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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그을린 얼굴, 늘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토닥여 주던 박래군이 오늘도 유치장 창 안에서 환하게 웃고 서 있다. 그는 그렇게 늘 웃고 있다.

2009년, 잘못된 개발에 맞서 망루농성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시켜 무고한 시민 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극적으로 살아온 생존자들은 그 죽음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갇혔다. 나의 시아버지는 목숨을 잃었고, 남편은 감옥에 갇혔다. 세상이 무너졌다. 살고 싶었을 뿐인데, 죽어야하는 이유가 됐고, 행복한 가정을 꿈꿨는데 가정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꿈도, 삶도, 가족도 모두 잃어버렸다. 믿을 사람조차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 의지할 사람조차 없었다. 다섯 가족은 장례식장이 집이 되었고, 다섯 유가족들은 하루하루 투사로 변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들은 매일 전쟁 같은 날을 보내야만 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분명 있는데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모질고 비참했다. 모진 세상에서 한없이 서럽고 한없이 분할 때 곁에서 힘이 되어 주던 이가 있었다. 거리에서 상복이 찢기고, 경찰폭력에 다리가 부러지는 유가족들 모습에 눈물 흘려준 이가 있었다. 수배자의 몸이기에 현장에 나가지 못함을 죄스럽게 생각하던 참 정 많고 웃는 모습이 따뜻한 이가 있었다.

사람냄새 나는 박래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이 박래군 활동가 가면을 만들고 있다. "사람 곁에 사람, 우리 모두 박래군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 7.23 박래군 활동가 구속 규탄 및 석방 촉구를 위한 인권활동가 공동기자회견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이 박래군 활동가 가면을 만들고 있다. "사람 곁에 사람, 우리 모두 박래군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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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우리 곁에서 우리 편이 되어주는 사람, 힘들고 지칠 때마다 늘 곁에서 묵묵히 웃어주던 사람. 웃는 얼굴이 희망인 그가 박래군이었다. 한번은, 복도에서 쪽잠을 자는 그를 봤다. 왜 그러지. 잠자리가 불편한가? 이유가 궁금해 그에게 물었다.

대답을 들은 난 조금 부끄러웠다. 장례식장은 경찰이 언제 침탈할지 몰라 철거민동지들이 복도와 출입구에서 24시간 규찰을 섰다. 깔판에서 하루 종일 유가족들과 수배자들을 지키느라 고생하는 철거민들에 비해 본인은 편한 장례식장안에서 잠드는 게 미안했다며 며칠이라도 자려고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수배자의 몸으로 수개월을 장례식장에 갇혀, 가족 잃은 사람들 곁을 지키려 정작 본인의 가족은 자유로이 만날 수도 없고, 좁은 장례식장에서 운동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신세가 규찰서는 철거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밥걱정을 하는 모습에서 사람냄새가 느껴졌다. 장례를 치른 후 그는 스스로 감옥으로 갔다. 용산참사 유가족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야만 했다.

가족이 왜 목숨을 잃었는지 그 진실이 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 곁에 있었다는 이유가 감옥에 갇혀야만 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이윤에 눈먼 이들에게 저항했다는 이유로 갇혀야만 했다. 그런 그가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유가족에서 활동가로

그를 다시 만 난건 부산 한진중공업 공장안이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동농성 150일이 넘었다는 소리에 한걸음에 달려간 부산한진 중공업 안에서 그를 만났다. 아니 그가 있을 것 같아 찾아봤다. 역시 그는 그곳에 있었다. 너무도 반가웠다. 그도 홀로 부산까지 온 나를 보고는 반겨줬다. 그는 노동자들이 높은 곳에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해줬다. 노동자도 철거민도 모두 이 나라 국민이거늘, 세상은 여전히 모질고 잔혹함을 새삼 깨달았다. 서울에 올라가면 모란공원에 가자고 했다.

난 그때까지도 그가 모란공원을 가자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모란공원은 나의 아버님과 그의 동생이 묻힌 곳이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유가족을 데리고 저항의 상징, 아픔의 상징인 모란공원에서 할 말이 있었던 거다. 수많은 열사 분들의 묘역 앞에서 유가족이 활동가로 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해주었다.

어렵지만 함께 한다면 누구보다 큰 힘이 될 거란 용기도 주었다. 그날 이후 난 더 이상 유가족으로만 세상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이 죽어야하는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늘꼭대기로 올라가야만 하는 이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박래군이 늘 있는 곳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무고한 시민이 바다 속으로 수장되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봤다.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를 보았고, 돈에 눈이 멀어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가진 자들을 보았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안전한 사회가 아니란 것을 우리 모두는 지켜봤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1년이 넘게 묻고 있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아직, 바다 속에는 9명의 사람이 있다. 이들의 가족들은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을 한다. 세상 어떤 사람이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1년을 울부짖는단 말인가? 극적으로 탈출한 생존자들은 그날의 트라우마로 하루하루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친구를 잃은 단원고 학생들은 친구의 빈 책상을 보며 울부짖는다. 세월호 진상규명, 온전한 세월호 인양,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여전히 답을 해야 하는 사람은 답을 하지 않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지지 않고 있다.

안산합동분향소, 광화문농성장, 청운동사무소, 단원고, 진도 팽목항.

그는 늘 그곳에 있다. 가족을 잃은 아픔을 알기에, 이 나라 정부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알기에 그는 그들 곁에서 함께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하기위해 곡기를 끊었고, 세월호 온전한 인양을 위해 노숙농성을 했으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거리에서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그런 그를 또다시 가두려한다. 무능한 정부가 하지 않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손을 잡은 것이 잘못이라며 가두려한다. 수학여행 보냈던 아들, 딸들이 차가운 주검으로,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 딸들을 기다리는 부모 곁을 지켰다는 이유가 그가 다시 감옥에 가야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안전한 사회 만들어서 더 이상 세월호 참사 같은 일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게 그가 갇혀야하는 이유라고 한다.

참 모질고 한스럽다.

용산에서, 평택에서, 강정에서, 세월호에서 그가 말하는 건 단 한 가지. 인간답게 살자! 사람이 우선되는 세상 만들자! 여기 사람이 있다! 라는 외침을 잊지 말자. 용산을 잊지 말고, 평택을 잊지 말고, 강정을 잊지 말고, 세월호를 잊지 말자. 우리 모두 웃는 얼굴이 희망인 박래군이 되자!!

덧붙이는 글 | 정영신 용산참사 유가족입니다.
"내가 구속돼도 세월호 진상규명은 계속될 것"
인권활동가 박래군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에 동참해주세요.
http://goo.gl/forms/0qqX7Ar4IZ



태그:#박래군, #박래군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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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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