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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들 지만씨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된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심 판결에 앞서 주진우 기자는 정철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판사들도 무죄가 확실하다고 해. 나도 무죄라고 생각해. 그런데 이번엔 잘 모르겠어. 가까운 어른들에게는 작별 인사를 하고 있어. 예전에 우리 선배들도 죄가 있어서 감옥에 간 건 아니니까…. 시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면, 비판적인 기자, 얄밉고 미운 기자라고 찍어서 감옥에 보낸다면 어쩔 수 없지. 대법원에 상고는 하지 않을 생각이야. 실형이 나오면 감옥에 가려고." - 정철운 기자의 인터뷰 내용 중

상식 있는 판결로 주진우 기자에게 무죄가 선고됐지만 기원전 399년 신에 대한 불경죄와 젊은이를 타락시킨 죄로 민주정이던 아테네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던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구형받고 독배를 마셔야만 했다. 소크라테스, 역시 자신이 죄가 없다고 변론했지만 구태여 자기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은<변명>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은<변명>이다. ⓒ 이제이북
정암학당 플라톤 원전 번역 18번째 역본으로 나온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가독성에 있어서나 작품 해설에 있어서  빼어난 역서다.

중역본으로 읽었던 때와는 읽혀지는 내용이나 이해도가 확연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원전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크게 설득과 진실, 고발에 대한 항변, 소크라테스의 삶, 소크라테스가  동정에 호소하지 않는 이유로 되어 있다.

"아테네인 여러분, 나를 고발한 사람들로 인해 여러분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로 인해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그들은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진실에 관한 한 그들이 사실상 아무것도 말한 게 없다 할 수 있습니다." - 책 내용

소크라테스는 법정 사람이 아닌, 아테네 민중 모두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저 서두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단순히 재판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항변하거나 구차하게 목숨을 빌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짧은 문장 안에 소크라테스는 삶과 철학만이 아니라, 진실이 아닌  설득, 즉 거짓으로 포장된 설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지 깨닫게 한다. 현대에서도 소크라테스가 직면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명예훼손죄로 고발을 당해 법정에 서기도 한다. 때때로 무죄가 확실함에도 정치적 이유, 지배 세력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예수나 소크라테스처럼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과 철학이 옳고 좋은 것이며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철학적 지식을 이용해 당시 사교육에 열을 올리던 소피스트들처럼 많은 돈을 요구하는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개인의 영화를 추구하지도 않고 가난한 삶을 살았음을 강변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충실했으며 내면의 소리에 따라 살면서도 신을 인정하고 공경했다고 말한다. 다만 보통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에 대한 불경죄와 젊은이를 타락시킨 죄로 고소를 당했다고 말이다.

"아테네인 여러분 참으로 받아 마땅한 것에 따라 형량을 제안해야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것도 나에게 어울릴 만한 그런 유의 좋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이요, 유공자이며 여러분에게 권고하는 일을 하기 위해 여유를 누릴 필요가 있는 사람인 나에게 무엇이 어울릴까요? 이런 사람한테는 아테네인 여러분, 시 중앙 청사에서 식사 대접을 맏는 일보다 더 어울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 책 내용 중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식을 팔아 부를 누리지도 않았고,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전쟁에서 공을 세운 유공자니 자신이 받을 것은 형량 구형이 아니라 시 중앙 청사에서 영예롭게 식사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얼마나 자기 삶에 당당한 태도인가. 그는 사형을 구형하고 벌금이나 추방을 택하길 바랐던 아테네 법정에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살아 온 삶의 정당성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념과 신념을 지킨 비전향 장기수와 무죄를 확신하지만 시대가 자신을 감옥에 보낸다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감옥에 갈 것이라던 주진우 기자가 겹쳐진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변명대로 비루한 삶과 당당한 죽음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아니,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 - 책 내용

덧붙이는 글 |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 저 . 강철웅 옮김/ 이제이북/ 11,000원



소크라테스의 변명 - 문예교양선서 30

플라톤 지음,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1999)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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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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