띠는 이유는 알프산의 암질이 석회암이 많기 때문이라 한다.

리기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 웨기스 마을 리기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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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은 웨기스를 비롯한 마을 몇 곳을 거친 후, 네 번째 선착장인 비추나우에 도착한다. 배에서 선착장으로 나가는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이 서둘러 배에서 내린다. 비추나우는 산악열차가 출발하는 역과 상점이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선착장을 빠져나가자 리기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빨간색의 산악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산위로는 아직 게으름 피는 구름들이 떠나지 않고 서성대고 있다. 언뜻 보아 쉽게 물러갈 것 같지는 않다.

산악열차를 타고 리기산으로 올라갔다. 기차 길은 생각보다 그렇게 가파르지는 않다. 차창 밖으로 푸른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고, 얼룩소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이따금씩  집들도 나타나고 노란 야생화도 보인다. 산 정상으로 올라 갈수록 구름이 짙어져 바깥 풍경은 이내 흐려지고 만다. 정상의 날씨는 반팔차림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춥다. 햇빛이라도 비추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리기산으로 올라가는 산악열차를 이곳에서 탈 수 있다
▲ 비츠나우 리기산으로 올라가는 산악열차를 이곳에서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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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커피 한잔으로 여유를 찾다

산 정상에는 지하에 만들어진 호텔도 있고 조그마한 상점도 있다. 갈색 점들이 있는 얼룩소들은 구름 속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간간이 소의 목에 걸려있는 방울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구름이 걷히기를 내심 고대했으나 허사였다. 한기가 몸속을 파고들 뿐 산 아래 풍경은 고사하고 한치 앞도 볼 수가 없다.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상점은 옷도 팔고 음식도 팔고 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셨다. 커피 값은 약 4500원 정도,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지며 기분이 살아난다. 날씨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하이킹으로 하산 길을 택했다.

산악열차를 타고 가며 내려다 본 모습
▲ 루체른 호수 산악열차를 타고 가며 내려다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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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산 정상에 정거한 산악열차에서 여행객들이 내리고 있다.
▲ 산악열차 리기산 정상에 정거한 산악열차에서 여행객들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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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가파르지도 않고 안개 속이라 마치 구름 속을 나는 것 같다. 가끔 야생화도 보이고 얼룩소들도 나타나 산길을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또 산에서 목조 집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집집마다 장작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한국의 시골집과 너무 흡사하다. 리기산에서는 산악열차를 다시 타고 내려올 수도 있고, 중간에서 케이블을 타고 내려올 수도 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주변풍경을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산에는 나무가 많지 않아 탁 트인 산 아래 풍경을 마음 놓고 볼 수도 있고, 산길에서 뜻하지 않은 여러 산 친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생화가 펼쳐진 초원에서 산 다람쥐라도 만나게 되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하이킹으로 내려오다 출발지로 다시 가려면 중간에서 열차를 다시 타도된다. 케이블카는 출발지가 아닌 웨기스라는 마을로 내려간다. 

산을 내려와 비츠나우 선착장 입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비추나우에는 식당이 두세 군데 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보통 25프랑(약 삼만원)정도는 주어야 한 끼를 겨우 때울 수 있다. 물가가 꽤 비싸다고 들었는데 한국 음식 값의 두 배도 더 되는 것 같다. 스파게티의 경우,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2만 원은 줘야 한다. 게다가 물 값도 따로 지불해야 하니 맘 놓고 배불리 먹기가 쉽지 않다.

비츠나우에 미루나무가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다
▲ 미루나무 비츠나우에 미루나무가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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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츠나우 선착장 주변에는 조그만 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커다란 나무가 두 그루나 서 있다. 호수 가에서 살랑살랑 몸을 흔들어 대며 시선을 잡아끄는 나무는 다름 아닌 미루나무였다. 옛날 시골에 논둑이나 강둑에서 늘 보았던 미루나무, 언제 보아도 정겹고 키가 큰 키다리 아저씨다. 매미들만 숨어 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호숫가에 서 있으니 제법 폼이 난다. 미국에서 들여온 버드나무라 해서 미류(美柳) 나무라고도 한다.

리기산에서 루체른 역으로 돌아왔다. 4시가 넘었다. 카펠교 다리를 지나 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들어섰다. 골목길은 돌조각으로 단단히 포장되어 있고 상점들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음식점 보다는 옷이나 시계를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거리에 나와서 물건을 파는 풍경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거리가 깨끗하고 조용하지만 다소 썰렁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마트와 비슷한 쿡이라는 곳에 들어가 보았다. 규모는 크지 않았는데 주로 식료품을 팔고 있었다. 과일값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했고 기타 술을 비롯한 다른 물건은 비싼 편이다.

돼지고기 볶음요리, 한입 넣었다가 그만...

어느새 해가 저물고 가로등이 하나 둘씩 켜지고 있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불나방처럼 거리로 모여 든다. 시내거리는 사람들로 금세 가득 차고 활기가 넘친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 속에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고 그것을 풀어내고 싶은 흥이 밤공기를 출렁이게 한다.

저녁은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카펠교 근처로 갔다.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나무다리로 루체른의 관광 명소로 되어 있다. 카펠교 근처에 이르자  어디선가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역 주변 박물관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주변에서 재즈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루체른 역 주변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는 연못주변의  먹거리 장터 모습
▲ 루체른 연못 루체른 역 주변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는 연못주변의 먹거리 장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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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에서는 해마다 6월에 전통음악공연이 거리에서 펼쳐지고 7월과 8월에는 재즈공연이 주로 열린다고 한다. 주변광장은 축제장처럼 몽골식 천막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그곳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사람들의 시각을 자극하며 밤거리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바비큐로 만든 케밥도 있고, 닭고기나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도 있다. 보는 것만으로 여행의 즐거움이 막 살아난다. 역시 여행에서 먹는 것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

돼지고기 복음요리에 맥주 한 병이면 근사한 저녁이 될 것 같다. 연못주변에 자리를 잡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돼지고기와 햄이 들어간 복음 요리를 시켰다.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냄새 또한 너무 좋다. 기대를 갖고 한 입 먹어 보았다.

순간 짠맛이 입안에 확 퍼지며 환상을 깨고 만다. 더구나 햄은 너무나 짜서 식욕을 확 떨어뜨리기까지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짜게 먹는 거지...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맥주 한 잔으로 실망감을 달래며 하루의 여행을 접었다. 이제 겨우 하루 지났는데 벌써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밀려온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리기산, #루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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