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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8월 수양딸 김설경씨를 찾아 북한을 방문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씨가 그때의 여행담을 풀어낸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아래 <또 북한에 가다>)를 최근 펴냈다.

신은미씨는 2011~2012년 북한여행 당시 안내를 맡은 김설경씨를 수양딸로 삼았다. 그리고 2013년 신은미씨는 수양딸 김설경씨의 신혼집에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신은미씨를 안내한 또 다른 안내원 '영길 아우'는 <또 북한에 가다>에서 "남조선 출신의 관광객이 북에 와서리 수양 가족 관계를 맺고, 그 집을 방문한다는 일"은 전쟁 끝나고 처음 있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녘에 사람이 산다'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2013년 8월 평양에 있는 수양 딸 김설경의 집을 방문한 신은미씨. 우측부터 신은미, 김설경, 리설향, 설경 남편. 당시 만삭이었던 김설경씨는 9월 12일에 아들(주의성)을 순산했다.
 2013년 8월 평양에 있는 수양 딸 김설경의 집을 방문한 신은미씨. 우측부터 신은미, 김설경, 리설향, 설경 남편. 당시 만삭이었던 김설경씨는 9월 12일에 아들(주의성)을 순산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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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을 살았던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씨는 2011~2012년 세 차례에 걸친 방북 여행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해서 남북·해외 동포 사이에 화제의 인물이 됐고, 지난해 남한을 방문해 황선(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중)씨와 '통일 토크콘서트'를 하다가 강제 추방당해 뉴스 인물로 떠올랐다.

졸지에 '종북 아줌마'로 몰린 신은미씨의 방북기 <또 북한에 가다>는 1980년대 후반 북한바로 알기 열풍이 불던 때 남쪽에서 발간돼 널리 읽힌 재미동포 홍동근 목사의 <미완의 귀향일기>,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또 하나의 조국>, 양은식씨 등이 쓴 <분단을 뛰어넘어> 같은 책에 비하면 이념성이나 정치성이 청소년 권장도서 수준이다. 2013년에 발간된 신은미씨의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는 그해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 1월 신은미씨가 강제 추방되기 전에 문체부는 이 책을 우수도서 선정에서 취소하긴 했지만.

신은미씨 강제 추방 사건은 우리 사회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했음을 반증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민주정권 10년을 거쳤다는 한국의 상황이 오히려 1988년 올림픽 전의 상황만도 못하다"라며 "(이 책은) 북을 지상낙원이라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대동강물이 맑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했다고 재미교포를 추방한 한국사회의 편협함을 질타한 것이다.

"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북녘을 방문했던 재미동포가 그곳에 '악마가 살고 있다' 대신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것은 남쪽에 분단을 먹고 사는 악마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한홍구 교수 추천사 중)

<또 북한에 가다>의 내용으로 보나 저자의 경력으로 보나 재미동포 신은미씨는 이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목사였던 그의 외조부는 제헌의회 의원으로 국가보안법 제정에 앞장섰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성악가로 활동한 신은미씨는 스스로의 정치성향을 두고 '묻지마 반공'을 외치는 '꼴통 보수'였다고 밝혔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나선 몇 차례의 북한 여행 이후 "북한 동포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눈이 달라졌다"라는 신은미씨. 그가 <또 북한에 가다>에서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남과 북 조국의 동포들이여, 눈을 뜨라, 마음을 열라, 그리고 두려워 말고 사랑을 하라"는 것이었다.

2011년 평양을 처음 방문할 때 "김일성 주석의 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을 탑승구 앞에서 처음 보고" 무척이나 놀라고 긴장했던 신은미씨였다. 그러나 2013년 8월 15일, 네 번째 북한여행을 할 때에는 공항 대기실 옆자리에 김일성 주석 배지를 달고 앉아 있는 북한사람과 두 손을 맞잡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사진을 찍었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었을 때, 동포의 동질감뿐만 아니라 이질감까지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여행 안내원 리설향의 '울음'

백두산에서 여행안내원 리설향과 함께. 설향은 신은미씨의 두 번째 수양딸이 됐다.
 백두산에서 여행안내원 리설향과 함께. 설향은 신은미씨의 두 번째 수양딸이 됐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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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래 <생이란 무엇인가>를 즐겨 부르는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씨가 북한 동포에 대해 아무리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여행안내원 리설향씨가 금수산궁전에서 울음을 터트릴 때였다.

"우리 일행은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 앞에 다다랐다. 설향이는 또 눈물을 흘린다. 설향이는 엄숙한 적막 속에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오므리고 숨을 참는다. 아!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장면이다."(본문 중에서)

마음을 열고 북한 동포를 사랑하는 신은미씨도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는 남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것까지 이해 가능해질 때 비로소 통일의 기적이 일어나리라 본다.

여행안내원 리설향의 눈물뿐만 아니라  북한의 문학·영화·신문은 수령론과 유일사상체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독해와 감상이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된 이후라야 자유로운 해석과 비평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또 북한에 가다>를 읽으며, 신은미씨는 머지않아 둘째 수양딸로 삼은 리설향씨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신은미씨는 백두산 밀영과 천지를 방문한 뒤 항일유격대원들의 처절했던 독립투쟁을 떠올리며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과연 나도 총을 들고 이 밀림 속을 헤맬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그리고 "꼭 그러리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북한 체제를 이해하고, 북한 사람의 눈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항일무장투쟁의 전통'이라고 한다. 오해는 마시라. 신은미씨가 북한 사람의 눈물을 이해했다고, 직접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1980년대 들풀처럼 번졌던 통일운동과 북한바로알기운동을 경험한 세대지만 나는 오랫동안 북한주민들이 목이 쉬도록 '만세' 부르는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수년 전 방송에서 1945년 8월 15일에 목이 터져라 '만세' 부르는 수많은 민중들의 함성을 접하는 순간, 북한 주민이 만세를 부르는 불가사의한 장면을 이해하게 됐다. 내 눈과 마음을 내가 태어나기 전인 1945년 8월 15일 '만세'를 부르는 식민지 민중의 그것으로 바꿀 때 비로소 북녘 동포가 '만세' 부르는 심정을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은 이제 '관광객이 아니라 동포'라 말하는 신은미씨지만 북한을 여행하면서 사상과 이념뿐만 아니라 문화와 풍속에서도 종종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여행안내원 리설향씨는 "혹시 담배 피우는 여자들도 있니?"라는 질문에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담배를요? 오마, 시집 다 가려고…. 어떻게 여자가 담배를 피웁니까. 아직까지 조국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근데 남조선에서는 녀자들이 담배를 피우기도 하나요?"

이 대목만 보면 북한은 남한과 딴 세상 같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남쪽의 여성들이 술집이나 다방에서도 담배를 마음대로 피우지 못했다. 성질 고약한 남자에게 걸려 봉변당하기 일쑤였다.

할 말은 하는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읽다 보면 저자는 글 쓰는 사람이 지녀야 할 미덕을 골고루 갖췄음을 느끼게 된다. 신은미씨는 감성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팩트와 진실을 중시했다. 책의 곳곳에서 사실을 똑바로 보려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을 만나게 된다.

"남과 북 모두에게 바란다. 적어도 우리의 독립운동사만은 공정하게 다뤄줄 것을. (중략) 다시 한 번 남과 북 모두에게 바란다. 부디 진실만을 가르칠 것을."

백두산 밀영을 방문한 신은미씨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어난 곳이 백두산 밀영인지 옛 소련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남북 모두에게 "부디 진실만을 가르칠 것"을 신신당부한다. 이처럼 객관적 시각을 지니려고 노력하는 재미동포 아줌마를 '종북'으로 모는 사회야말로 도리어 '외눈박이 도깨비 세상'이라 할 수 있다.

평양 해당화관 레스토랑에서 철판구이 요리사를 흉내내는 신은미씨. 식당의 한쪽 벽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러닝셔츠 바람에 요리사 모자를 쓰고 사저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다.
 평양 해당화관 레스토랑에서 철판구이 요리사를 흉내내는 신은미씨. 식당의 한쪽 벽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러닝셔츠 바람에 요리사 모자를 쓰고 사저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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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관한 평양의 레스토랑 해당화관을 방문한 신은미씨는 벽면에 걸린 "김정일 위원장이 러닝셔츠 바람에 요리사 모자를 쓰고 사저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촬영하지 못하게 하자 '한심하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한다.

"대중은 요리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인간적 교감을 하면서 진정으로 지도자를 존경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도 대중에게 공개돼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누가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여성 부려먹는 '뻔뻔하고 쩨쩨한' 남성들

<또 북한에 가다>에서 신은미씨는 북한 사회의 '유교 봉건 잔재'에 관해 비판하기도 한다. 북한 여성들이 무거운 짐을 주로 들고 다니고, 남자는 뒷짐 지고 다니는 것을 여러 차례 보고 '뻔뻔하고 쩨쩨한 남성들이 또 어디에 있으랴'면서 분통을 터트린다.

"말끝마다 '봉건의 잔재'를 들먹이다가도, 남성에게 편할라 치면 슬그머니 '아름다운 우리의 풍습'이라며 덮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이런 '남존여비 봉건 잔재'는 없애지 못한단 말인가. 여성인 나로서는 대단한 불만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꺼리는 '유교적 전통'도 마뜩잖게 생각했다. 최근에 방북했을 때는 여성들끼리 맥줏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면서 이런 새로운 현상을 흐뭇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안내원인 리설향씨가 "녀성들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절에는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걸 봐서는 북한에서 음주 여성은 아직 '날라리 여성'에 그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재미동포 아줌마'는 방북기를 쓸 때 이처럼 북한에서 느낀 동질성뿐만 아니라 이질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북한 방북기를 빠짐없이 읽었다는 북한 당국자를 만났을 때 신은미씨는 "남쪽의 시각에서 북을 바라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 혹시 글 속에서 북을 불편하게 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해 달라"고 말한다.

이처럼 객관성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애쓴 그녀를 대한민국 언론이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찬양"했다며 종북몰이를 했다. 그저 동포애로 똘똘 뭉친 '재미동포 아줌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북한 동포는 왜 눈물로 통일을 말하나

2013년 8~9월 두 차례에 걸쳐 방북한 이야기를 담은 신은미 씨의 여행기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2013년 발간해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속편이다.
 2013년 8~9월 두 차례에 걸쳐 방북한 이야기를 담은 신은미 씨의 여행기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2013년 발간해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속편이다.
ⓒ 네잎클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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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미씨가 <또 북한에 가다>에서 그리는 꿈은 무엇일까? 그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제선진국으로 도약한 통일 조국이다.

저자는 양질의 값싼 노동력, 풍부한 지하자원, 인공위성 띄우는 과학기술을 보유한 북과 남이 대규모 경제 협력을 시작하면, 남과 북이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룰 것으로 내다본다. 북한에 두 명의 수양딸을 둔 신은미씨는 '통일된 조국에 사는 기분'은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와 다시 만나는 느낌'일 것이라 말한다.

남북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대부분 통일을 반대하지 않지만 그 열기는 사뭇 다르다. 남한의 청소년들은 북한과 합치면 통일비용이 많이 든다며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고 한다.

베이징 공항에서 만난 북한 아줌마는 처음 만난 재미동포 아줌마의 손을 덜컥 잡고 눈시울을 적시며 "우리 어서 통일을 해 오순도순 함께 살아야 합네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북한 동포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통일이야기를 할까. (중략) 그런데 남한은 어떤가. 남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별 관심조차 없는 듯하고, 통일을 얘기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까지 한다."

백두산 천지 앞에서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는 신은미씨 부부.
 백두산 천지 앞에서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는 신은미씨 부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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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읽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남한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낮아 보이지만, 6월 항쟁 이후 수년 동안은 '조국통일'이 대세였다. 그 당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치던 수만 명의 전대협 학생들은 '조국통일'을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화해와 통일로 나아가던 '6·15 시대'에서 역주행하다 보니 통일의 열기도 식었고, '조국통일' 위해 눈물 흘리며 거리에서 싸우는 청년학생도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남한 사람들이 다시금 통일 구호 외치며 눈물 흘리게 될 날은 언제일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재미동포 아줌마는 통일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리며,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이제 '좌빨'이니 '수꼴' '종북'이니 '반북' 같은 논할 가치도 없는 무개념 단어들을 남발하지 말자.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통일을 논하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리자."

○ 편집ㅣ김지현 기자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

신은미 지음, 네잎클로바(2015)


태그:#신은미,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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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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