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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앞 전(前)은 금문체에서 보듯 원래 발을 뜻하는 지(止)와 그릇 명(皿)이 결합된 형태이다.
앞 전(前)은 금문체에서 보듯 원래 발을 뜻하는 지(止)와 그릇 명(皿)이 결합된 형태이다. ⓒ 漢典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걸을 수 없다/ 오늘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으니(踏雪野中去/不須胡亂行/今日我行跡/遂作後人程)"

서산대사의 선시로 알려진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이다. 백범 김구선생도 이 시를 애송하며 앞서가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과 도덕성을 떠올렸을 것이다. '앞'이라는 자리는 많은 고난을 헤쳐가야 하는 막중한 무게가 걸리는 자리이다. 또 불어에서 전위(前衛)부대를 의미하는 아방가르드가 실험적인 전위예술을 의미하는 것처럼 뭔가 신선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혜의 신인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이 깃들 무렵 날갯짓을 시작하듯, 모든 철학적 사유와 그 결과물인 지혜는 처음부터 선취되는 것이 아니라, 앞선 현실의 경험을 통해 인식되고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서산대사의 시처럼 눈밭에 남긴 발자국이 눈길을 헤매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듯이 앞서간 수레바퀴 자국인 전철(前轍)은 뒤따르는 사람에게 좋은 참고와 교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후생(後生)은 그 전철을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 한다.

앞 전(前, qián)은 금문체에서 보듯 원래 발을 뜻하는 지(止)와 대야를 나타내는 그릇 명(皿)이 결합된 형태이다. 제사를 지내는 종묘에 들어서기에 앞서, 먼저 발을 물에 담가 씻어야 한다는 데에서 '앞'의 의미가 생겨난 걸로 보인다. 이후 칼 도(刂)를 더해 '자르다'는 의미를 나타내고자 하였으나, '앞'이란 의미로 더 많이 쓰이자 칼(刀)을 아래에 또 더해 '자르다'는 뜻의 전(剪)을 만들었다. 발을 씻는 것이 곧 그 걸음을 단정하고 신중하게 하라는 의미일 테니 서산대사의 가르침과도 맥을 같이 한다.

30만 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난징대학살 기념관 앞에는 <전국책(戰國策)>에서 인용한 "지난날을 잊지 않는 것으로 훗날의 스승을 삼고,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개척해 가자(前事不忘, 后事之師, 以史爲鑑、開創未來)"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지난 과거사에 얽매여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 아픈 역사를 통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순자(荀子)>에 나오는 표현대로 "앞 수레가 이미 뒤집혀 넘어졌는데도, 뒤에 오는 자가 길을 바꿀 줄 모른다(前車已覆, 後未知更)"면 이 얼마나 무지하고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신라의 삼국통일 때 당나라의 도움을, 임진왜란에 명의 도움을 받고도 또 한국전쟁에서 전철을 되풀이하여 결국 분단으로 이어진 아픈 역사를 생각하면 도대체 수레가 몇 번을 넘어져야하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눈길의 걸음조차 가지런히 걸어간 선인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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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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