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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와 상지대의 U리그 경기장면
 건국대와 상지대의 U리그 경기장면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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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초부터 부쩍 걸려오는 전화가 많다. 오는 2월에 대학을 졸업하는 축구 선수 아빠들이다. 그들의 아들이 중·고등학교 축구선수였을 때부터 우린 인연을 맺었다. 

나는 우리 동네 한 아이가 중학교 축구선수였을 때부터 그의 후원자로 활동했다. 부모가 이혼해 외갓집에서 자란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인연을 맺었다. 나는 그 아이가 중학생일 때부터 축구부 감독과 다른 학부모들에게 '차니삼촌'으로 불렸다.

그들과 나는 축구대회가 열릴 때마다 전국을 돌며 매번 여관방에서 같이 잠을 잤고, 운동장에서 응원했다. 강원도 홍천에 사는 내가 제주도에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김해와 해남도 갔다. 군산, 창원, 천안, 안동 등으로 응원다녔다. 동계훈련이나 학교 축구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들과 함께 감독님을 모시고 술도 마셨다. 1년에 50일 정도는 같이 잠자리를 했으니 보통 사이는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만... 내 아들 어떡합니까?"

군인인 이씨, 공무원인 김씨, 개인택시를 모는 이씨, 자영업을 하는 최씨, 윤씨 등등의 열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두세 번씩 내게 전화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만 한 내 아들, 어떡합니까?"

이 말은 모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하는 말이다.

"그동안 쓴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이 말도 모두가 비슷하게 한다. 

"어디서든 축구만 할 수 있게 알아봐 줄 수 없어?"

나에게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몇 사람이 하소연하듯 던졌다.

전국 초중고리그 강릉농공고 대 강릉 문성고 경기 장면
 전국 초중고리그 강릉농공고 대 강릉 문성고 경기 장면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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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리셉션홀에서 2015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상주 상무와 안산 경찰축구단을 제외하고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의 21개 구단이 모두 참여했다.

여기에 지원한 선수는 526명. 그러나 이름이 호명된 선수는 48명뿐이었다. 올해는 우선지명(프로구단 산하의 유스팀 졸업생을 소속팀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지명하는 제도)된 36명을 합쳐 84명이 취업을 한 것이다. 지난해 494명 중 114명이 선발된 것에 비하며 많이 감소한 수치다.

사실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선수들의 취업 한파는 이미 예견됐다. 지난 2012년 팀별로 운영되었던 2군 리그 폐지(2군리그 운영시 팀별로 선수 60명 이상을 보유했다. 하지만 2군리그를 폐지하면서 팀별 선수단은 30명 내외로 축소됐다)로 취업문이 좁아질 것이라 예측됐다.

프로리그 승강제 도입과 더불어 챌린지리그가 운영되고 있지만, 축구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챌린지리그 팀은 운영난에 허덕인다. 선수단 축소 운영만이 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면서 선수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졌다. 

실업팀도 마찬가지다. 현재 10개 팀으로 운영되는 내셔널리그 소속 실업 팀의 취업문도 바늘구멍이다. 대학을 졸업하는 신인들을 받기보다 즉시 전력으로 뛸 수 있는 선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프로팀에서는 해마다 전력 외 선수를 방출하고, 그 선수들은 내셔널리그로 내려온다. 방출된 선수들은 연봉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뛸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셔널리그로 내려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프로 선수가 아마추어 선수로 등록하는 건데도, 제도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망주 아닌 선수들은 어쩌나

때문에 이래저래 대학을 졸업하는 축구선수들은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 해마다 전국 77개(2014 U리그 참가팀) 대학에서 500여 명의 선수가 졸업한다. 그러나 그들이 갈 곳은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축구는 열한 명이 한 팀이고, 상대팀이 있어야 경기가 가능하다. 유망주 한두 명으로는 팀을 꾸릴 수도, 경기에 나설 수도 없다. 초등부와 중등부 감독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가능성 없는 희망과 꿈을 심어주면서 축구부로 유혹하기도 한다.

전국 초중고리그 경기를 응원하는 학부모
 전국 초중고리그 경기를 응원하는 학부모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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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009년부터 전국 초중고 주말리그를 운영한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리그가 권역별로 운영된다. 대한축구협회는 해마다 참가하는 팀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크게 홍보한다.

'공부하는 축구선수 육성'을 모토로 출범 6년째를 맞는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는 2009년 출범 당시 576개 팀이었는데, 2014년에는 총 776개 팀이 참가했다. 그만큼 선수가 많아졌다. 이는 "초중고 리그 미래 5년 준비의 일환으로 '창단은 쉽게! 경기력은 높게!'라는 기치 아래 팀 창단 절차를 간소화한 결과"라고 대한축구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게다가 참가팀 수를 2017년까지 1000개 팀까지 늘리겠다고 대한축구협회는 홍보한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재수'를 했지만 이번에도 실패한 축구선수의 아빠 신씨는 "대한축구협회에 큰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자기 아들도 중학교 때는 15세 상비군 대표에 뽑혔었다면서 말을 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축구선수 아들을 키우는데, 1년에 2000만 원이 넘게 들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타지에서 합숙소 생활을 했는데, 월 회비가 60만 원이었고, 동계훈련 갈 때와 대회 출전할 때마다 특별회비 몇십만 원씩 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월 회비가 110만 원이었어요. 특별회비 없다고 한 말도 다 거짓말이었고, 스승의 날, 감독님 생일날, 명절 날, 크리스마스, 감독님 보너스 등등 해서 매월 평균 50만 원을 더 냈어요.

게다가 주말리그를 할 때마다 다니면서 응원해야죠. 그렇게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겠어요? 그러고 나서도 대학에 특기생으로 못 들어가면 또 합숙비 내야 해요. 축구부 선수가 전부 장학생인 명문대학 말고는 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축구선수들이 '호구'가 되는 거죠. 장학생 TO 서너 장 주면서 선수를 이십 명씩 뽑는 지방대학이 많아요. 장학생 말고는 전부 등록금과 숙소비도 내야 합니다. 그렇게 키운 아들이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는 게 지금 현실인데, 대한축구협회는 무슨 근거로 초중고 팀을 늘리겠다고 하는지 답답합니다. 결국 나같은 부모와 내 아들같은 실업자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이죠."

축구선수 아들의 경기를 응원하는 아빠엄마들
 축구선수 아들의 경기를 응원하는 아빠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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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도 취업 못하는 현실


답답해서 프로팀 감독으로 활동했던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에 대해 물어보았다. 내가 후원하던 학생을 고등학교 때 잠시 지도했던 인연이 있어서인지 A씨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해마다 취업문이 좁아지는데 초중고 리그를 확장 시킨다는 것은 대한축구협회가 미친 짓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프로 산하 유스팀 선수가 아니면 프로 진출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일반 학교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동아리 활동이나 생활체육화하는 게 맞다."

어쨌거나 내가 후원하던 선수 찬희는 대학에 진학하고 축구화를 벗었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지만, 오지랖 넓은 나는 아빠 없이 자란 또 다른 축구선수를 알게 돼 간접적이지만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며 근근하게 지내는 탓에 중학생 때부터 응원 한 번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대회 3관왕을 한 팀의 중심 공격수였고, 득점왕을 차지한 선수로 성장했다.

그 학생을 내가 처음 본 것은 2010년 '전국 초중고 고등부 리그' 왕중왕 전에서였다. 당시 우승 후보의 맞대결로 관심을 끌었던 16강전이었는데, 서울의 강호 언남고와 전국대회 3관왕을 차지한 과천고의 대결이었다.

당시 나는 대한축구협회에서 발행하는 초중고 리그 신문의 명예기자로 활동하고 있어서 3대2로 승리한 과천고의 측면 공격수이자 2골을 넣은 그 선수를 인터뷰했다. 정말 바르고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였다. 많은 지도자들의 관심도 받았다. 4강전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신 과천고였지만, 그 선수의 활약은 많은 지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 장학생으로 상지대에 진학한 그 선수는 나름 열심히 운동했고, 팀의 중심 선수로 활동했다. 졸업반인 올해는 주장으로 활동하며 2014 U리그 왕중왕전에서 팀을 8강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선수도 이번 취업문을 뚫지 못했다.

그 학생은 최근 엄마에게 3월까지 기다렸다가 취업이 안 되면 축구를 접고 공장에라도 취업해 돈을 벌겠다고 했단다. 식당 일을 하는 엄마는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내게 전화를 해 울먹였다.  

정말 이래저래 눈물 나는 겨울이다.

2010년 전국 초중고리그 고등부 왕중왕 16강 전에서 강호 언남고와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승리의 주역이 된 과천고 이건우 선수. 무학기 전국 고등학교 축구선수권 대회 득점상. 문화체육부장관기 대회 득점상. 2014년 대학선발. 등.
 2010년 전국 초중고리그 고등부 왕중왕 16강 전에서 강호 언남고와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승리의 주역이 된 과천고 이건우 선수. 무학기 전국 고등학교 축구선수권 대회 득점상. 문화체육부장관기 대회 득점상. 2014년 대학선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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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축구선수취업, #K리그, #프로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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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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