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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칡소'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언제부턴가 '칡소'가 들어갔거나, '토종한우칡소'처럼 칡소가 우리나라 토종 한우임을 은연중 강조하는 간판과 설명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칡소가 있다는 것도, 칡소가 우리 토종 한우라는 것도 지난해 여름에야 알았다. 남편과 2박 3일간 강원도를 여행하던 중 '토종한우칡소와 같은 식당 간판들을 스친 덕분이었다. 우리 것을 알았다는 작은 설렘까지 일었다.

호기심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칡소'를 키운다는 농장부터 칡소 고기를 판다는 식당이 수없이 검색됐다. 칡소 고기를 먹고 왔다는 사람의 글도 좀 보였다. 또 '전통 한우'라는 말과 함께 칡소를 발견한 사실을 반가워하는 기사들도 보였다.

칡소 : 온몸에 칡덩굴 같은 어룽어룽한 무늬가 있는 소 (네이버 국어사전)

얼룩 송아지라고 다 칡소는 아니다

<칡소를 묻다> 책표지.
 <칡소를 묻다> 책표지.
ⓒ 잉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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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들은 이처럼 정의하고 있다. 생김새만 설명했을 뿐, 칡소가 우리 토종 한우라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칡소가 우리 토종 한우 맞나?' 지난 여름 잠시 의아해했으나 관심을 접었다. 인터넷 자료 거의 대부분 칡소가 한우라고만 말하고 있을 뿐, 호기심을 풀어줄 자료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칡소를 묻다>(잉걸 펴냄)는 이처럼 일부 사람들 사이에 언제부턴가 우리 토종 한우가 된 칡소와, 우리 토종 얼룩소와 관련한 왜곡과 진실을 묻는 책이다.

탐색 과정에서 목도한 현실은 불편했다. 칡소를 과도하게 추어올린 현실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칡소의 뿌리를 찾는 일에서 "얼룩소가 곧 칡소"라는 미망에 사로잡힌 현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고구려 안악3호분의 '얼룩소'도 칡소라 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한낱 도그마에 불과하다. 연유야 어떻든 이 땅에는 각양각색의 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중략) 

칡소를 하나의 재래 품종으로 보기에 석연찮은 점은 또 있다. 외국에도 호랑이무늬 소라는 줄무늬 소들이 존재한다. 특히 다색종 품종 가운데 칡소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꼭 닮은 소들이 자주 출현한다. 그 '다색'의 내용을 보면 한우와 흡사하다. 갈색, 붉은색, 검은색 등. 의미 심장하다. 이 책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칡소를 묻다> '책을 펴내며'에서

축산업을 전공, 오랫동안 축산업계에 머문 저자에 따르면 아쉽게도 칡소가 우리 토종 한우라는 근거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 사이에선 칡소가 토종 한우로 부각되고, 한 술 더 떠 박목월의 <얼룩 송아지>와 이중섭이 그린 수많은 그림 속 소들, 그리고 정지용의 시 향수 <얼룩백이 황소>도 토종 한우인 칡소로 당연시되고 있다고 한다.

여행길에 우연히 스친 간판 덕분(?)에 재래종 한우인 칡소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근본을 알았다는 작은 설렘까지 있었던 터라 서문에 해당하는 '책을 펴내며'에 밝힌 '칡소는 하나의 재래 품종으로 보기엔 석연찮다'는 결론에 맥이 빠졌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근거로 이처럼 결론 내리는 걸까? 다음은 책의 내용 일부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칡소가 우리 토종 한우라는 전제하게 칡소라고 당연시되고 있는 박목월의 얼룩송아지와 이중섭의 소, 정지용의 소들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들 소들의 진실을 알려면 관련 작품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작가는 물론 작품이 나온 배경 등 작품을 둘러싼 것들을 말이다.

어떤 이는 박목월이 이 시를 쓴 1930년대에 젖소를 보는 일은 지금 우리가 칡소를 보는 것보다 더 드문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들어가는 말에서 말한 반만 맞은 얘기와 맥락이 같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젖소가 실제 들어온 때는 1885년이라 한다. 1884년 농무목축시험장이 설립되어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 최경석이 미국에서 다른 가축과 함께 저지종 암수 한 쌍(또는 암소 2두나 수소 1두)을 도입한 게 그 최초의 일로 기록돼 있다.

1900년에는 한 일본인이 서울에서 우유를 짜기 시작했는데 이를 우리나라 낙농업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중략)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축산통계>에 따르면 1930년대 당시에는 전국에서 121명의 착유업자가 1300여 두의 젖소를 사육하고 있었다. -<칡소를 묻다>에서

'주객이 전도되다'라는 표현이 마땅할까. 애초 칡소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읽은 책인데, 이처럼 우리나라에 실제로 젖소가 언제 들어왔으며 언제부터 우유를 짜기 시작했는지, 우리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듣거나 부를 정도로 많이 불리는 얼룩 송아지라는 노래는 언제 어떻게 나왔는지, 박목월과 젖소는 어떤 관계였는지 등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중섭의 <소>' 편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고맙게도 분량이 가장 많다). 책 제목만으로는 작가나 그의 작품이 언급될 것으로 짐작하지 못하고 접했다. 게다가 이중섭과 정지용에 대해선 '대략'만 알고 있었던 터라 흥미롭게 읽었다. 아마 제목만으로는 책에 접근하는 독자들이 한정될 지도 모르겠다. 칡소가 토종 한우냐 아니냐를 떠나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들을 재밌게 담은 책이다.

'이런 책이 있노라'는 글을 쓰는 동안 지난 여름 강원도 여행 중 스쳤던 간판들과 여행 직후 새롭게 알게 된 칡소에 대해 알고자 인터넷 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화면이 계속 떠올랐다. 칡소가 토종 한우라 당연시되고 있는 이야기가 말이다. 그들에게 이 책의 내용은 충격 혹은 분노일 수 있겠다는 오지랖 넓은 염려도 들었다. 

<칡소를 묻다>, 이 책의 존재가 다행스럽다. 마땅한 근거도 없이 일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당연시되고 있는 '칡소 = 토종 한우'라는 믿음을 돌아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칡소를 묻다>(김진수) / 잉걸 / 2015-04-02 / 12,000원



칡소를 묻다 - 토종 얼룩소에 대한 왜곡과 진실

김진수 지음, 잉걸(2015)


태그:#칡소, #토종 한우, #얼룩송아지, #얼룩백이 황소, #이중섭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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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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