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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도지사의 구미시장 시절, 안동대 김희곤 교수의 기념관 사업계획 자문을 얻어 설립됬다.
▲ 구미시 임은동 산비탈에 지어진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 김관용 도지사의 구미시장 시절, 안동대 김희곤 교수의 기념관 사업계획 자문을 얻어 설립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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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마지막 주간부터 대다수의 중·고등학교는 중간고사에 들어간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험기간이 되면 평소에는 등한시했던 암기과목들을 밤새워 가며 붙잡고 늘어진다. 대표적인 과목이 바로 역사이다.

나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 벼락치기로 역사과목을 공부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음미해 보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제대로 된 역사관 정립 없이 무의미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시험공부용으로만 생각했던 역사 과목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선산갑오동학농민운동과 을미의병에 대해 취재를 하다 보니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이 간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우리네 삶은 그저 누리는 것이 아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수많은 선현들의 안타까운 피와 슬픔과 애환으로 점철된 한 많은 역사 위에 형성됐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되어 역사학자들이 연구해 놓고 발굴해 놓은 사료들을 손가락 하나로 검색해 쉽게 찾아 볼 수도 있지만, 정작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세세한 부분을 찾다보면 감쳐진 우리네 역사가 참 많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구미시 임은동 왕산허위기념관에 전시된 을미의병전쟁 당시 상황 모형
 구미시 임은동 왕산허위기념관에 전시된 을미의병전쟁 당시 상황 모형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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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는 검증된 자료를 통해 역사적인 사실들을 연구하고 구체화 시켜 학문으로 정립시켜 놓는 사람들이다.

재판정에서는 검사가 한 개인의 역사를 꼼꼼히 조사해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내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간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이 검사처럼 주도면밀한 조사와 검증을 거쳐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는 임무를 맡고 있다.  

왕산 허위 선생 탄신 160주년 기념 학술회의

원래의 표지 사진 위에 책갈피로 끼워준 왕산 허위 선생의 캐릭터를 올려서 사진 찍어 보았다. 구미시에서 왕산 허위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사업으로 만든 책이며 비매품이다.
▲ <왕산 허위의 나라사랑과 의병전쟁> 원래의 표지 사진 위에 책갈피로 끼워준 왕산 허위 선생의 캐릭터를 올려서 사진 찍어 보았다. 구미시에서 왕산 허위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사업으로 만든 책이며 비매품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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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구미시 임은동에 위치한 왕산허위선생기념관에서는 을미의거 2주갑(120년)을 기념하고 왕산 허위 선생의 탄신 1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차원에서 '왕산 허위선생 고유제와 학술회의'가 열렸다.

경북의 전통적인 유교제례의식에 따라 고유제를 지낸 뒤, 김희곤 안동대학교 교수의 학술강연이 열렸다. 김희곤 교수는 현재 경북독립기념관 관장을 겸임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 대해 특히 경북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해 정통하신 명망 있는 분이다.

'한국독립운동과 왕산 허위'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왕산 허위 선생의 추모행사를 위해 경북내의 연로하신 많은 유림들이 자리에 왔다. 왕산 허위선생기념관 시청각실은 깐깐한 눈빛의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구미시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서울에는 왕산 허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왕산로'가 있다.
▲ 한국독립운동사 최고의 지도자? 구미시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서울에는 왕산 허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왕산로'가 있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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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 허위 선생의 업적만을 기리는 내용의 강연일 것이라 지레짐작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강연의 서두에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서 어디까지 흘러갔으며, 독립운동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그 속에서 왕산의 활약과 업적을 평가하려 한다"며 강연의 밑그림을 그려줬다.

학창 시절에는 잠이 오는 역사시간이었지만, 취재를 목적으로 강연을 듣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김희곤 교수의 한국독립운동사 이야기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독립운동이란 말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는 상황을 전제로 성립되는 말이다. 즉, 식민지 해방운동과도 뜻을 같이한다. 식민지 해방운동을 벌인 나라는 우리나라말고도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을 받은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다.

한국독립운동역사를 한눈에 꿰뚫게 만들어 준 강연 현장. 역사학자의 매력에 대해 깨닫게 됐다.
 한국독립운동역사를 한눈에 꿰뚫게 만들어 준 강연 현장. 역사학자의 매력에 대해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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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 갑오동학농민전쟁(1894년)을 시작으로 1910년대까지는 의병 전쟁을 비롯해, 안중근 선생의 의거를 시작으로 윤봉길 선생의 의거까지 의열투쟁이 있어왔다.

독립운동이 강했던 나라의 특징은 침략국가와 인접해 있는 국가일수록 그리고 문화적 수준의 격차가 적을 수로 저항성이 강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전근대까지 우리나라보다 문화적 수준이 낮은 나라였으나, 이른 근대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려는 야욕을 갖게 됐다.

김희곤 교수는 강연을 통해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 중 한 인물이 오랜 기간 큰 비중을 차지한 경우로 왕산 허위 선생에 대한 평가를 시작했다.

의열투쟁을 테러라고 일컷는 뉴라이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 의열투쟁의 역사 의열투쟁을 테러라고 일컷는 뉴라이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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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문학에도 장르가 있듯이 독립운동의 역사에 있어서 각 인물들이 담당했던 역할이 나뉘어져 있었음을 얘기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며 의병운동기를 비롯해 계몽기, 의열투쟁기에 걸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정리해줬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뉴라이트가 집권하면서 의열투쟁을 테러로 몰아가고 있는 현 작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제가 교사들에게 강의할 때 힘주어 이야기 합니다. 아이들에게 의열투쟁과 테러가 어떻게 다른가 확실하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테러란 아무런 관계 없는 누구나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뉴욕의 9.11 테러처럼 미국의 쌍둥이 빌딩에 있던 사람들,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열투쟁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침략 책임자 일본왕, 관동군 사령관, 조선총독, 상해주주둔사령부, 침략기구인 조선총독부나 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김희곤 교수는 일제에 대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반침략전이라고 정의 내렸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이름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19년 4월 11일이다.

1919년 4월 11일에 나온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 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과 2조에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의결에 의하여 통치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10조에는 "임시정부는 국토회복 후 만 1주년 내에 국회를 소집한다"고 되어 있다.

김 교수는 국회라는 단어가 1919년 4월 11일에 나왔음을 지적하며 "대한민국의 시작은 1919년이다"고 말했다.

"뉴라이트는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삼자고 한다. 이 말은 북한을 빼고 남쪽만 인정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1시간 여 동안 진행된 김희곤 교수의 강연은 근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역사의 큰 줄기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는 독립운동에 몸 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다. 이들은 저마다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일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친 사람과 일가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강연 중에 심금을 울렸던 이야기는 안동 내앞마을의 경우 독립운동으로 인해 150여 명의 사람들이 만주로 이주했고, 독립운동으로 인해 김동삼 선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해 내앞마을의 역사가 사라질 것을 염려한 이유에서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을 이 자리에 짓게 됐다는 사연이다.

가슴 뭉클하고 뜨거웠던 삶의 흔적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편한 오늘을 사는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날 강연의 말미에 왕산 허위 선생에 대한 독립운동사에서의 업적 또한 흥분하게 만든다.

국권 회복을 염원했던 왕산 허위 선생, 그는 구한말 국권 회복에 투신했던 대표적인 사대부 출신 의병장이며, 전국 의병의 연합부대였던 13도창의대진소의 군사장이자 총대장으로서 서울진공작전을 이끈 주인공이다.

이날 김 교수는 한말의병운동의 흐름과 독립운동의 본질에 대해 일목요연한 전개의 강연을 선보였고, 왕산 허위 선생의 역사적인 위상에 대해 ▲ 위정척사와 계몽운동의 중간점 ▲ 국가 주권수호운동 개혁시도 ▲ 전국단위 의병전쟁 기획 서울진공, 경기지역 의병 ▲ 집안문중차원 항일구국투쟁으로 정리했고, 강연의 말미에 "왕산 허위 선생은 독립운동사의 최고급 지도자"라며 허위 선생의 업적을 기렸다.

덧붙이는 글 |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독립운동사가 많이 존재합니다. 춥고 거친 만주벌판에서 힘없이 쓰러져간 무명의 독립투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미약하나마 위대한 선현들의 뜻을 기리고자 합니다.



태그:#왕산 허위 선생, #김희곤 경북독립기념관 관장, #경북독립운동사 김희곤, #시민기자 윤리강령 준수, #오마이뉴스 징계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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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빨간이의 땅 경북 구미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기사화 시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힘이 쏫는 72년 쥐띠인 결혼한 남자입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통통튀는 귀여운 아들과 딸로 부터 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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