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려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주제 사라마구'다. 작가이자 한 남자인 사라마구가 이탈을 꿈꾸고 있다.

사라마구의 철학 단편 소설 <미지의 섬>(송필환 역, 조화로운 삶, 2007)은 한편의 잔잔한 동화다. 책은 살이 없는 뼈와 같이 어떤 군더더기도 없다. 뼈 자체를 쪽쪽 빨아도 영양이 보충될 정도다. <미지의 섬>은 사라마구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1998년) 전 해인 1997년에 쓴 책이다. 책을 한 장 넘기면 "모른다는 것, 알지 못한다는 것, 이 무한한 가치에 어찌 매혹당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보인다. 이 문장을 시작으로 책에 대한 몰입은 시작된다.

책 표지.
▲ <미지의 섬> 표지 책 표지.
ⓒ 조화로운 삶

관련사진보기

"배 한 척을 주시오."

한 남자가 왕이 있는 궁궐 문을 두드리며 배 한 척을 요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문을 청소하던 여인은 남자의 요구를 왕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인을 부른다. 남자의 요구는 하인, 3등 비서, 2등 비서, 1등 비서를 거쳐 오랜 시간 후 왕에게 전달된다.

왕도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데, 다시 순서에 따라 문을 청소하는 여인에까지 온다. 하지만 남자는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했다. 남자가 문을 막고 서 있으면 자신에게 올 선물을 실은 마차가 들어올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왕은 남자를 만나러 간다. 남자는 왕에게 미지의 섬을 발견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려면 배 한 척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끈질긴 요구에 왕은 배 한 척을 내준다. 하지만 사공은 알아서 구하라고 말하며 다시 궁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배를 얻기 위해 포구로 간다. 그 뒤를 궁궐에서 청소하는 여자가 따라온다. 여자도 미지의 섬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사공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확실히 섬이 있다는 증거도 없고, 안전하지 않은 여행에 나서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의 목적은 사그라졌다. 그때마다 청소하던 여인은 그에게 용기를 주며 꿈을 잃지 않게 도왔다.

미지의 섬이 주는 환상을 찾아서

그날 밤 잠을 자던 남자는 꿈을 꾼다. 청소하는 여인이 지쳐서 떠나고, 사공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꿈이다. 그는 꿈에서 여러 동물들과 씨앗을 모은다. 배는 미지의 섬을 찾아 바다 위를 떠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 의심을 품는다. 결국 사람들은 어떤 섬을 발견하고 동물들을 데리고 내려버린다.

난리 중에 흙이 쏟아지고 씨앗이 뒹군다. 시간이 흘러 씨앗은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배를 감싼다. 새가 날아오고 생명이 늘면서 배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섬처럼 변한다. 그때 남자는 꿈에서 깬다. 모든 것은 환상이었다. 그의 옆에 청소하는 여인이 잠을 자고 있다. 다음날 이 둘은 배의 이름을 미지의 섬이라고 짓고, 미지의 섬을 찾아 먼 바다로 나간다.

어린 시절 자주 읽은 동화처럼 내용은 해피엔딩이다. 주인공 남자는 직업을 가진 적이 있고, 또 언제든 가질 수 있는 이 시대 평범한 시민 중 한 사람이다. 문제없이 생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 미지의 섬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미지의 섬을 찾고 싶소. 그곳에 도착한다면 내가 누구인지도 알고 싶소.……당신도 당신 스스로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당신이 누군지 절대 알지 못할 거요."

섬을 보기 위해선 섬을 떠나야 하듯 우리 자신을 떠나지 않고는 우리를 볼 수 없다. 왠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주제로 제시하는 것 같지만, 실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사라마구는 우리에게 동화를 들려주며 공간과 물건들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익숙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위해

사라마구는 좋아한다는 건 소유하는 최선의 방법이지만, 소유한다는 건 좋아하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물건이든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든 지금까지 소유하고만 있었지 진정으로 알아본 적이 있을까. 함께 보낸 시간의 길고 짧음이 나의 삶을 구성하는 것들의 본질을 온전히 알려주는가. 소유하고 싶을 때 떠나는 것, 떠나보면 익숙한 것들은 낯선 미지의 섬이 된다.    

주인공은 사라마구의 분신이다. 지금까지 읽은 사라마구의 소설은 언제나 현실을 비판하며 바라보다가 떠나는 식으로 전개되곤 했다. 현실을 바꾸기보단 도피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미지의 섬> 주인공도 물욕에 찌든 왕을 보며 혀를 차고 이 나라에 환멸을 느껴 떠나려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주인공은 떠나기를 망설인다. 떠나는 것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일까.

사라마구는 무작정 섬을 찾아 떠나는 것보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미지의 섬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익숙한 일상에서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매일 보는 공간도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지의 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도에 나와 있는 섬을 전부라고 여긴다. 그러나 미지의 섬은 말 그대로 미지(未知)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존재다.

삶이란 새로워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익숙한 것이 되고, 다시 이전과 같은 굴레에 얽매이는 속세이다. 굴레 속에서 찾은 첫 번째 미지의 섬은 청소하는 여인이다. 주인공은 꿈에서 청소하는 여인과 헤어지고 멀리서 그녀를 볼 기회를 가지고서야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 전, 다행히 살아왔던 공간 속에서 새로움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무작정 떠나서 미지의 섬을 찾으려는데 사공이 모아지지 않아 자신감이 사라질 때 자신의 곁에서 새롭게 자신을 북돋우는 존재. 일상의 고마움을 돌아보게 하는 존재. 이 세상 살고 간,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 갈 모든 존재가 살아가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의미. 바로 미지의 섬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나는 변덕을 부려도 언제나 내 곁에 머물 줄 알았던 것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 사랑하던 사람과 애완동물들 그리고 추억 속의 물건들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어딘가 알 수 없는 공간에 가 있을 것 같다. 사라진 존재에 대한 향수일까. 현재에 대한 불만일까. 익숙한 것들에 대한 지겨움일까.

<미지의 섬>은 현재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한다. 이 세상은 얼마나 알 수 없는 세계인가.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또 다른 미지의 섬이다. 결국 탐구의 눈은 바깥에서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책은 단순하고 짧지만 주제 사라마구의 아련한 철학이 담긴 전 세계인들의 동화이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주제 사라마구 지음 | 송필환 옮김 | 조화로운 삶 | 2007년 11월



미지의 섬 - 주제 사라마구 철학동화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박기종 그림, 위즈덤하우스(2007)


태그:#주제 사라마구, #미지의 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