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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투쟁! 단결투쟁! 구호를 들으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두 눈을 한 번 크게 떴다가 감기도 하고, 침을 꿀꺽 삼키면서 눈물을 참아 본답니다. 출근하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파이팅을 외칩니다. 남편! 오늘도 승리하세요. 사랑합니다."

지난 26일 오후 삼성테크윈 창원2사업부 정문 앞에서 열린 집회에 한 여성이 무대에 올라 이같이 외쳤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테크윈지회가 '해고살인 철회, 주권사수, 삼성테크윈 노동자 결사투쟁 선포식'을 열었는데, 한 조합원의 부인 김옥경씨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은 것이다.

삼성테크윈은 29일 성남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회사 이름을 '한화테크윈'으로 바꾸는 결정을 한다. 사진은 매각 반대 투쟁하고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테크윈지회가 26일 오후 삼성테크윈 창원2사업부 앞에서 연 '해고살인 철회, 주권사수, 삼성테크윈 노동자 결사투쟁 선포식' 때 모습.
 삼성테크윈은 29일 성남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회사 이름을 '한화테크윈'으로 바꾸는 결정을 한다. 사진은 매각 반대 투쟁하고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테크윈지회가 26일 오후 삼성테크윈 창원2사업부 앞에서 연 '해고살인 철회, 주권사수, 삼성테크윈 노동자 결사투쟁 선포식' 때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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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안 윤종균 지회장이 부탁해 이루어졌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는 29일 성남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열리는 주주총회에 대거 연차휴가를 내고 참석할 예정이다. 삼성테크윈은 이날 주총에서 회사 이름을 '한화테크윈'으로 바꿀 예정이다.

김씨가 이날 낭독한 편지는 조합원들한테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졌다. 28일 금속노조 경남지부 문상환 부장은 "지금까지 한번도 투쟁 현장에 서 보지 못한 부인이 남편한테 보내는 편지를 읽었고, 많은 조합원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진정한 '노동인재'이며 '노동애국자'"

삼성그룹은 지난해 11월 26일 삼성테크윈을 한환그룹에 매각 방침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매각 방침은 삼성테크윈 직원뿐만 아니라 가족들한테도 '충격'이었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는 그동안 '매각 철회'를 외치며 상경투쟁 등을 벌여왔다.

김옥경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만 골라서 일해오고 있는 기업체가 바로 삼성 아니냐"며 "여러분은 진정한 '삼성맨'으로서 피와 땀을 쏟아가며 일해 온 이 나라의 진정한 '노동인재'이며 '노동애국자'들이다"며 편지를 읽어나갔다.

그는 "저의 친정은 인천에 있지만, 워낙 멀고 또 고속도로 주행이 위험해 평균 2~3년에 한번 정도 가는 편"이라며 "그런데 매각이라는 말장난 같은 회사의 위기와 운명 앞에서 또 삼성테크위너로서의 무너져 내려가는 자존심 앞에서 그 멀고도 위험한 서울행 고속도로 길을 얼마나 자주 오르내렸느냐"고 덧붙였다.

결혼 전 데이트 때를 떠올렸다. 김씨는 "그때 하늘을 나는 전투기라도 한 대 발견하게 되면, 손가락으로 비행기를 가리키면서 생소한 전문용어를 섞어 가며, 마치 저 하늘에 날아다니는 전투기는 자기 손에서 다 나온 것처럼 주절주절 설명해 주던 당신"이라며 "나는 당신의 그 전문용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위풍당당함이 맘에 들어 나의 미래를 당신에게 투자해 오고 있다"고 회상했다.

고3, 중3 자녀를 둔 김씨는 "늘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며 당신 회사의 잔디밭을 마음껏 뛰어다니던 두 아들들이 공대생을 꿈꾸며 성장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삼성테크위너, 바로 당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했다.

매각 방침 소식이 들렸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26일 새벽 2시, 말도 안되는 매각 소식 메시지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출근하는 당신, 그날부터 지금껏 당신의 미간에 패인 십일자 주름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으니 많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투쟁하는 남편을 응원했다. 부인은 "당신이 잘못된 판단을 추진하려는 경영진으로부터 회사를 지키고, 당신과 가족의 미래를 지키고자 밤낮으로 그리고 휴일도 잊은 사람처럼 노동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니 참 멋져 보이고, 더욱 젊어 보인다"며 "나는 당신이 안일한 생각으로 남들이 정성껏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살짝 들이대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남편이었다면, 무척 실망했을 것이고, 퇴근했을 때 현관문도 열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주말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서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껏 당신의 땀방울과 힘겨운 눈물의 역사가 오롯이 들어있는 삼성테크윈의 명예를 지키고, 전문기술자로서의 당신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그 열정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테크윈지회가 26일 오후 삼성테크윈 창원2사업부 앞에서 연 '해고살인 철회, 주권사수, 삼성테크윈 노동자 결사투쟁 선포식'에서 한 조합원의 부인인 김옥경씨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테크윈지회가 26일 오후 삼성테크윈 창원2사업부 앞에서 연 '해고살인 철회, 주권사수, 삼성테크윈 노동자 결사투쟁 선포식'에서 한 조합원의 부인인 김옥경씨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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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우리보다도 더 어린 자녀를 둔 수많은 젊은 테크위너 부부들은 더욱 힘든 시간을 지혜롭게 또 강한 인내심으로 잘 이겨나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며 "가족과 함께 보낸 소중한 기회들이, 이 아픔의 현장에 동참하지 못하는 비겁한 경영진들 때문에 무참히 짓밟히고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최고의 기술자들만 엄선해서 채용했고, 그 기술자들로 인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테크윈. 이젠 그룹 경영자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구실로,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엔지니어들을 저급하게 평가하고, 노예 매매하듯이 도매금으로 팔아넘기려는 그 잔인한 형태 앞에, 어찌 당신의 울분과 애통함이 식저질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인은 남편을 격려했다. 그는 "낯선 서울 하늘 아래서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침낭을 깔아도, 당신에겐 회사를 향한 진정한 안타까움과 젊은 꿈에 대한 열정이 지금도 끓고 있기에 두려울 것도 지칠 것도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이어 "혹시, 몸도 마음도 힘들어 하는 동료들이 보이면 당신이 먼저 손 내밀고 위로해주길 바란다. 당신의 어깨를 내주며 기댈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함께 걸어갈 거라 믿는다"며 "힘들어도 생가고락을 함께 하는 전우애와 가족애로 뭉쳐진 당신들은 모두 이 나라의 진정한 '무궁화'들이다. 단 한 명의 동료도 낙오되지 않기를, 단 한 명의 동료들도 아파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태그:#금속노조, #삼성테크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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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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