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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참 좋아했어요. 학교에서 배우고, 혼자 공부했어요. 중학교 때 선생님한테 따로 수업용 테이프 빌려 달라고 해서 녹음해서 늘어질 때까지 듣고 발음 따라하고 그렇게 했더니 꽤 잘하게 되었네요."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고미래(가명)씨는 '공부가 제일 좋았어요' 타입이다. 영어가 좋아서 놀듯 공부했더니 특기가 되었고, 그 특기를 살려 일을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영어강사 경력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었다. 유치원 영어수업, 어학원, 중고등학생 내신·수능대비 학원, 특목고 준비반, 직장인 강의, 1:1 회화과외 등 그간 가르친 학생, 소속됐던 학원도 다종다양하다.

어느 순간 학원에 속해 일하는 것이 좀 불편해졌다. 가르치는 것 외에 신경 쓸 일이 많았다. 특히 대형학원으로 갈수록 배정받는 수업 시수 때문에 선생님들끼리 일종의 눈치 싸움을 벌이게 되는 상황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다. 수업도 가뜩이나 늦은 밤에 끝나는 데다가, 회식이 잦은 것도, 그걸 거절하는 것도 몸과 마음에 부담이 됐다. 그러던 중 공교육에 도입된 '방과후학교'를 알게 되었다.

"학원이나 과외를 하며 맘 상하는 일도 좀 겪고 하다가 방과후학교를 알게 되었어요. 밤 늦도록 학원 몇 개씩 하는 것보다 점심에 시작해 늦어도 6시에는 끝나는 것도 참 매력적이었죠. 초등학교에 주로 나가고, 중학교도 해본 적 있어요.

방과후학교 수업 종류는 뭐, 정말 많아요. 제가 하는 영어처럼 일반 학교 교과목들은 다 있고요. 가야금, 오카리나, 난타, 양궁, 골프 같은 신기한 예체능 수업이나 여러 창작·문화교실이 학교마다 다양하게 개설되어 있어요. '돌봄교실'이라고 해서 늦게 맞벌이 부모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요."

방과후학교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따라 2004년부터 시작된 수준별 학습이다. 보충학습과 특기적성교육, 방과후 보육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다가, 이듬해 3월 이들 프로그램을 '방과후학교'로 통합하여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이후 2007년 정식사업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미래씨는 이명박 정부가 한참 열을 올리며 방과후학교를 확대·추진하던 2008년부터 이쪽 일을 시작했다.

 방과후학교 운영체계 및 목적
 방과후학교 운영체계 및 목적
ⓒ 서울시교육청 방과후학교 지원센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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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주는 것도 없이 수수료 떼어가는 송출 업체

"처음에 들어갈 때는 브로커업체(송출업체)를 통해 들어갔어요. 학교와 강사가 직접계약을 맺는 게 기본 방식인데, 당시에는 방과후학교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교사 지원하는 과정도 막막하고 해서 업체를 통해 취업을 했어요.

기본급에다가 제가 데리고 있는 학생 머릿수 곱하기 얼마 해서 업체에서 월급을 주었고요. 원래는 임금(수업료)도 학교가 직접 강사 통장에 쏘아주는 건데요, 업체를 꼈기 때문에 수수료를 냈어야 했어요. 그래서 제 이름으로 된 학교 월급(수업료)통장을 브로커업체에서 뺏어가 수수료 제하고 제 명의로 된 제2통장으로 월급을 송금해 줬어요."

현행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많이 있으나 학교의 시설이나 지도교사가 부족하여 학교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강좌가 있는 경우, 비영리단체(기관)에 프로그램 전체 또는 일부, 영리단체에 개별 프로그램 단위로 위탁 운영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체 프로그램 없이 강사 송출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송출업체와의 계약은 금지되어 있다. 지난 2014년 인천시 26개 학교가 관할교육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자체 강사가 없는 인력 송출업체인 비영리법인 2곳과 방과후학교 운영위탁 계약을 체결한 것이 감사원 감사로 밝혀지기도 했다.

"처음 1년 정도 해보다 보니 브로커나 위탁업체가 정말 안 좋은 거라는 의식이 커졌어요. 방과후학교 강사가 강의만 하는 게 아니라, 교육 내용을 기획하고 일일 교육계획안 같은 것도 만들어 올리고 학부모에게 학생 발달 향상 알림 같은 상담까지 다 하거든요. 그런데 세금에도 안 잡히는 수수료 이익을 챙기는 업체가 얄미운 정도를 넘어 정말 비윤리적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업체로부터 어떤 특별한 관리나 복리후생 같은 걸 제공받아본 적이 전혀 없거든요. 사실 강사 구인 정보나 관련 자료 같은 것은 각 시·도 교육청별 지원센터 홈페이지만 가도 다 볼 수 있어요. 교육에 기여한 바는 없이 소개료 조로 수업료의 30%나 가져가는 건 좀 이상하죠."

학교 직원이 아니니, 학교 시설 이용료 내래요

이제 미래씨는 단독으로 일한다. 학교에 직접 이력서 넣고 연락이 오면 면접을 보러 간다. 이제까지 강의안이나 가정통신문을 모아 만든 포트폴리오도 몇 권 챙겨가 보여주기도 하고, 영어 인터뷰나 강의 시연을 요청하면 그것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 학교 수업강사로 발탁되면 학교와 3개월(한 학기) 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방과후학교 출강을 시작한 이래 네 번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금, 미래씨가 맡고 있는 학생은 130명 정도. 한 반에 12명에서 20명까지 8개 반 수업을 월-목, 화-목, 수-금, 월-수-금 이렇게 나눠 수업진행을 한다.

영어가 인기과목이기도 하거니와 다년간의 노하우를 쌓은 미래씨의 수업은 학생이 끊이지 않고 늘 많은 편이다. 원어민 강사 수업도 있지만 학생수 경쟁을 크게 의식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만큼 안정적인 수업 노하우를 가진 영어 선생님인 것 같았다.

"수업 신청이 5명 미만이면 수업 폐강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적은 없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꼭 배워야 하는 언어, 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 주요과목이잖아요(웃음). 계약은 별 일 없으면 계속 연장되기는 하는데, 저는 나름 별일이 계속 생겨서 4번을 옮겼어요. 처음 학교는 업체 통해 들어간 거니까 업체 계약 해지 후 옮긴 거고.

두 번째 학교에서는 갑자기 학교장이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아져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첫째로 갑자기 11시 출근을 강요하더라구요. 원래 방과후 강사는 수업 20분 전에만 출근하면 되는 건데요(현재는 직전 출근으로 지침 변경됨). 그리고 저한테만
수용비도 확 인상해서 받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방과후 교사들은 학교 소속이 아니니까 학교시설이용료 조로 수용비라는 걸 학교에서 받아가는데, 세후 월급액 3~10% 이내(당시 기준)로 받도록 되어 있었어요.


올린 금액도 기준 최대치 10%에 딱 맞춰 불법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20만 원 대로 확 올려 받겠다고 한 거죠. 금액 차 때문에도 놀라긴 했지요. 하지만 뭐 그거 못 내겠어요. 기분이 너무 나빴던 건, 일괄로 올린 게 아니라 저한테만 따로 요구하셨기 때문이었죠. 아마 제 수업 신청학생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고 그러신 것 같아요.

그 다음 세 번째 학교에서는 위탁업체 때문에 또 그만두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긴 처음에 갔을 때만 해도 위탁 운영을 안 하고 있었어요. 교장이 부임한 첫 해라 위탁 추진은 부담스러웠을 테죠. 위탁이 사실 말이 많거든요. 방과후 선생님들 처우 문제도 그렇지만, 위탁업체와 학교 혹은 학교장 사이 비리문제나 수수료 때문에 전반적으로 수업료가 올라가는 등 학부모들도 반기지 않는단 말이죠. 그러다가 다음해 위탁을 추진하기 시작했어요. 위탁업체가 들어와 학교 전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저처럼 단독 계약한 선생님들은 나가야 하거든요.

그때 그 업체는 '현재 있는 선생님들 자리와 수업을 보전해 주겠다. 대신 수수료는 내야 한다. 우리 업체 소속이 되면 점점 수업료 단가도 올라갈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방과후 시작할 때 생긴 '업체'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기도 했고, 그냥 감언이설로 들리더라고요. 그 학교에 계속 남고픈 맘도 컸기에 며칠간 고민하다 결국 그만두겠다고 학교에 말했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위탁계약이 1년 만에 해지됐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업체가 했던 얘기는 감언이설이 맞았던 거죠."

옮길 때마다 미래씨도 아쉬움이 크다. 1년이든, 2년이든 몇 학기 이어 미래씨 수업을 듣던 친구들을 계속 만나며 연속성 있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학교 선생님도 아닌데, 어떻게 보면 이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미래씨는 어느 순간부터 '거리두기'를 하는 편이라고 했다. 영어를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미래씨인데, 그 일상에서 적당히 마음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방과후학교를 포함한 사교육 시장에서 계속 일하는 한, 꾸준히 지속적으로 가르치기 어렵고 일터를 자주 옮겨야만 할 테니, 학생에 대한 애정과 영어에 대한 열정을 다 쏟아내기보다는 적당히 쏟고 적당히 거두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 건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정하나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 3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방과후학교, #서울시교육청, #방과후학교 위탁, #돌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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