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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9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성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7년째로 접어들던 당시, 특별법 폐지와 생존권 보장을 외치면서 '전국 성 노동자 결의 대회'가 열린 것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이들의 요구사항은 '우리도 국민이다', '권리를 존중해달라'는 것이었다. 성매매 종사자의 자립과 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시행된 성매매 특별법이 오히려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주장이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살아가던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들자 대중의 충격은 컸다. '성 노동'이라는 단어와 '생존'의 조합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설고 거북한 느낌을 준다는 의견도 당시 인터넷 게시글에서 달궈졌다. 그만큼 해당 사안이 생소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성 노동이 불쾌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성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 표지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 표지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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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2015년 2월,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가 성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두 사람을 만난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성 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책은 성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성매매에 종사한 경력을 바탕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는 '밀사'와 '연희'를 인터뷰했다.

밀사는 대학에서 여성학·국문학을 공부하던 중, 2011년에 '조건 만남' 경험담을 트위터에 작성했다. 바로 '성 노동 실험'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성 노동' 자체가 자극적인 이슈라 반응이 꽤 뜨거웠다. 그녀는 이듬해부터 2014년 초까지 성 노동자 권리 모임 GG에서 활동가로 참여한 바 있다. 연희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미아리, 안마 시술소 등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2011년 GG를 알게 돼 현재까지 성 노동 비범죄화를 목표로 성 노동자 권리 운동을 하고 있다.

120쪽의 비교적 얇은 책은 성 노동의 다양한 쟁점을 묵직하게 다룬다. 밀사가 2013년 겨울에 쓴 대자보를 시작으로, 성 노동 분야의 속사정이나 종사자들이 처한 현실을 자세히 언급한다. 그는 성매매 특별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범죄자로 낙인찍는 일보다 성 노동자의 보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각계의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현안을 주제로 고백을 털어놓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물결에서 일종의 음모론 하나가 제기된 적이 있다. 2013년 12월 18일 페이스북에 '나는 성매매 여성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올라오자, "이걸 여성이 썼을 리 없다"며 '일베'의 자작극이라는 비난이 끓었다. 이에 밀사는 다른 대자보 하나를 써서 세 곳의 대학에 게시했다. "여러분, 부디 안녕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성 노동자도 여러분과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대자보 사례뿐 아니라,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성 노동에 대해 냉담하다. 본문에서 밀사는 한국의 남성 중심적 시각이 여성의 성적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런 사고 방식이 성 노동자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성매매 여성을 나약하고 가련한 피해자, 혹은 돈을 위해 몸을 파는 파렴치한 범죄자로 나누는 이분법이 문제라고도 지적한다. 실제로는 그 양쪽의 가운데,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인다.

두 사람, 성 노동자와의 인터뷰

서울 영등포 지역 성매매 여성들이 지난 2011년 5월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성매매 특별법 폐지와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 영등포 지역 성매매 여성들이 지난 2011년 5월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성매매 특별법 폐지와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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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씨는 밀사와 연희를 상대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대중의 시각에서 성매매를 바라보는 시각을 대신한 질문과 함께 두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밝히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성 노동자임을 밝히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밀사의 말은 성 노동자를 대하는 오늘날 한국의 상황을 압축해서 들려준다.

성 노동의 비범죄화를 주장하면서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의 의견도 인용한다. 성 노동 합법화가 여성의 도구화를 가져온다는 비판에는 성 담론에 대한 문제 제기로 반박한다. '모든 것의 구매'가 허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성 노동만 예외로 취급하는지 오히려 되묻기도 한다. 결국, 논점은 한국의 '폐쇄적인 성 관념'을 향한 질타로 귀결된다.

이미 성 노동 합법화가 이뤄진 외국의 사례도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주나 독일, 뉴질랜드와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이와 대비되는 한국은 현재 성매매 특별법이 11년째 시행 중인데, 구매자뿐 아니라 성매매 종사자까지 처벌하면서 '보호'가 아닌 '압박'만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성매매 업소는 전보다 줄어들었지만, 인터넷을 매개로 개인이 만남을 갖는 방식 등으로 성 노동은 더욱 음지화됐다. 법이 만들어진 애초의 목표와 달리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다.

책은 성 노동에 대한 합법화에 앞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은 성 노동을 두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로 윤리적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말에 밀사는 "옳은 말이지만 성 노동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의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성매매를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현장의 상황을 세밀하게 설명한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노동계 전반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나뉜 것처럼 성 노동자도 다양한 계층이 분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업 성매매가 아니라 아르바이트나 등록금 마련을 위해 단기적으로 일하려는 여성도 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성 노동자로 생각하는 사람도 줄어들어서, 권리 주장을 위한 연대가 더욱 힘들다는 토로도 엿볼 수 있다.

소외받는 이들의 권리를 위해

와서 게임만 하다 가는 손님이 있었어요. 한참 애니팡만 하더니 그냥 가더라고요. 그때는 이 사람 참 귀엽네, 하다가도 보내고 나니 마음이 안 좋은 거예요.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또 와요. 와서 또 게임 하고. 요즘은 카카오톡으로 하트를 보내달라고 합니다(웃음).

가끔은 여자 친구 문제, 결혼 생활 상담도 해요. (중략) 또 다른 분은 와이프가 바람 피우는걸 알고는 홧김에 온 사람도 있었어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자초지종을 털어놓더니 막 울어요. (중략) 마음 약하고, 따뜻함이 필요한 사람들, 그런 분들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본문 112쪽 중에서)

책의 설명에 따르면, 성 노동은 육체 노동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감정노동이기도 하다. 흔히 '쉽게 돈 버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선에서 그치지만, 실상은 착취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처지에 더욱 가깝다. 공권력도 성 노동자를 범죄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책은 성매매 세계를 직접 체험한 당사자들의 이야기로 <성 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는 무거운 고민을 이어간다.

밀사와 연희는 성 노동자에 대한 적개심을 차별의 근거로 삼지 말자고 주장한다. 무작정 처벌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 노동이 명백히 절망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는 밀사는 성 노동 운동이 그 절망을 직시하고 실천 가능한 것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독자가 그녀들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성 노동 담론에 대한 사회적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성 노동자들의 절망이 미완의 제도와 대중의 멸시에 기인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찬반이 갈리는 다양한 논점을 떠올리기에 앞서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할 부분은, 성 노동 종사자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매우 단순한 사실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성 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밀사, 연희, 지승호 지음/ 철수와영희 / 2015. 2. 14. / 8500원)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 - 우리의 존재가 실천이다

밀사.연희.지승호 지음, 철수와영희(2015)


태그:#성노동자, #GG, #여성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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