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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 마케팅한 <조선일보> 창간 95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국가 자긍심' 조사를 실시했다. 이 신문은 2003년 ISSP 조사결과와 비교해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좋은 나라'에 대한 긍정응답률이 10%P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 3월 5일자 1면
'애국심' 마케팅한 <조선일보>창간 95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국가 자긍심' 조사를 실시했다. 이 신문은 2003년 ISSP 조사결과와 비교해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좋은 나라'에 대한 긍정응답률이 10%P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 3월 5일자 1면 ⓒ 조선일보pdf

<조선일보>가 3월 5일 창간 95주년을 맞았다. <조선>은 창간특집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1면 머리기사 제목에서 여론조사 주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73%"가 그것이다. 소제목 또한 비슷한 내용이다.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보다 좋은 나라, 54%"이다. 이어지는 소제목에 눈길이 간다. "12년새 10%p 상승"이다. 12년 전, 즉 2003년은 노무현 정부 당시다.

<조선>은 소제목뿐 아니라 기사 본분에서도 12년 전 조사결과와 비교했다. 이 신문은 미국 시카고대학 여론조사센터를 비롯한 47개국 연구기관의 연합체인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이 지난 2003년 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일한 조사와 비교하며, "한국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란 응답이 44.0%에서 10%포인트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12년 전 '2003년 조사결과', 분석해 봤더니

ISSP 2003 - National Identity II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me)에서 발간한 2003년 National Identity 연구보고서
ISSP 2003 - National Identity II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me)에서 발간한 2003년 National Identity 연구보고서 ⓒ ISSP누리집

먼저 <조선>이 동일한 조사항목이라고 강조한 2003년의 원질문과 2015년 이 신문의 질문을 비교해 보자.

ISSP 질문항목 : Generally speaking, [COUNTRY] is a better country than most other countries(2003년)
조선일보 질문 : 한국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인가?(2015년)

ISSP 질문에 등장하는 'COUNTRY'는 조사를 진행하는 나라, 즉 우리로 본다면 '한국'이 된다. 2003년의 결과는 <조선>에서 보도한 그대로다. '매우 그렇다' (10.9%), '그렇다' (33.3%)로 긍정응답이 44.2%로 집계됐다.

<조선>은 스스로 강조한 것처럼 2015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긍정응답이 54.0%로 12년 전과 비교할 때 10%p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이와 같은 단순비교는 조심스럽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2003년 조사와 2015년 조사는 조사방법과 표본의 수가 상이한, '다른' 조사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자신들이 수행하지 않았던 2003년 조사결과를 보도하기로 결정했다면, 독자들에게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했어야 한다. 2003년 조사결과만 놓고 봐도 애초 한국 국민들의 '국가 자긍심'은 결코 낮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더 살펴보자.

2003년 ISSP는 36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각 나라 옆에 기록한 수치는 'COUNTRY(응답자의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자랑스러운가'란 항목에 대해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를 합한 긍정응답 수치다.

프랑스(41.9%), 서독(39.7%, 동독과 서독을 구분해 여론조사 실시), 포르투갈(43.9%), 네덜란드(42.8%), 스웨덴(40.8%), 스위스(25.5%) 등이다. 당시 44.2%라고 나온 한국의 수치가 어떤 수준인지 비교할 수 있겠다.

반면 필리핀(54.5%), 아일랜드(55.7%), 칠레(58.3%) 등은 맘껏 '애국심'을 뽐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높은 점수를 부여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자랑스럽다' 긍정응답 수치는 무려 82.6%를 기록했다. 

2003년도 조사결과 나온, 우리 국민의  '나는 다른 나라보다 '한국'이 자랑스럽다'에 '그렇다'고 응답한 44.2%는 어떻게 보면 적당한 수준이었다. 각 나라별 조사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긍정응답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신호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2015년 <조선>은 '2003년 대비 10%p 긍정응답 수치가 증가했다'고 강조했는지 의문이다. 이 신문이 보도한 2015년의 긍정응답 수치는 2003년의 필리핀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나?' 항목은 왜 비교하지 않았나

<조선>이 보도한 '2003년 동일한 조사'  "Generally speaking, [COUNTRY] is a better country than most other countries" 해당 질문내용
<조선>이 보도한 '2003년 동일한 조사' "Generally speaking, [COUNTRY] is a better country than most other countries" 해당 질문내용 ⓒ ISSP누리집

이날 <조선>은 1면 머리기사로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항목에 '자랑스럽다'로 응답한 수치가 73%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조선>은 왜 이 수치를 12년 전 ISSP 조사결과와 비교하지 않았을까. ISSP의 2003년 조사주제는 <National Identity II>(민족주체성)였다. II가 붙은 까닭은 지난 1995년에 이어서 두 번째로 같은 주제를 조사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ISSP는 2013년 세 번째로 <National Identity> 조사를 실시했지만 홈페이지에 아직 그 결과를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National Identity> 주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와 유사한 질문이 존재한다.

ISSP 질문항목 : I would rather be a citizen of [COUNTRY] than of any other country in the world (2003년)
조선일보 항목 : 한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나? (2015년)

2003년 ISSP 질문, 즉 '나는 세계 다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보다 '한국' 국민이 되고 싶다'에 대한 '한국' 응답자의 답변을 보면 '매우 그렇다'(37.2%), '그렇다'(33.4%),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19.6%), '그렇지 않다'(9.0%), '매우 그렇지 않다'(0.8%)로 조사됐다. 긍정 응답률이 70.6%로 조사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실시한 2015년 '한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나' 조사결과를 보면 '자랑스럽다' 73.5%, '자랑스럽지 않다' 26.0%였다. 표본오차를 고려한다면 12년 전과 긍정응답률은 비슷하다. 주목할 대목은 부정응답률이다. 참고로 12년 전인 2003년의 부정응답률은 9.8%였다.

<조선>은 해당 항목에 대한 12년 전 ISSP 조사결과와의 비교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앞선 조사항목에 대해서는 12년 전 조사결과와 비교해 2015년 조사결과 10%p 상승했다고 소제목과 기사 내용에 의미를 부여한 것과 대비된다.

12년 전 ISSP의 위 질문과 '한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나?'는 달라서 비교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2015년의 긍정응답률은 동일하게 나온 반면 부정응답률이 대폭 상승해서 비교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한 대목이다.

조사방법도 다른데... 왜 2003년과 2015년을 비교했나

곧 공개될 <National Identity Ⅲ> ISSP 홈페이지에는 2012년 실시한 조사결과가 공개됐다. 2003년에 이어 2013년에도 <National Identity Ⅲ>를 조사했다. 곧 그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곧 공개될 ISSP 홈페이지에는 2012년 실시한 조사결과가 공개됐다. 2003년에 이어 2013년에도 를 조사했다. 곧 그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 ISSP누리집

2003년 ISSP의 <National Identity II> 조사 당시 '한국' 조사를 진행한 주체는 성균관대학교의 'Survey Research Center'였다. ISSP 문서에 따르면 조사는 두 달에 걸쳐 진행됐고 표본인원 1315명을 상대로 '면접조사(face to face)' 방식으로 진행했다.

2015년 <조선>의 '국가 자긍심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월 1일 하루 동안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병행한 RDD(임의걸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방식과 표본의 수가 다른, 그 결과값에 대한 인용에 많은 설명이 요구되는 상이한 조사였다.

ISSP의 2003년 <National Identity II> 결과보고서는 681쪽에 달한다. 조사결과를 보여주기 이전에 ISSP는 해당 조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상세한 조사방식 설명에선 동일한 질문항목에 대한 각 나라별 응답결과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조사결과를 인용하는데 신중한 ISSP와 달리, <조선>은 2015년 3월 1일 하루 동안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결과를 2003년 ISSP 조사결과와 비교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은 대부분 다른 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에 대해 우리 국민의 '그렇다' 응답률이 증가했다면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조사방법도 달랐고, 2003년 조사결과에서 '한국'의 긍정응답률 44.2%는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는 수치가 아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1995년에 처음 실시된 <National Identity> 조사는 2003년에 두 번째로 시행됐고 2013년에 세 번째로 실시됐다. 만약 정확한 비교를 원했다면, 10년 간격으로 진행된 ISSP의 두 조사를 비교했어야 한다. 물론 아직 2013년 조사결과가 공개되진 않아서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 조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왜곡'을 낳을 수 있다. 언론이라면 매우 조심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조선>이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ISSP#조선일보#NATIONAL IDENTITY#국가자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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