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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 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을지도 모른다. - 기자 말

신어천 2013년 겨울 유난히 따뜻한 날씨로 매일 야외운동을 나갈 수 있었다.
▲ 신어천 2013년 겨울 유난히 따뜻한 날씨로 매일 야외운동을 나갈 수 있었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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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9일.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한 입원을 하루 앞두고 있다. 4주간 신지로이드 복용을 중단하고 최근 2주간은 저요오드식을 해왔다. 그동안 신지로이드 중단 부작용에 시달리며 힘들어 했는데 이제 2박 3일간의 입원만 잘 견디면 건강한 몸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해 신지로이드 복용을 중단하면 평소보다 피로를 더 잘 느낀다. 그리고 빈혈, 소화불량, 울렁거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부작용이 생기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해진다. 그냥 하루종일 누워만 있고 싶다. 그렇게 했다가는 체력이 더 떨어질 게 분명하고 방사성 요오드 치료 시 체력이 저하돼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해 힘들어도 평소 하던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신지로이드 복용을 중단한 지 24일째 되던 날도 평소와 똑같이 야외 운동을 나갔다. 이날은 크리스마스였고 한 겨울인데도 유난히 따뜻한 날들이 이어졌다. 낮에는 기온이 10도 내외여서 야외 운동을 하기에 무리가 없는 날씨였다. 수술을 받고 퇴원을 한 뒤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했다. 격일로 하루는 등산, 하루는 공원 산보를 했다. 신지로이드 복용 중단을 한 뒤로는 무리한 등산은 하지 않고 평지인 공원 산보만 했다.

집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동네에 있는 공원을 걷고 돌아 오면 약 1시간이 걸린다. 이날도 공원 끝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다음 집으로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오기 시작한 지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빈혈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이렇게 심한 빈혈이 온 적은 없었는데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지고 다리마저 후들거렸다. 아직 집까지는 빠른 걸음으로도 20여분을 더 걸어 가야하는데... 도저히 걸을 수 없어 공원 벤치에 주저앉았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몇 달간 꾸준히 운동을 해온 터라 이제는 뒷산 약수터까지도 쉬지 않고 단번에 올라갈 정도의 체력이 되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몸 상태가 되어 버리다니. 운동 나올 때 지갑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터라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 수도 없기에 걸어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숨을 고르며 빈혈이 사라지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잠시 뒤 조금씩 회복되었고 살살 걸어서 집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행복한 연말 연시...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입원준비물 방사성 요오드 캡슐 복용을 하면 '침샘'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침샘을 자극할 수 있는 캔디류를 많이 챙겨서 입원해야 한다.
▲ 입원준비물 방사성 요오드 캡슐 복용을 하면 '침샘'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침샘을 자극할 수 있는 캔디류를 많이 챙겨서 입원해야 한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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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켜면 연말 시상식이다 뭐다 해서 온통 잔치 분위기고 사람들은 연말 연시 송년회 모임을 하면서 이 시즌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뿐. 크리스마스엔 운동하다 빈혈로 큰 일이 날 뻔했고 연말 회식은커녕 좋아하는 '김치찌개'도 못 먹고 지냈다. 그리고 2013년의 마지막 날 밤은 외로운 독방 격리실에서 병마와 싸우며 홀로 보내야 한다. 그 덕에 2014년 나의 신년 계획은 '일상 생활'이 되었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해선 4주간 신지로이드 복용을 중단하고 2주간 저요오드식을 한 뒤 복용 용량에 따라 병원에서 치료약을 먹고 돌아가거나 격리실에 입원을 해야 한다. 나는 종양의 크기가 3cm로 큰 편이었고 림프절 전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고용량 캡슐인 150mci를 복용해야 했다. 고용량이니까 당연히 입원은 필수다.

캡슐을 복용하면 내 몸에 들어온 방사성 요오드 성분이 내 몸에 남은 갑상샘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모두 파괴하기 시작한다. 갑상샘이라는 장기가 '요오드'라는 성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2주 동안 요오드 성분을 가능한 먹지 않았다가 일반 요오드와 '동위원소'인 방사성 요오드를 몸에 투여해 갑상샘 세포들이 그 방사성 요오드를 흡수해 파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오드를 좋아하는 건 갑상샘뿐만 아니다. '침샘'도 요오드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방사성 요오드 캡슐을 복용하면 침샘이 함께 파괴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가 있다. 침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침 분비가 활성화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해 입원할 때 필요한 필수 준비물에는 '신 맛 나는 캔디'가 포함되어 있다.

평소 캔디를 즐기지 않는 나인데 마트에 가서 온 갖 종류의 캔디들을 구매했다. 아마 평생 먹을 분량의 캔디를 이날 한 번에 산 기분이다. 집으로 돌아와 겉껍질을 모두 뜯어 알맹이들만 가지고 가기 좋게 따로 포장을 했다.

방사성 요오드 캡슐을 복용하고 나면 내 몸은 말 그대로 방사능에 노출된 거나 마찬가지다. 내 몸에서 나오는 소변, 침, 땀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방사능 측정이 된다. 격리실에 입원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의 방사능 피폭 피해를 없애기 위해서다. 병원에 입원하면 의사와 간호사들도 병실에 달린 인터폰으로만 대화하고 대면하지 않는다.

방사성 요오드 캡슐을 복용하고 나면 몸에 들어온 방사능 물질을 빨리 몸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하루에 3리터 가량의 물을 마셔야 한다. 빨리 소변으로 배출하기 위해서다. 물과 음료는 내일 병원에 입원할 때 병원에 있는 매점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손수레 위에 올려진 납 덩어리

방사성 요오드 치료 입원계획표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한 2박3일간의 계획표
▲ 방사성 요오드 치료 입원계획표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한 2박3일간의 계획표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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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0일. 드디어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 점심까지 먹고 오후에 입원 수속을 한 뒤 병실로 들어갔다. 격리 병실은 수술 시 입원 했던 본관 8층에 함께 있는데 다른 병실과 떨어진 구석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긍정의 신'으로 거듭나기로 한 나는 대학병원 1인실에서 2박 3일간 편하게 요양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1인실이지만 병원비는 '일반 병실' 값이니 좋은 기회라고 말이다.

입원 수속을 하고 8층 간호사실에 가면 수술 하기 위해 입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낙상 예방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간략하게 입원계획표를 주면서 설명을 듣는다. 지난번에 핵의학과 외래 때도 교육을 들었고 다른 환우들의 후기를 찾아보면서도 책에서도 수없이 많이 듣고 보고 공부해 온 터라 지겹기까지 했다. 역시 병에 걸리면 그 병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박사'가 된다.

오후 4시쯤 되었을까. 의사가 손수레를 끌고 병실로 들어 온다. 그 손수레 위에는 호리병처럼 생긴 납 덩어리가 올려져 있다. 방사능이 피폭되지 않도록 차폐한 거다. 의사는 플라스틱 빨대 같이 생긴 파이프를 손에 들려 주고 약을 먹는 방법을 설명 해준다. 자신이 나가서 인터폰으로 말을 걸면 그 때 약병 뚜껑을 열라고 했다.

이렇게 갑상샘암과의 나의 두 번째 사투는 시작되었다. 수레에 올려진 무거운 납덩어리 약병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심장이 쿵쾅 거렸다. 얼마나 크게 뛰었는지 내 심장 소리가 온 병실 안에 가득찬 것만 같았다.


#갑상샘암#방사성 요오드#동위원소#침샘#1인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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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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