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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버주택. 일본 전통양식과 영국풍의 콜로니엄 양식의 융합을 보여주는 주택으로 일본에 현존하는 서양식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됐다
 글로버주택. 일본 전통양식과 영국풍의 콜로니엄 양식의 융합을 보여주는 주택으로 일본에 현존하는 서양식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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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지배하던 바쿠후가 쇄국정책을 펼치던 시절에 유일하게 문호를 개방해 서양과 교류했던 나가사키에는 외국인 거류지가 있다. 나가사키역에서 택시를 타면 약 10분, 노면전차를 타면 약 20분쯤 걸리는 오우라 지역일대가 그곳인데 나가사키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 중 하나다.

자신을 백제인의 후손이라고 소개한 기무라씨가 나가사키 범선축제를 찾은 일행을 안내했다.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하다 퇴직한 후 한국에도 여러 번 다녀왔고 소설 <태백산맥> 내용도 줄줄 외우는 기무라씨는 항상 웃는 얼굴로 일행을 대했다.

아름다운 오란다자카

글로버엔은 연간 130만 명이 방문하는 나가사키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나가사키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미나미야마테 언덕 위에 있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구 글로버 주택을 중심으로 구 링거 주택, 구 오르트 주택 등 나가사키 시내에 남아있던 역사적인 서양식 건물 8동을 이동시켜 복원해 당시의 분위기를 살렸다.

 나가사키 개항 당시 유럽인들이 살았던 유럽식 주택
 나가사키 개항 당시 유럽인들이 살았던 유럽식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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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버엔 정원에 있는 금붕어들
 글로버엔 정원에 있는 금붕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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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란다자카라는 이름은 19세기 후반 이 일대에 서양인이 경영하는 은행, 호텔, 영사관과 임대용 서양식 주택이 줄지어 있어 거류지 일대의 모든 언덕길을 가리켰다. 이 이름은 서양 중에서도 특히 네덜란드와 200년 넘게 교류했던 일본인들이 서양인만 보면 국적에 상관없이 오란다상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즉, 오란다상들이 자주 오르내리던 길이어서 오란다자카라고 불렀다.

유럽인 중에서도 네덜란드인이 나가사키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일본을 찾아와 왕래를 했던 포르투갈인들은 기독교 포교에 중점을 두었다. 정권유지에 위협을 느낀 막부는 포르투갈인들을 쫓아내고 네덜란드인만 입국해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네덜란드인들은 포교보다는 장사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일본 근대화에 크게 공헌한 글로버

글로버엔에서도 가장 주목해야할 주택은 구 글로버 주택이다. 이 주택은 1859년 스코틀랜드에서 일본에 온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가 살았던 집이다. 일본 전통적 건축기술과 영국풍의 콜로니엄 양식의 융합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본에 현존하는 서양식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주택이다.

 글로버엔에서 바라다 보이는 미쓰비시 조선소 모습. 조선인 징용자들의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나가사키에는 이곳 말고도 또 다른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어 이곳에만 조선인 징용자가 있었다고 말할 수가 없지만 6천명의 조선인 징용자가 일했다고 한다. 그 중 상당수가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희생됐다고 한다
 글로버엔에서 바라다 보이는 미쓰비시 조선소 모습. 조선인 징용자들의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나가사키에는 이곳 말고도 또 다른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어 이곳에만 조선인 징용자가 있었다고 말할 수가 없지만 6천명의 조선인 징용자가 일했다고 한다. 그 중 상당수가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희생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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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스테라 가게로 맛도 뛰어나다. 카스테라 기술도 유럽인들로부터 전수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스테라 가게로 맛도 뛰어나다. 카스테라 기술도 유럽인들로부터 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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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버는 이제 막 개국을 시작한 일본에 무기와 선박 등을 수입하고 차 등을 수출하는 무역상으로 활약했다. 글로버는 일본에 다양한 서양 기술을 도입하여 일본의 조선과 석탄사업 근대화에 크게 공헌했다. 그는 일본최초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해 선박을 육지로 끌어올려 수리하는 도크와 석탄채굴에 증기기관을 도입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오우라 덴슈도

글로버엔 구경을 마치고 오란다자카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 목조교회 오우라 덴슈도가 있다. 서양식 건축물 중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유일한 건축물인 오우라덴슈도의 정식명칭은 일본 26성인 순교성당이다.

 오우라덴슈도 성당.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 목조교회이다. 일행을 안내한 기무라씨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 개화기 당시 절두산에서 순교한 시신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어 이곳으로 모셔와 보관하다가 명동성당으로 다시 가져왔다고 한다
 오우라덴슈도 성당.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 목조교회이다. 일행을 안내한 기무라씨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 개화기 당시 절두산에서 순교한 시신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어 이곳으로 모셔와 보관하다가 명동성당으로 다시 가져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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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모노 입은 아가씨들.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기모노 입은 아가씨들.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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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큐슈를 평정했지만 권력통일을 노리던 히데요시는 크리스천에게 위협을 느껴 선교사추방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10년 뒤 히데요시는 고치에 표착한 스페인의 산 페리호 선원의 발언을 이유로 크리스천을 일제히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교토와 오사카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 6명과 일본인 크리스천 18명이 체포됐다. 귀가 잘리거나 길거리로 끌려 다닌 이들은 교토부터 나가사키까지의 800㎞를 맨발로 걸어 호송 중 도중에 2명이 더해져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26명이 순교했다. 크리스천이 많이 살고 있는 나가사키에서 본보기로 처형한 것이다.

하지만 1853년 페리 등 외국함선의 압력으로 화친조약을 맺은 에도막부가 금교령을 풀었다. 뒤이어 1863년 프랑스에서 온 파리외방선교회가 나가사키의 외국인 거류지에 오우라성당을 건설했다. 현재 국토의 1% 면적밖에 안 되는 나가사키현에 전국 가톨릭성당 10% 이상에 해당하는 130여개의 성당이 있다.

 글로버 주택 전시실에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미국해군 중위 핑커톤과 일본의 아름다운 나비부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나가사키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영문판 설명 자료에 '미스테리---'라는 글귀가 적혀 기무라씨에게 물었더니 "나비부인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순수한 일본인이 아닌 서양인과 일본인의 혼혈여인 모습"이라고 설명해줬다
 글로버 주택 전시실에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미국해군 중위 핑커톤과 일본의 아름다운 나비부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나가사키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영문판 설명 자료에 '미스테리---'라는 글귀가 적혀 기무라씨에게 물었더니 "나비부인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순수한 일본인이 아닌 서양인과 일본인의 혼혈여인 모습"이라고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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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공원에서 독서를 하는 아름다운 일본아가씨. 나가사키는 바다와 공원, 도시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다
 해변공원에서 독서를 하는 아름다운 일본아가씨. 나가사키는 바다와 공원, 도시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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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라성당은 신앙을 허락받은 신자들이 기뻐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안으로부터 높은 언덕까지 벽돌을 짊어지고 옮기는 등의 수고로 지어졌다. 일행을 안내한 기무라씨가 막부시절 기독교 박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1860년대에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4000명 정도가 유배를 당했고 일본의 전통 놀이인 마쯔리속에는 '우리는 기독교도가 아닙니다'라는 의미가 들어있어요. 조선 개화기시절 절두산 순교자의 시신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어 이곳 오우라 성당에 보관했다가 다시 명동성당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나가사키는 일본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기독교 산실이지만 그만큼 아픔도 많았던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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