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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기름처럼 귀하다(春雨貴如油)"는 중국 속담이 있는데, 봄비가 너른 평야를 적시며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택시를 타고 제국 역사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순마갱(殉馬坑)으로 향한다.

제 경공의 순마갱 경공의 무덤을 중심으로 총 길이 215m 중 서남단의 36.5m, 108마리의 순마가 전시되고 있다.
제 경공의 순마갱경공의 무덤을 중심으로 총 길이 215m 중 서남단의 36.5m, 108마리의 순마가 전시되고 있다. ⓒ 김대오

순장은 고대 신분제 사회에서 세계적으로 널리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말, 그것도 도용(陶俑)이 아닌 실제 전투에 활용되던 진짜 말인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현세의 삶이 사후에도 지속된다고 믿었던 천승(千乘)의 마차를 거느렸던 왕이 사후에도 말들을 곁에 두려 생매장한 당시의 세계관이 다소 두렵기도 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제나라 25대왕 경공(景公)이다. 제나라 최장 재위기간인 58년 동안 명재상 안영의 보좌를 받으며 환공에 이어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다.

비에 젖은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전시장에 들어서 곧장 앞으로 나가자 유리 보호막 아래로 말들의 유해가 이열 횡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전시실이 직선형으로 하나여서 "이게 다야?"하는 썰렁한 느낌도 들지만, 고대 문명이 이룩한 기괴한 장례문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두 6~7세의 거세된 수말들로 실제 전투에 쓰이던 말이다. 군사 군(軍)에 차(車)가 들어 있는 걸 보면, 춘추전국시대 마차가 중요한 군사 무기였음을 알 수 있는데 군마를 이렇게 묻을 수 있다니 말이다.

순마갱 전시실  역사적 가치에 비해 전시실이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이 든다.
순마갱 전시실 역사적 가치에 비해 전시실이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이 든다. ⓒ 김대오

순마갱 발굴 당시 모습 1964년, 1972년 탐사단 발굴 결과 총 600마리의 말이 순장된 걸로 추정된다.
순마갱 발굴 당시 모습1964년, 1972년 탐사단 발굴 결과 총 600마리의 말이 순장된 걸로 추정된다. ⓒ 김대오

1964년, 1972년 탐사단 발굴 결과, 경공의 무덤을 중심으로 동쪽 70m, 서쪽 70m, 북쪽 75m로 '∩'모양의 순마갱이 폭 5m, 총 길이 215m에 조성돼 있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 전시되고 있는 것은 서남단의 36.5m, 108마리의 순마인데, 전체 길이에 총 600마리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춘추시대 이미 전투의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주로 탔으니, 600마리의 말은 150대의 마차를 끌 수 있는 말 숫자다. 이는 웬만한 제후국의 마차 전력 전체에 해당하는 군사력으로, 왕의 장례에 이 정도의 군사력을 땅에 묻을 정도라면 당시 제나라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순마갱 주변은 제나라 군주와 귀족들의 중, 대형 묘가 모두 20여 개가 있는데, 이처럼 말을 순장한 곳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땅에 묻어두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제1호갱에서 3호갱까지 개방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안(西安)의 병마용(兵馬俑)처럼 이곳도 좀 더 발굴이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 순마갱이 병마용보다 시기적으로 280년이나 앞서니, 시안 병마용의 원조인 셈이다. 시안은 흙으로 빚은 도용인 반면 이곳은 살아 있는 말을 묻은 것이니, 그것이 비록 순장의 악습이라 해도 그 원형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는 충분하다.

제 경공 전시실에 그림으로 남아 있는, 말을 좋아했다는 제 경공의 모습이다.
제 경공전시실에 그림으로 남아 있는, 말을 좋아했다는 제 경공의 모습이다. ⓒ 김대오

살아 있는 말을 무덤 근처에서 살해해 전투에 참가해 질주하는 모습으로 무덤가를 꾸민 경공은 사후에 이 말들과 사이좋게 해후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도 자동차, 카메라 등 남자들이 특별히 관심을 갖는 물건이 있는 것처럼, 고대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제 경공은 생전에 말을 매우 좋아했으며, 제나라에 말 숭배 사상이 있어 말 문양의 기와, 도자기가 다른 나라보다 유난히 많다고 한다. 제 경공이 아끼던 말은 그 무덤에 순장되었는데, 그 말을 관리하던 마부 또한 저승에서 말을 돌보기 위해 함께 순장되었다고 한다.

너른 평야를 지닌 제나라는 말을 치기 좋은 목마지지(牧馬之地)로, 원래 북쪽 초원에 동이(東夷)족이 길렀던 좋은 말이 많았다. 게다가 잇단 전쟁의 승리로 소국들을 병합하며 각지의 명마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어, 막대한 국력 낭비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순마장이 가능했던 걸로 보인다.

전시관을 나오니 빗줄기가 더 굵어져 있다. 비 때문인지 신분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인 순장의 폐해에 애꿎은 말들까지 희생양이 된 것 같아 측은한 생각이 더한다. 기다리던 택시를 타고 고차(古車)박물관으로 가면서도, 은나라 때부터 순장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긴 중국사에서 순장으로 억울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중국고차박물관 순마갱에 비해 규모가 크고 전시장이 잘 정비되어 있다.
중국고차박물관순마갱에 비해 규모가 크고 전시장이 잘 정비되어 있다. ⓒ 김대오

고차박물관은 순마갱보다 규모가 크고 전시실도 잘 정돈된 느낌이다. 중국의 10대 고고학 발굴 중의 하나 라는 차마갱(車馬坑)은 1990년 5월, 지난(濟南)에서 칭다오(靑島)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경공의 순마갱과 달리 이곳은 누구의 무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말과 함께 마차가 발굴된 점 때문에 2층 전시실에 중국 마차의 발전사가 시대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진시황이 탔다는 네 마리가 끄는 마차와 정교하게 복원된 수레 등이 통로에 놓여 있다. 31m 길이에 32필의 말과 10대의 전차가 출토된 1호 차마갱을 둘러보는데, 전시관이 고속도로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어 위로 차들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전장을 달리는 마차의 효과음을 재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1호 차마갱 31m 길이에 32필의 말과 10대의 전차가 출토된 1호 차마갱의 모습이다.
1호 차마갱31m 길이에 32필의 말과 10대의 전차가 출토된 1호 차마갱의 모습이다. ⓒ 김대오

1호 차마갱 주로 전투에 쓰였던 기동성을 지닌 네 마리가 끄는 전차의 모습이다.
1호 차마갱주로 전투에 쓰였던 기동성을 지닌 네 마리가 끄는 전차의 모습이다. ⓒ 김대오

실제 전투에 쓰인 6-7세의 수말 2500년의 시간에도 말의 뼈와 장식품은 선명히 남아 있다.
실제 전투에 쓰인 6-7세의 수말2500년의 시간에도 말의 뼈와 장식품은 선명히 남아 있다. ⓒ 김대오

말의 뼈와 철로 된 장신구 등은 오랜 시간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반면, 수레의 나무 부분은 부식되어 흙더미 형태로 보존돼 원형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전투에서의 역할에 따라 기동성이 필요해 네 마리가 끄는 전차가 있고, 또 후방 보급을 담당한 마차는 두 마리가 끄는 것도 있다. 생전에 타던 자신의 마차를 사후에도 계속 타기 위해 무덤 주변에 함께 묻은 것인데, 현대식으로 말하면 무덤에 호화 자동차를 함께 매장한 겪이다.

바로 옆 2호 차마갱은 7.6m 길이에 6필의 말이 순장되어 있는데, 부장품으로 보아 당시의 국왕이나 귀족의 묘로 추정된다. 제나라에서 말이나 마차를 순장하는 풍습이 귀족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전설에 따르면, 황제(黄帝)가 처음 소가 끄는 가마를 만들고, 약 4천 년 전 하나라 때 계중(奚仲)이 말이 끄는 마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2층 전시실을 둘러보다보면 수레가 중국의 문명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마차는 전쟁, 교통, 운수 등 분야에서 가장 빠른,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2천년 넘게 군림해온 셈이다.

전시관에는 말 뿐만 아니라 시대와 지역에 따라 소, 낙타, 코끼리 등의 수레가 재현되어 있는데, 마차 제조 기술이 모든 수공업 기술의 집대성이고, 중국이 고대 가장 뛰어난 마차 제조 기술을 보유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기술을 현대식 자동차 제조기술로 발전시키지 못했고, 지금도 자동차 분야에서 중국은 세계적인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춘추시대 마차 마차의 발전사가 정리된 전시관에 재현된 마차의 모습이다.
춘추시대 마차마차의 발전사가 정리된 전시관에 재현된 마차의 모습이다. ⓒ 김대오

전투에 써야 할 준마를 순장의 부장품으로 땅에 묻을 정도로 풍요로웠던 제나라는 그 부강한 힘을 더 크게 발전시키지 못하고, 춘추오패의 으뜸으로 화려하게 천하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가, 너무 빨리 꽃망울을 터뜨린 꽃처럼 일찍 시들어갔다. 조숙한 중국문명이 누구보다 앞서 마차를 만들고 선진의 마차 제조 기술을 보유했지만, 그것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고 땅 속에 이렇게 잠만 재워 놓은 것처럼 말이다.

박물관을 나오자 강태공이 바늘 없는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렸다는 태공호(太公湖)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사후 세계까지 자신의 욕망으로 가득 채우려 했던 제나라에 남은 것은 쓸쓸한 퇴조와 멸망의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린쯔 시내 식당을 찾아 가는 길에 자꾸 떠오르는 말이다.

땅에 묻힌 수공업 기술의 집대성 중국은 뛰어난 마차 제조 기술을 더이상 발전시키지 못하고 땅에 그대로 묻어 두고 만 셈이다.
땅에 묻힌 수공업 기술의 집대성중국은 뛰어난 마차 제조 기술을 더이상 발전시키지 못하고 땅에 그대로 묻어 두고 만 셈이다. ⓒ 김대오



#린쯔#순마갱#고차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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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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