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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11일) 찾은 서울 북한산 등산길에는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가 파릇파릇 싹을 틔우고 있었다. 지난 해 자란 길다란 풀은 겨울을 지나는 동안 끝자락이 말려 있어 꼭 할아버지 수염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땅 밑에서는 파릇한 싹이 움트고 있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해준다.

"어릴 때 산에서 머리땋기도하고 하고 아이들 발에 걸려 넘어지라고 함정을 만들어 놀던 이 풀 이름이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래요. 머리 땋기하며 놀면 참 재미납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글이다.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시골에 살던 여자애들은 이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풀)'로 머리땋기도 하고 남을 골탕 먹이기도 했던 추억을 하나쯤 갖고 있을 것이다. 글쓴이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때는 이 풀 이름을 잘 몰랐고 다만 그 모습이 할아버지 수염같이 생겼다고 해서 코흘리개 우리들은 그냥 '할배수염'이라 부르며 컸다. 커서 이 풀이름이 무엇인가 했더니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란다.

그런데 산거울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이 풀이름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산거울1 바위 틈에서 자라는 산거울.
산거울1바위 틈에서 자라는 산거울. ⓒ 이윤옥

할배수염처럼 생긴 이 풀이름을 왜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라고 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풀이름은 일본말 호소바히카게스게(ホソバヒカゲスゲ, 細葉日陰菅)에서 나왔다.

호소바(細葉)는 '가는 잎'이고, '히카게스게'는 '그늘사초'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초(莎草)란 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다는 뜻과 사초과의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골사초, 산거울, 산사초, 선사초, 화살사초 따위의 220여 종이 있다고 <표준국어대사전>은 풀이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가는잎그늘사초'는 나오지 않고 '산거울'만 나온다. 그럼 '산거을'의 풀이를 보자.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 꽃줄기는 높이가 3~6cm이고 둔한 세모기둥 모양이며, 잎 틈에 끼어 잘 보이지 않고 그 끝에 약간의 수상화가 핀다. 그늘진 바위틈이나 건조한 숲 속에서 자란다."

산거울2 바위 틈에서 자라는 산거울. 옆에 귀여운 진달래 한 송이가 있다.
산거울2바위 틈에서 자라는 산거울. 옆에 귀여운 진달래 한 송이가 있다. ⓒ 이윤옥

그러나 '산거울'은 '산거웃'의 잘못된 표기이다. <훈몽자회, 상:14>에는 "髭 거웃  髥 거웃"이라고 했는데 수염의 옛말이 곧 '거웃'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는 할아버지 수염처럼 생긴 이 풀을 '산거웃'이라 했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산거울'이 된 것이고 이는 다시 일본말을 번역한 '가는잎그늘사초'라고 쓰고 있으니 그 어느 것도 이 풀이름으로는 마땅치 않다.

이제라도 '산거웃'으로 되돌리는 게 맞다. 기왕이면 산(山)이라는 한자말 대신 우리말 '뫼거웃'이라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식물도감이나 책을 볼라치면 잘못된 식물이름이라도 그대로 쓰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쉽사리 바꾸기가 어렵다면 일본말을 그대로 번역한 '가는잎그늘사초'의 유래라도 알고 써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과 대자보에도 보냈습니다.



#산거울#산거웃#가는잎그늘사초#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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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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