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입니다. 윤성중, 천선숙 부부와 초등학교생 아들 윤석진의 일가족과 대면했습니다. 남편은 서재를 살피고 책을 뽑아 읽는 것이 모티프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었고 밝은 성격의 부인은 아내와 대화를 즐겼습니다. 아들은 스포츠와 동물을 좋아하는 내 막내아들과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모티프원의 게스트로 대면했던 이 첫 만남 이후, 지난 9년 동안 윤성중 선생님과 오랫동안 말을 섞어 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속에 든 얘기를 모두 나누어 가진 것처럼 아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아내와 천선숙 사모님과의 관계가 그렇고, 막내 영대와 석진이의 관계가 또한 그렇습니다.
이런 가족과 가족의 이심전심 관계는 순전히 윤성중 선생님의 책 선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모티프원 첫 방문 후 윤 선생님은 우리 식구들의 특별한 사정에 맞춰서 책을 선별해서 몇 권씩 보내왔습니다. 때로는 사람이 못가는 대신 책을 게스트로 보낸다며 숙박비만큼의 책을 사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책과 함께 전해지는 윤 선생님의 편지가 왜 그 책이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뭉근히 드러냅니다.
수십 차례 한 박스씩 보내온 책들과 편지들만으로도 윤 선생님이 세상을 대하는 기준과 사유의 질서가 읽혔습니다. 다른 사람도 건강한 가치를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방 하나의 책상에 그 책과 편지들을 모아두고 '윤성중 문고'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새 책을 몇 권씩 묶음으로 보내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므로 윤 선생님으로부터 책을 받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제 마음 빚이 점점 늘어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2다시 책을 받았습니다. 봄소식보다 앞서 온 책 꾸러미를 풀면서도 윤 선생님의 부담에 자꾸 마음이 쓰였습니다. 책갈피에 꽂힌 윤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의 이런 내심을 들킨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대전의 윤성중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19년 전 첫 돈을 벌며 매년 기부기관을 늘려가자는 약속을 스스로 하였습니다. 당시엔 이런 생각이죠. '정기후원 한 달 회비는 만 원. 일 년에 12만 원이면 되는구나. 연봉은 그 이상 오르니 가능하겠구나!' 그렇게 시작되어 올해 20번째 후원회원 가입예정입니다. 모티프원은 어느 해인가 저 스스로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그런 이유로 책을 꾸준히 보냈습니다. 기부는 불쌍한 사람 적선이 아니라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모티프원에 책 보내는 행위는 제 약속의 조건에 충분하였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문고를 만들어 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정년퇴직 후엔 하나씩 후원기관을 줄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티프원이 그 마지막이길 바랍니다."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책의 힘은 콘텐츠 자체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의 행위 자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윤 선생님의 한결같은 9년의 실천이 말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