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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에 포위당했다는 표현이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대표는 "내가 포위당할 사람도 아니야"라며 부인했다. <연합뉴스TV> 7월 12일
▲ "못된 소리하지마라" '친박'에 포위당했다는 표현이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대표는 "내가 포위당할 사람도 아니야"라며 부인했다. <연합뉴스TV>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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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대장 별명을 갖다 버려, 무성졸병으로."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지난 11일 자 방송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유승민 거취 정국에서 가장 크게 상처 받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김무성 대표를 꼽았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한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한 8일까지 13일 동안, 가장 혼란스러운 행보를 보인 인물이 바로 김무성 대표였기 때문이다.

유승민 '거취 정국' 초반만 하더라도 김 대표의 입장은 명확했다. 국회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 아웃 대상자로 지명된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함께 간다'는 입장이 그것이었다. 당 대표라는 위치와 '무성 대장'이라는 별명을 고려했을 때, 박근혜-유승민 충돌의 결과는 '김무성에게 달렸다'는 얘기는 자연스럽게 들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단호함에 비교될 정도로 김 대표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의 심기가 '친박'을 통해 전해지면서 김 대표의 입장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고위원회 도중 김태호 의원의 발언을 제지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박력 넘치는 장면도 보여줬지만,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뜻이 관철되는 데 앞장섰다.

지난해 7월 '수평적 당-청 관계를 열겠다'는 일성으로 당 대표에 취임한 지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두 차례 당-청 충돌이 있었다. 한 차례는 김무성이 선제 공격을 했고, 이번에는 박 대통령이 공격을 감행했다. 두 번의 전투에서 그는 두 번 모두 패했다. 유력한 미래 권력인 그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박 대통령에게는 늘 졌다. 

유승민 사례에서 보듯이 대통령과의 싸움에서 진 것이 손해는 아니다. 그러나 김무성의 패배는 얘기가 좀 다르다. 그는 박 대통령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표에 얹혀서 가려고 하면 언제든 흔들리는데 지금 그렇게 돼버렸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현재 권력에 이토록 약한 모습을 보였던 미래 권력이 또 있었던가. 과거 두 차례의 당-청 갈등 내용을 보면 향후 김무성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어떻게 싸웠던가.

개헌 논란, <조선>도 어리둥절했던 '사과'

개헌론을 제기한 지 하루만에 '불찰'을 언급하며 김무성 대표는 '꼬리 내렸다.' <조선일보> 2014년 10월 18일자.
▲ 첫번째 당-청 갈등... 하루만에 개헌론을 제기한 지 하루만에 '불찰'을 언급하며 김무성 대표는 '꼬리 내렸다.' <조선일보> 2014년 10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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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 하루 만에 改憲 발언 철회. 靑이 압력 넣었어도 문제, 스스로 꼬리 내렸다면 더 큰 문제.'

2014년 10월 18일 자 <조선일보>의 보도는 위와 같았다. 지난해 10월 16일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김무성 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정기 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며 구체적 대안으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정부제'를 제시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17일 김 대표는 "(개헌론 발언은) 제 불찰이었다"며 당시 해외 순방 중이던 박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개헌론은 당시 민감한 이슈였다. 박 대통령이 불과 며칠 전인 그해 10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개헌론은)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경계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주의 발언이 있고 난 열흘 후 김 대표가 여봐란듯이 '상하이발 개헌론'을 쏘아 올렸던 것이다.

당시 기자회견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개헌론 때문에 경제 활성화가 안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김 대표는 "말은 맞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개헌이 계속 미뤄져 왔고, 다음 대선 가까이 가면 결국 안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까지 해석됐다. 야당에서는 크게 환영했다.

그 시각,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이었다. 김 대표 발언에 청와대의 반응은 '왜 하필 이때'로 요약된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가 대통령 순방 일정에 맞춰 작심하고 계획적으로 발언한 것 같다"면서 "이제 박 대통령과 따로 가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겨레>는 16일 자 기사를 통해 "차기 여권 대권 주자 1순위로 꼽히는 여당 대표가 다음 번 정권의 권력 구조를 두고 현직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형국이라, 앞으로의 상황 전개가 주목된다"고 한껏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상황 전개'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튿날 김 대표가 바로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사과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상하이 개헌발언이 불찰이고 사과한 것과 관련해) 내가 스타일 구기는 것이고, 바로 꼬리 내렸다고 해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린 김 대표가 한심했던지 <한겨레>도 17일 자 사설을 통해 "국회의원인 여당 대표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아닌데 '대통령께서 아셈 회의를 하고 계시는데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을 다른 나라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라며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집권당 대표의 위치인 그가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린'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나. 이유는 그로부터 얼마 후 밝혀진다. 개헌론 사과 발언 2주 후인 지난해 11월 3일, 한 행사에 참석한 김 대표는 "(개헌 발언 관련해) 한 마디 했다가 신나게 혼났다"고 말했다. 집권당 대표를 신나게 혼낸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그렇게 첫 번째 당-청갈등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번에도 꼬리 내린 김무성

두 번째 당-청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을 언급하며 지난 8일 원내대표를 물러났다. 13일 동안 진행된 유승민을 둘러싼 당-청갈등은 앞선 '상하이 개헌 발언' 보다 심각하게 진행됐다. '친박'의 수장인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지만 '비박'의 우위를 확인하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됐던 것이다. 그리고 복잡하게 전개된 갈등 속에서 당 대표인 김무성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 발언이 있던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의총 직후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 사퇴 요구를 한 의원도 몇 명 있었지만, 절대 다수가 봉합하자는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이 기류는 다음날인 6월 26일 오전까지 이어졌다. 의총 이튿날 유 원내대표 사퇴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김 대표는 "거부권 행사에 대한 대통령의 뜻은 존중돼 당에서 수용됐고, 그 다음에 의원들의 생각도 또 존중돼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기류가 바뀐 것은 26일 오후부터였다. 25일 의총 결과를 전해 들은 박 대통령이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들었다'는 한 친박 의원의 인터뷰 내용이 26일 언론에 보도됐다. 이어서 '친박' 최고위원들이 최고위원직 사퇴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지난달 28일 김 대표는 <조선><중앙><동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싸워 이길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해 유 원내대표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금요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29일에도 평택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추모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의 재신임 여부가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달라진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난 2일 최고위원회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거듭 '유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하자 "회의 끝내" 소리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러나 지난 6일에는 "당∙청은 공동 운명체이자 한 몸"이라고 말하며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곧 새누리당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7일에는 "내일 의총에서 유승민 사퇴 권고 결의안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해 본다. 지난달 25일 의총 직후 및 다음날 오전까지 김 대표는 "대통령의 뜻도 존중하고 의원들의 생각도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약하면 국회법 개정안은 폐기, 유승민 원내대표는 재신임이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곧 수정됐다. 의총 결과에 대한 대통령의 분노가 전해졌다. '친박'의 사퇴 카드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며칠 사이 급선회하는 김 대표의 모습 속에서 지난해 '상하이 개헌 발언' 이후 "신나게 혼났다"며 하루 만에 '꼬리 내린'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대목이다.

'눈치 보는 김무성'에게 차기 대권 기회 주어질까?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한 다음날인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를 제일 먼저 제기한 사람으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엇박자 나는 당청관계로서는 안정된 국정 운영은 어렵고 원내대표의 자리는 집권당의 실행자 자리지 개인정치의 자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한 다음날인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를 제일 먼저 제기한 사람으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엇박자 나는 당청관계로서는 안정된 국정 운영은 어렵고 원내대표의 자리는 집권당의 실행자 자리지 개인정치의 자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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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달라지는 김무성 (조선일보 6월 30일)' '눈치 보다 결국... 유승민 손 놓은 김무성 (한겨레 6월 30일)' '유승민 거취' 의총 개최→불가... '오락가락' 김무성 (오마이뉴스 6월 30일)'

대립의 시간, 13일이 지나자 모든 조명은 유승민에게 향했다. 박 대통령도 잃은 것도 많지만 결국 원한 것을 얻어냈다. '주연급 조연'인 김무성 대표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우려와 걱정을 한몸에 받는 처지가 됐다. 그는 '친박'처럼 박 대통령을 호위하지 못했고, 유승민처럼 박 대통령과 대립하는 원칙주의자 모습도 보이지 못했다.

문제는 그의 이와 같은 행보가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대통령과 두 번 붙었고, 두 번 모두 무릎을 꿇었다. 정치인은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앞으로 예정된 내년 총선에서 '무성 대장'은 박 대통령을 향해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선거의 왕자'에서 '눈치보는 지도자'로" 이는 한 언론에서 그의 취임 1주년을 분석한 기사의 제목이다. 역대 어느 미래 권력도 현재 권력에 이토록 저자세였던 적은 없었다. 단적으로 직전 미래 권력이자 현재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만 보더라도 '세종시' 문제를 놓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향해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떡하느냐"며 거세게 대통령을 몰아세웠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과거 현재 권력에 당당하게 맞섰던 미래 권력이 시간이 흘러 현재 권력이 됐다. 현재의 자세가 미래의 자세를 결정했다. 성공한 현재 권력으로 안착한 정치인들의 과거 모습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바로 그것이다. 김 대표가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김무성, #무성대장, #무성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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