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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7일 오후 3시 19분]

"할 만큼 했는데 지쳤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주세요. 장기는 다 기증하고 빌라 보증금(500만 원)도 사회에 환원하길 바랍니다…."

홀로 지적장애가 있는 언니를 돌보며 어렵게 살아오던 20대 여성이 대구시 수성구 들안길의 한 음식점 주차장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4일 오전 10시께 류아무개(28)씨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식당주인 김아무개(28)씨는 "아침부터 낯선 차량이 주차돼 있어 내부를 들여다보니 한 여성이 운전석에 앉아 조수석 쪽으로 쓰러져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류씨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적장애 1급인 언니(31)를 홀로 돌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류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대구시 남구 봉덕동의 한 빌라에서 언니와 둘이 살았다.

숨진 류씨는 두 살인 갓난아기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곧바로 재가하면서 연락이 끊기자 언니와 함께 할머니가 있는 삼촌집(광주 소재)에 맡겨져 자랐다. 지난 2007년 류씨의 언니가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가자 언니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수소문 끝에 부산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언니를 만난 류씨는 대구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많이 힘들어했다. 1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생활이 어려워져 류씨는 언니를 시설보호소에 보내기도 했지만, 언니가 류씨와 함께 살기를 원해 함께 생활해왔다.

류씨는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생활이 나아지지 않자 수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류씨는 지난 20일 집안에서 연탄불을 피웠다가 언니가 살려달라며 창가에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가 목숨을 건졌다.

류씨의 언니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이 며칠 전 높은 곳에서 같이 뛰어내리자고 했지만 무섭고 겁이 나서 거절했다"라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류씨의 언니가 평소 양손을 떨고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는 등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라면서 "언니가 동반자살을 거부하는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자 류씨는 차마 같이 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류씨는 언니와 함께 생활한 집의 월세(36만 원)를 3년 동안 한 번도 밀려본 적이 없지만, 최근 두 달치 월세를 내지 못했다. 또 도시가스 사용요금과 카드 할부값 30여만 원도 내지 못했고 장애인 차량으로 등록된 자동차보험도 만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류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에서 언니를 좋은 시설로 보내주고 자신의 장기는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집 임대보증금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류씨의 언니는 다른 지역에 있는 삼촌이 돌보고 있다.

지난 24일 장애인 언니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류아무개씨의 집 우편함. 가족들이 이미 우편물을 수령해가고 몇 장의 전단지만이 남겨져 있다.
 지난 24일 장애인 언니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류아무개씨의 집 우편함. 가족들이 이미 우편물을 수령해가고 몇 장의 전단지만이 남겨져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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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씨가 숨지자 지역에서는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류씨가 거주하고 있는 남구청의 관계자는 "언니가 지적장애 2급인 데다가 정신질환까지 있어 1급 장애판정을 받았다"라면서 "보호시설에 있을 때 자해를 하는 등 소동을 벌여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난 12일 동생이 언니를 보호시설에서 데려오면서 낮에는 주간보호소에서 돌보도록 하고 야간에는 자신이 돌보겠다고 했다"라면서 "하지만 많이 힘들어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조민제 대구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언니는 장애등급을 받아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동생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라면서 "재량 권한을 통해 예외를 인정하는 제도가 있는데 절차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지난해 대구시가 복지사각지대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복지지원 등이 철저하지 못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을 모르고 발생한 것이라면 복지대책을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지역 장애인단체들은 류씨의 죽음에 대해 우리사회와 공공기관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장애인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태그:#지적장애, #대구수성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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