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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세계의 지붕' 네팔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지 3개월여가 지났습니다. 이후 평화여행단체인 이매진피스 임영신 공동책임자와 신주희씨는 네팔로 달려가 공정무역 생산자들 및 신두팔촉 피해지역 현황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이매진피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네팔 현지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매진피스의 동의를 얻어 최근 네팔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편집자말]
네팔의 국경지대, 산간마을 가티와 굼은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 신주희
네팔 국경지대 산 위에 위치한 마을 가티와 굼탕. 국경으로 향하는 마지막 도로에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높아만 보이던 마을들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인다. 천 세대가 살고 있는 국경지역 마을들을 오르며 지난 4월, '완파'란 단어의 뜻을 처음으로 배웠다. 30여 채의 집들 중 2, 3채를 남기고 고스란히 무너진 굼탕의 마을들. 참담하게 무너진 마을, 다치고 고립된 사람들... 구호단체 차량조차 접근하기 어려워했던 아득한 산 위 마을들을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10년 이상 지역을 돌보아 온 작은 엔지오 나마스떼 네팔이었다.
가티 굼탕지역 1천 세대의 마을을 지원하는 나마스떼 네팔, 지진 직후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던 마을에 1천 자루의 쌀과 달, 차와 설탕을 나누었다. ⓒ 신주희
여러 단체들이 1000세대에 한 달 치 쌀과 달(콩 수프), 차, 설탕을 나눠주기 위해 힘을 합쳐 그곳으로 향했다. 마을로 향하며 천여 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거라 생각했지만, 그 풍경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열명씩 스무명씩 내려와 고요하게 쌀과 달을 받아 다시 산 위 마을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배분 방식이 궁금해졌다. 나마스떼 네팔의 니마가 웃으며 답했다.

"쿠폰 때문이에요. 이틀 전 미리 도착해 마을 리더들과 상의해 가구마다 똑같이 식량을 받을 수 있도록 명단을 작성하고 쿠폰을 나누어 드렸거든요. 저마다 사는 곳도 다르고, 쌀을 지고 올라야 할 산길도 험한데 그걸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찾아낸 방법이에요."

사람들 존엄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싶었다

'나눔의 여정에 사람들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싶었다'는 니마와 나마스떼 네팔 사람들. 마을 사람들은 식량이 배분되는 이틀 동안 언제든 내려와 30kg의 쌀과 5kg의 달, 기름과 설탕 그리고 차를 받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텐트였다.

수십 만 채의 집이 무너지며 동시에 수십 만 동의 텐트가 필요해진 네팔에서 천개의 텐트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마스떼 네팔의 요청에 우리가 구할 수 있었던 텐트는 불과 153개. 턱없이 부족한 숫자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라지에게 물었다. 153개라도 먼저 나누어야 할지, 다 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그러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야죠."

이틀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을 리더들이 모여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먼저 구한 만큼의 텐트를 나누는 것이었다. 기준은 "3살 이하의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먼저"였다. 식량을 나눌 때와 똑같이 쿠폰을 나눠주었다. 네팔의 한 청년단체에서 소식을 듣고 의약품과 분유를, 비욘드 네팔에선 대안생리대 세트를 보태어 153개의 보건의료 패키지와 텐트가 3살 이하의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전해졌다.

거대 구호단체들이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네팔을 찾는 긴급한 재난과 구호의 현장에서  나마스떼 네팔이 나누어 가는 걸음은 어쩌면 턱없이 작고 미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나누는 과정, 마을에 의견을 묻고 결정을 기다리는 결정적 호흡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거대한 국제 NGO들이 마을의 필요와 수요에 대한 파악 없이 길가에 뿌려놓고 간 쌀과 텐트로 인해 분쟁과 소요가 일어나고 경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던 광폭한 날들. 그 현장에서 구호를 진행하던 라지씨는 말했다.

"구호는 주는 일이죠. 하지만 동시에 받는 일이기도 하죠. 받을 사람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어떻게 주는 것이 가장 좋은지, 누가 먼저 받아야 하는지 마을에 묻지 않고 던져준다면 그건 나눔이 아니라 갈등과 의존을 키우는 일이 될 뿐이에요. 마을에 묻고, 마을이 결정하도록 도와야죠. 네팔은 아직도 마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니까요.

쌀 한 자루, 텐트 한 장이 마을의 공동체를 파괴한다면 과연 그것이 책임 있는 나눔일까요. 공정여행이나 공정무역처럼 긴급구호라는 영역에서도 서로 동등하게 만나고 서로를 존중하는 책임 있는 구호(Responsibel aid)가 절실하다는 것을 지진을 통해 배워가고 있어요."

지진 후 100일, 태양광 들고 완파된 마을로
어둠속에 전해진 태양광이 사람들의 이마 위로 맑고 환하게 빛난다. ⓒ 신주희
지진 후 100일, 태양광을 들고 완파되었던 마을로 다시 향한다. 지진 후 100일, 다시 오르는 가티와 굼탕 마을의 풍경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석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사람들은 매일 조금씩 폐허를 걷어내고 있었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다시 삶의 기둥을 세우고, 임시로 나누었던 텐트와 함석으로 비를 피할 지붕을 이었다. 그렇듯 소중하게 다시 찾은 지붕과 처마 밑에선 다시 옥수수가 빛깔 곱게 말라가고 새로 모를 낸 논은 파릇하게 초록을 찾아가고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멜람치의 커피 농부들 마을을 거쳐 국경지대인 가티와 굼탕에 다다른 것은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었다. 길 가에 있던 숙소들은 여전히 지진과 산사태로 문이 굳게 닫혀있다. 늦은 밤 숙소를 구할 길 없어 일행은 하는 수 없이 마을로 들어섰다. 늦은 저녁, 갑자기 도착한 손님들로 마을은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지진으로 단 3채의 집만 남기고 완파되었던 굼탕마을 ⓒ 신주희
먼 길 온 손님들을 위해 잘 곳을 내주어야 했으나 식구들 누울 공간조차 간신히 만든 처소에 누구 하나 더 들일 형편이 아니었다. 서로 곤혹스러운 기다림을 보낸 후 마을 이장 모한이 환한 얼굴로 내려온다. 숙소로 가자며 앞장선 그를 따라 들어선 곳은 마을의 간이 보건소. 침대 네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곳에 가져온 짐과 여장을 풀자 비로소 마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3개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밤이면 마을은 그저 어둠 속에 머문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도  전기는 하루 몇 시간도 들어오지 않았으니, 어둠이야 어차피 익숙한 일이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을 여기 저기 무너져있는 돌무더기와 날카롭게 잘린 함석지붕들, 폐허가 된 집의 나무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녹슨 못들이 어둠 속 마을을 위험 그 자체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다시 삶의 기둥을 일으켜 세우고 삶을 일궈가는 산마을 사람들 ⓒ 신주희
마을 이장 모한은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태양광 랜턴을 보건소에 두고 함께 사용하기로 뜻을 모아 주었다. 어둠이 깊어지고 태양광 빛을 밝히자 아이들은 모여든다. 카르마 파운데이션의 태양광을 책임자 길부아저씨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태양광 사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태양광 랜턴을 나누는 일을 마치고 난 후 지난 번 태양광 충전기부터 태양광 랜턴까지 빛을 나누는 여정을 함께 한 이장 모한이 말했다.
무너진 교실 뒤켠에 임시로 지어진 학교 교실 앞에서 학교에 쓰일 태양광 랜턴을 전달했다. ⓒ 신주희
"태양광을 개개인에게 모두 나누어 주기엔 턱없이 부족하죠. 하지만 이건 그저 랜턴이 아니라 빛이잖아요. 태양이 빛을 나누어 주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저 빛은 전기처럼 돈을 내야 하는 것도, 나눈다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설명했어요.

지진이 지나간 후 산 위의 마을들에서 가장 무서운 병 중 하나는 파상풍이에요. 이토록 거대한 폐허 속에 살아가는 일은 처음인데다가 집 자체가 위험해진 낯선 일상 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은 그저 전기가 아니라 돌봄이고 안전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거죠. 태양광 빛으로 저녁까지 뛰어노는 아이들이 녹슨 못, 혹은 함석에 찔리거나 다치는 일을 피할 수 있을 터이니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빛이 되었네요."
태양광 랜턴의 사용법을 설명하자, 아이들이 제 일인양 집중하여 듣는다. ⓒ 신주희
폐허를 치우고 간신히 새로 만든 임시 처소에는 누구 하나 더 누울 자리가 없다며 내어주시는 보건소의 침대... 그 보건소에서 먼 길을 걸어온 태양광 빛을 전달한다. ⓒ 신주희
"고운 면 생리대, 모두에게 소중한 선물 될 거예요"

모한의 말처럼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태양의 빛을 나누고 난 저녁, 다시 그 빛 아래로 마을의 여성리더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난번 굼탕마을에 이어 가티에 나누기로 한 600여 개의 대안생리대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하나하나 소중히 만들어 온 것이지만 마을 전체에 나누기엔 부족해 어찌 나누어야 할지 고심하자 이장 모한이 "그건 직접 마을 여성들에게 물어봐야죠"라며 리더들을 초대한 것이다. 혹여 너무 낯선 것은 아닌지, 필요 없는 것을 가져온 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의견을 묻는 자리, 여성 리더 한 분이 마음으로 답해 주신다.

"여긴 도시랑 달라요. 일반 생리대조차 구하기 어려운 형편인 걸요. 구할 수 있다 해도 그걸 살 현금도 없거니와 누가 그것 하나를 사기 위해 저 먼 산길을 내려가겠어요. 대부분 낡은 천을 접어서 사용하곤 해요. 이렇게 두고두고 쓸 수 있는 고운 면 생리대는 모두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거예요."
어둠이 내려앉자, 마을 여성리더들이 모여 한국에서 온 대안생리대를 어떻게 나눌지를 이야기 하며 수줍은 웃음과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 신주희
지난 4월 비욘드 네팔에서 전달한 임시 대안생리대를 써 본 마을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요청해 와, 대안생리대를 가지고 굼탕마을을 찾았다. 다시 만난 얼굴들에 반가움이 깃들어 있다. ⓒ 신주희
한국에서 여럿이 손길을 모아 만들어준 대안생리대. 낡은 천을 사용한다는 산골마을 여성들에게 요긴한 선물이라며 반갑게 받아든다. 다음엔 함께 대안생리대를 만들어 보자고 약속하며 최성문 작가가 한국에서 가져온 600여개의 대안생리대를 나눴다. ⓒ 신주희
이것이 선물이 될 수 있다면, 모두가 필요로 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마음을 맞대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밤. 수줍은 웃음과 서툰 의견을 나누는 모두의 이마 위로 태양광 빛이 맑고 환하다.

여전히 무너져 있는 집과 학교들... 그러나 아침이면 아이들은 샘터에 가서 물을 긷고 어머니들은 밥을 짓느라 분주하다. 함께 나누는 따뜻한 차 한 잔, 작게 부서지던 웃음들, 마음으로 맞이해주고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던 마을 사람들... 가장 환한 빛은 지진에도 꺼지지 않는 그 웃음과 환대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고요히 깨닫는다.

※ 가티와 굼탕 마을에 전해진 태양광램프는 환경재단에서 지원했습니다. 총 360개의 태양광 램프가 신두팔촉 국경지대, 공정무역 아름다운커피 공정무역 농가 중 지진피해가 큰 마을들에 커피 협동조합을 통해 전달될 예정입니다. 현지에서는 카르마 파운데이션(Karma Foundation Nepall), 나마스떼 네팔(Namaste Nepal), 소셜투어(Socialtours), 태양광 전문 단체에서 함께 태양광 전달과 워크숍을 지원합니다. 서로 돕는 걸음, 참 귀하고 감사합니다.
가장 환한 빛은 지진에도 꺼지지 않는 따스한 웃음과 환대 속에 있다는 것을 고요히 깨닫는다. ⓒ 신주희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네팔,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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