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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4년 5월 4일, 오월의 고향 경로잔치에서 나란히 앉은 박종성, 박종시 자매. 98세, 91세의 두 분은 한 마을로 시집와서 평생을 이웃으로 사셨고 작년 12월, 마침내 이승과 저승으로 얼마가 될지 모른 시간을 갈라 앉았습니다.
 2014년 5월 4일, 오월의 고향 경로잔치에서 나란히 앉은 박종성, 박종시 자매. 98세, 91세의 두 분은 한 마을로 시집와서 평생을 이웃으로 사셨고 작년 12월, 마침내 이승과 저승으로 얼마가 될지 모른 시간을 갈라 앉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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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이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지난해 12월 18일, 백수(白壽)를 불과 18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이모님이 돌아가시기 11일 전, 고향방문 길에 이모님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허리가 불편해서 꼿꼿이 앉기가 거북하다고 하셨지만 정정하셨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10년 전이나 다를 바가 없이 정신이 또렷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이모님의 여덟 살 아래동생입니다. 이모님은 부항댐 건설로 지금은 물에 잠겨버린 용촌에서, 삼도봉 아래의 시골마을 앳골로 먼저 시집을 오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마을의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한 농사꾼 아버지를 어머님께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이 한 마을로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평생 한동네에 사시면서 짙은 여자형제간의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고깃국을 끓여도 냄비에 서로 퍼 날랐고 아들딸들도 형제의 예를 이어갔습니다. 60년 전 먼저 세상을 버린 이모부를 대신해 그 집의 지게가 망가져도 대목과 소목의 특별한 솜씨를 가진 아버지가 달려가서 고쳐드리곤 했습니다. 이모네 가족들은 연로한 부모님 두 분만이 고향에 계시는 동안 친부모와 다름없이 섬깁니다.

밤마다 호미를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던 이모님

돌아가시기 11일전, 제가 인사차 방문했을 때의 이모님. 이 사진이 98년 인생을 보낸 이승에서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습니다.
 돌아가시기 11일전, 제가 인사차 방문했을 때의 이모님. 이 사진이 98년 인생을 보낸 이승에서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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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자매는 시집오기 전에는 한 집에서, 시집을 와서는 한 마을 아랫집과 윗집으로 91년을 함께 사신 분입니다. 자매간 정이 두터워, 서로 한 가족같이 챙기면서 서로 우의에 금이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모님의 부고를 받고 제게 가장 큰 고민은 서울에 와 계신 어머님께 언니의 죽음을 어떻게 알릴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저는 장례식 참석을 위해 내려가기 전, 아내를 통해 조심스럽게 아버지에게 먼저 알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님께 그 부음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평생 함께 각별한 우의를 나누었던 어머님의 충격을 예상했던 저는 의외로 이모님의 별세소식을 담담하게 받아드렸다는 얘기를 듣고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이 빗나간 것에는 의문이었습니다. 

이모님 장례를 마치고 상경후 어머님께 장례식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른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모듬밥'으로 저녁을 드시고 귀가할 만큼 정정하신 상태였던 언니였습니다. 그런 이모님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어머님의 말씀이셨습니다. 

"지난달부터 네 이모가 밤마다 누군가가 자꾸 자기를 데리러 온다는 거야. 그래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고, 밤마다 머리맡에 그 귀신을 쫒는다고 호미와 괭이를 갖다 두어서 내가 치우고는 했어." 

두 자매는 담담하게 다가오는 운명을 받아드릴 준비를 진작부터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승에서 소모하고 남은, 종이 한 장처럼 가벼워진 육신을 땅으로 돌렸습니다. 몸에서 분리된 영혼은 누구와 동행했는지….
 이승에서 소모하고 남은, 종이 한 장처럼 가벼워진 육신을 땅으로 돌렸습니다. 몸에서 분리된 영혼은 누구와 동행했는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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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 거기서 부터가 신의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이래로 인간은 끊임없이 신을 얘기해왔습니다. 이성의 판단으로 신을 얘기하는 것은 역부족입니다. 확신한 것은 나 자신이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입니다.  

신에 관한한 우리가 목도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신이 함께했기에 좌절을 극복하고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참독(慘毒)한 대립과 복수를 매일 지켜보고 있습니다.

신이 그곳에 있음을 믿음으로 그 잔인하고 무자비한 상황을 극복하고 있음 또한 명백합니다. 제단을 쌓고 성전을 만들어 신을 찬양했지만 기실 신을 바로 보는 것을 가리고 그 대리인을 보게 한 점 또한 사실입니다.  

이모님 보내고 집은 책... 파스칼의 <명상록>

파스칼은 수학자이자 발명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상록(Pensées)>에서 뛰어난 철학적 사유와 성찰로 인간의 '모순'을 극명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명상록>은 파스칼의 사후 8년 뒤인 1670년에 간행되었습니다. 파스칼은 만년에 '그리스도교의 변증론'을 쓰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후에 1000여 편의 단편적인 초고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명상록>은 두서없이 써진 그의 단상 자료들을 편집한 유고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단장(斷章)들은 하나같이 폐부를 찌르는 명문으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현재는 전혀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더라도 현재가 미래의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위해 생각할 뿐이다. 현재는 결코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는 수단일 뿐이며 오직 미래만이 우리의 목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직 살기를 희망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어떻게 하면 보다 행복하게 될까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지금은 행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파스칼처럼 내 속의 또 다른 나와 끊임없이 논쟁하며 성장해왔습니다. 신과 종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현재가 목적인 삶을 살아라, 우리의 미래는 오늘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내 속의 또 다른 나와 끊임없이 논쟁중입니다. 그 생각의 갈래가 고향의 오래된 이 느티나무 가지처럼 수만 갈래이지만 파스칼은 그 생각이 우주와 차별되는 존엄성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나는 내 속의 또 다른 나와 끊임없이 논쟁중입니다. 그 생각의 갈래가 고향의 오래된 이 느티나무 가지처럼 수만 갈래이지만 파스칼은 그 생각이 우주와 차별되는 존엄성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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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명상록>를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궁구하게 됩니다.  

"나는 영원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그러나 자연에는 영원하고 무한한 필연적 존재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신을 사랑하는데'까지 거리가 너무 먼 것을 한탄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파스칼은 신앙의 당위를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명상록>이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책으로 편집된 것은 그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하나의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을 산산조각내기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명상록>에서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부분입니다. 그의 말처럼 나는 오늘도 신과 종교에 관한한 연약한 갈대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인간은 자신을 수증기나 물 한 방울로도 부셔버릴 수 있지만 우주보다 더 고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어떤 이로운 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존엄성은 생각하는 데에 있다. 우리의 재생을 위해서는 우리가 결코 채울 수 없는 시공간이 아니라 생각에 의지해야 한다. 생각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이것이 도덕성의 기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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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안수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 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종교,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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