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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개항장문화지구 안에 있는 옛 3층 양옥 대불호텔 터.<시사인천 자료사진>
인천개항장문화지구 안에 있는 옛 3층 양옥 대불호텔 터.<시사인천 자료사진> ⓒ 한만송

인천 중구(구청장 김홍섭)가 국내 최초의 서구식 호텔로 알려진 대불호텔 재현 사업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인천 중구에 따르면, 대불호텔은 1888년 현재의 중구 중앙동에 서양식 3층 벽돌 건물로 세워졌다. 영어로 손님을 맞았고, 침대가 있는 객실 11개와 다다미객실 240개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인선 개통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대불호텔은 1918년 중국인에게 인수돼 음식점 '중화루'로 변모했고, 1978년 건물이 헐린 이후 터는 최근까지 주차장으로 사용돼왔다.

대불호텔은 식민지 개항 도시 인천의 사회·문화 변화상을 알 수 있으며, '중화루'의 역사에서 한국 화교사회의 변천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크다. 또한 '가비(加比)'라는 이름의 커피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보급·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대문화 발신처다. 아울러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묵었던 한국 최초의 근대식 호텔이기에 대불호텔 재현 사업에 기독교계의 관심도가 높고 한다.

그런데 아펜젤러 비망록 등에서 대불호텔은 1885년에 등장한다. 최근 발견된 사료에는 대불호텔이 2층 목조건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대불호텔 터의 진위 여부도 논란이 됐다.

대불호텔 터와 관련해 논문을 발표한 손장원 재능대학교 교수는 "당시 아펜젤러 선교사가 27세 무렵이니, 년도를 착각해 기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면서 "1885년과 1886년 대불호텔에서 연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고,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발행한 주간지에 대불호텔을 묘사한 일러스트가 나오는데, 현존하는 목조 대불호텔 사진과 비교하면 일치한다, 잔여 부지는 목조 호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김홍섭 중구청장의 동생이 이 터에 건물을 신축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2011년 5월 붉은 벽돌 구조물 일부가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이를 조사한 뒤 그해 11월 '원형 보존'할 것을 권고했다.

 독일 신문 <일루슈트리르테 자이퉁>지 1894년 8월 11일자에 게재된 삽화. 대불호텔(삽화 오른 쪽 하단) 삼거리를 묘사한 삽화로, 그린 장소는 스튜어드호텔로 추정된다.<화도진도서관소장 자료·작자 미상>
독일 신문 <일루슈트리르테 자이퉁>지 1894년 8월 11일자에 게재된 삽화. 대불호텔(삽화 오른 쪽 하단) 삼거리를 묘사한 삽화로, 그린 장소는 스튜어드호텔로 추정된다.<화도진도서관소장 자료·작자 미상> ⓒ 한만송

대불호텔 터 재현 진위 논란

인천시와 중구 등은 '대불호텔 복원 사업'이라 부르지만, 복원(復元·復原)은 '원래대로 회복한다'는 뜻으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축할 때와 같은 모양으로, 같은 규격과 재질 등으로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원이다.

일본의 동경역이 대표적인 복원 사례로 꼽힌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100여 년 전 빅토리아 양식을 사용해 동경역을 지었다. 일본은 이 역을 복원하기 위해 벽돌·쇠창살·유리 등을 당시 시대의 기술로 재현했다. 또한 설계도에 따라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중구가 추진하는 '대불호텔 복원 사업'은 진정한 의미의 복원이라 볼 수 없다. 설계도를 비롯한 구체적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엽서 몇 장을 가지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문화계 인사들은 지난해 "대불호텔 복원 사업은 검증자료가 부족해 제대로 된 복원이 이뤄질 수 없다"라면서 사업 중단을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는 지난해 8월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중구가 심의를 요청한 '대불호텔 터 활용 계획'을 조건부 가결했다.

이에 앞서 중구는 2013년 6월에 '대불호텔 터 보존 및 활용 계획'을 수립했고, 문화재청은 작년 6월에 '활용 기본계획'을 승인했다. 이후 중구는 작년 10월 23일 '기본·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했다. 중구는 시에 문화재 형상변경 조건 사항 심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시 문화재위원회는 세 차례나 '조건부 부결' 처리했다.

고증자료 부족한데도 조급한 재현은 '부실 초래'

 옛 중화루 모습. <출처 : 인천시>
옛 중화루 모습. <출처 : 인천시> ⓒ 한만송
취재 결과, 시 문화재위원회는 대불호텔 외관 복원 사업과 관련해 몇 차례 부적합 의견을 냈다.

지난 4일 열린 5월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은 "외형 재현 등, 옛 대불호텔 재현을 위해 층수가 완화된 것으로, 설계 단계와 관계없이 외관 재현과 묘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심의 상정됐다"라면서 '부결'을 결정했다.

또한 "더 이상 고증자료가 없다면 심의 자료에 있는 '카메이 코레아키'의 사진을 기준으로 외형 재현을 위한 포인트별 정밀묘사, 고증자료 등을 검토·분석한 결과를 반영한 설계안을 작성한 후 심의에 상정하라"고 중구에 통보했다.

카메이 코레아키(1861~1896)는 종군 사진기자로,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 병참본부로 사용되던 대불호텔 사진을 찍었다. 그가 찍은 사진엔 2층짜리 목조로 지어진 대불호텔과 함께 바로 옆에 붉은 벽돌로 3층으로 지은 대불호텔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이밖에도 중구가 제출한 '대불호텔 터 재현 기본계획'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 문화재위원들은 수십 가지를 지적했다. 4월에 열린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선 앞서 지적된 여러 사항이 다시 지적되기도 했다.

3월에 열린 시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도 위원들은 ▲ 일본거리 비닐판넬 폭 부적절 ▲ 사진 자료상 지붕 흰 선 미반영 ▲ 외관 검증과 고증자료 미흡 ▲ 구조·형태 고증 부족 ▲ 내부 평면 운영자 의견 위주로 계획됨 등을 지적했다.

대불호텔 재현 사업은 '외형 복원을 철저히 하라'는 조건부로 허가된 사업임에도, 중구는 외형 복원조차 만전을 기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구는 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구청장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대불호텔 터 필지 4개를 소유하고 있던 중구청장의 가족은 여러 논란이 일자 필지 일부를 중구에 기증했다. 하지만 남은 필지에는 건물을 신축할 계획이다.

중구 담당 팀장 몇 개월 만에 좌천?

지역 문화계 인사와 시민사회에서 지적하듯 대불호텔 재현 사업은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충분하게 고증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그런데 최근 중구의 대불호텔 재현 사업 담당 팀장이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이 사업을 위해 시에서 중구로 전입한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인데, 전입한 지 몇 개월 만에 다른 부서로 발령받은 것이다. 중구 공무원들 사이에선 '빠른 사업 추진을 바라는 구청장의 의중을 거슬러 좌천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불호텔 재현 사업의 여러 논란에 대해 중구 관계자는 "대불호텔 재현 사업이 짝퉁이란 주장도 있지만, 이는 논리 비약이다. 긴 역사로 보면, 대불호텔 흔적이 남아 있다. 내부 평면도도 최근 발견돼 복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업을 급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조급하게 한다면 전문가 자문이나 용역은 필요 없다. 조급하게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는 5월 중 다시 열릴 시 문화재위원회에서 문화재 형상변경 조건 사항이 통과되면, 9월까지 건축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이어 10월에 설계를 마치고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천시 중구청#대불호텔#아펜젤라#중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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