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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글을 모릅니다.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 까막눈 스님이었습니다. 벽에 글이 붙어 있으면 누군가가 읽어 주어야만 알 수 있었습니다. 뭔가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그 또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습니다.

절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땔나무꾼이었습니다. 절에 들어왔다고 해서 여느 스님들처럼 불경공부를 하거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방아나 쪄야 하는 신세였습니다. 그랬던 스님이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힘이 들어서 도망을 간 게 아닙니다. 너무나 엄청난 자리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물려받을 후계자는 이미 결정돼 있었습니다. 그 후계자를 추종하는 세력도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후계자 자리를 꿰차게 되었으니 자칫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야반도주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반도주를 한 스님은 누구며,  어떻게 야반도주를 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월호 스님의 참선 이야기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지은이 월호·배종훈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3월 12일 / 값 1만 6500원)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지은이 월호·배종훈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3월 12일 / 값 1만 6500원)
ⓒ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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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지은이 월호·배종훈, 펴낸곳 민족사)는 월호 스님의 참선이야기에 배종훈 작가가 그린 카툰 속 '냥'이의 수행일기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습니다. 몸에 좋은 보약도 너무 써 먹기가 곤란하면 피하게 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는 글이 읽기에 좋습니다. 내용이 제아무리 좋아도 딱딱하고, 지루할 뿐 재미가 없으면 잘 읽히지 않습니다.

참선과 수행에 담긴 의미와 카툰 속 고양이 냥이가 펼쳐나가는 일상이 재미있게 버무려져 있습니다. 영양가 듬뿍 담긴 비빔밥이 맛있게 비벼져 들어 있는 양푼 같습니다. 아삭거리며 씹히는 식감 같은 내용도 있고,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감칠맛 같은 의미도 듬뿍 담겨 있습니다.

월호 스님이 들려주는 참선이야기 속 주인공은 6조 혜능입니다. 땔나무꾼, 방아나 찧던 허드렛일 꾼, 까막눈, 야반도주를 한 스님이 6조 혜능입니다. 우리나라 절에서 스님들이 법문을 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거나 언급하고 있는 스님이 혜능일 겁니다.

'6조'는 달마대사를 초조로 해 6번째 후계자로 지목이 돼 부처님의 가르침과 법맥을 이은 스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네 가정사로 말하자면 한 가문의 혈통을 상징하는 '종손', 6대 종손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 스님이 야반도주를 했다니 정말 궁금할 것입니다. 기득권은 속세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기득권은 스님들 세계에도 존재합니다. 5조 홍인에게는 이미 신수라는 후계자가 있었습니다. 그게 대세였고 1000여 명의 추종자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땔나무꾼 혜능이 등장합니다. 지금 당장이야 글도 모르는 허드렛일 꾼에 불과하지만 홍인 스님은 그가 큰 그릇이라는 걸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이에 홍인 대사가 지팡이로 방아를 3번 탁 탁 탁 치고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즉 가장 야심한 시각인 3경에 방으로 찾아오라는 암호였던 것입니다. 혜능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3경에 찾아가니, 홍인 대사가 문에 천막을 쳐서 다른 이가 보지 못하도록 가려놓고는 금강경을 전수해 주었다고 합니다.
-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69쪽

대세가 굳어져 있는 상황에서 대세를 뒤집는다는 건 전혀 엉뚱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불상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홍인 스님은 혜능을 후계자로 인정하고, 당신 스스로 한 밤중에 노를 저어 강을 건너게 해주며 야반도주를 시킵니다.

야반도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혜능 스님

그런 상황에서 혜능이 화를 당하지 않는 길은 강을 건너는 것뿐이었을 겁니다. 홍인 대사는 당신 스스로 노를 저어 강을 건너게 해주며 혜능에게 "이 강은 내가 너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네주지만 너는 더 많은 사람들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네주라고"고 말해줍니다.

혜능은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리가 돼주고, 배가 돼 주었습니다.

참선하는 스님들은 "복(福) 삼생(三生)의 원수다. 복 지으려고 한 생 까먹고, 복 누리느라고 한 생 까먹고, 복 까먹느라고 한 생 까먹으면서 돌고 돈다"고 말할 정도로 복을 경계 했습니다. -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59쪽

혜능 대사는 좌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설명합니다. 가부좌 틀고 앉아 있는 것이 꼭 좌선이 아닙니다. 제대로 수행하려면 마음이 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품을 동요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91쪽

5조 홍인 스님이 무지렁이인 혜능을 선택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그렇게 야반도주 한 혜능의 행적도 궁금합니다. 글도 모르는 까막눈 스님이 보였을 참선(행동)과 말이 오늘날 우리나라 절에서 이뤄지는 법문에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월호 스님은 6조 혜능의 삶을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지은이 월호·배종훈, 펴낸곳 민족사)에서 아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줍니다. 혜능을 강조하지도 않고, 참선과 수행을 강조하지도 않지만 읽다보면 혜능을 통해 참선, 수행이 보이고, 수행과 참선을 통해 혜능의 삶이 그려집니다.

배종훈 작가가 그린 카툰 속 냥이가 재롱을 피우듯 다시 한 번 들려줍니다. 참선과 수행은 내 안에 있는 나를 찾는 것이라고. 읽다보면 재미있고, 재미있게 읽다 보면 저절로 참선이 익숙해지며, 어느새 수행자를 닮아가고 있는 자아를 발견하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지은이 월호·배종훈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3월 12일 / 값 1만 6500원)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 월호 스님의 참선 이야기와 냥의 수행일기

월호.배종훈 지음, 민족사(2015)


태그:#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월호 스님, #배종훈, #민족사, #혜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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