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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인 이호진 님과 누나 아름씨도 함께했다.
▲ 29일차 천일 순례 지난 13일 오전,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인 이호진 님과 누나 아름씨도 함께했다.
ⓒ 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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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동장군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지난밤 밤새 눈이 펑펑 내리더니 결국 도로가 온통 빙판으로 변했다. 분주한 도시의 아침은 소음으로 시작된다지만, 저 멀리 눈 덮인 산과 솜사탕을 주렁주렁 매단 가로수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고 차분하다. 여기저기 빵빵거리는 자동차 경적소리조차 마치 캐럴처럼 느껴지는 세밑 주말 아침이다.

광주 적십자수련원 정문에 일군의 사람들이 속속 모였다. 다들 추위에 얼굴만 드러낸 채 '완전무장'을 한 탓에 선뜻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장갑을 낀 채 악수하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있다 해도 그게 뭐 대수이랴. 서로 같은 뜻을 품고 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니,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오늘(13일)도 이곳 광주에는 어김없이 '천일 순례'가 이어진다. 지난 11월 15일에 첫 발을 떼었으니, 오늘로 만 29일째다. 말이 천일 동안이지, 대충 헤아려 봐도 2017년 8월 중순까지 줄곧 걸어야하는, 끝까지 완주하기란 사실상 기적과 같은 프로젝트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광주에서 결성된 '시민상주모임'이 결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그렇게 실천하려는 것이다.

별이 된 어린 영혼들을 위해 '3년 상'을 치르는 마음으로 손에 손을 잡고 걷고 또 걷는 것이다. 우리 이웃들의 관심이 하나둘 모이고 지속될 수 있다면 결코 세월호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확신에서다. 더불어, 돈보다는 생명이, 이윤보다는 안전이 먼저인 나라를 위해, 당장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안전한 마을로 만들겠다며 서로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3년상 치르는 마음으로...천일간 걷다

상쇠는 인사말에서 '잊어야겠지만 잊을 수 없는 한해였다'며 눈물을 흘렸다.
▲ 송년회 길놀이 상쇠는 인사말에서 '잊어야겠지만 잊을 수 없는 한해였다'며 눈물을 흘렸다.
ⓒ 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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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거르지 않고 순례는 이어지지만, 걷는 이들은 하나같이 다르다. 길잡이 마냥 어떤 이가 순례하려는 날짜와 시간을 공지하면, 이웃들이 그걸 보고 자신의 일정에 맞춰 자발적으로 합류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순례자가 수십 명일 때가 있는가 하면, 채 열 명이 안 될 때도 있다. 모양새만 보면, 순례라기보다 뜻 맞는 이웃들이 모여 손잡고 '마실'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짧게는 두 시간에서, 길게는 네 시간도 넘게 걸을 때도 있다. 시간이고 코스고 당일 순례 제안자가 정하기 나름이다. 함께 걷지는 못해도 출발지점에 나와 응원해주는 이웃도 있고, 도중에 합류하거나 걷다가 중간에 빠져나간다 해도 뭐라는 사람 아무도 없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함께하려는 '뜻'이 소중할 뿐, 나머지는 다 '껍데기'일 뿐이라는 생각에서다.

오늘도 기도하듯 묵묵히 걷는다. 마치 묵언 수행하듯 걷다 보면 내면의 진짜 나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빙판에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을 때도 그랬다.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나는 왜 천일 순례에 함께하고 있는가?'를 자문하며 마음 다잡게 하는 계기가 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날 과음에도 불구하고 이 추운 날 아침 벌떡 일어나 기꺼이 걷는 이유다.

적어도 내게 '천일 순례'란, 별이 된 아이들에게 용서를 비는 사죄의 행위다. 아무런 죄 없이 죽임을 당한 그들에게 우리 어른들 중 '주범'은 아닐지언정 '공범'이 아니라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이 누가 있을까. 분향소의 아이들 영정 사진 앞에 남겨둔 한 '어른'의 편지글이 떠오른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고작 이것밖에 안 돼서.'

경박한 표현이지만, 카드의 포인트 적립하듯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별이 된 아이들이 순순히 용서해 줄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하루 걷는 그 걸음 수만큼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와 우리의 변화를 위해 걷는다'는 순례의 취지에 십분 공감하게 되고, 더불어 '사람답게' 내일을 살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100명이 어우러진 송년회

공연자는 '재능'을 나누며 자리에 함께했다. 무대 앞은 경품으로 수북한 모습이다.
▲ 송년회 사자춤 공연자는 '재능'을 나누며 자리에 함께했다. 무대 앞은 경품으로 수북한 모습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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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출발지점에 섰다.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가 있었다. 주말인 바로 오늘 '시민상주모임'의 송년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순례 길에는 '외지 손님' 두 분이 함께해주셨다. 지난여름 900km 십자가 도보 순례를 마치고,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인 이호진 님과 누나 아름씨다.

송년회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신 것이다. 지난여름 도보 순례 때 십자가를 짊어진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인 김학일님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아침 천일 순례를 나서는 대신, 그 시간 주방에서 송년회에 참석한 시민상주들에게 대접할 국수를 삶았다고 한다. 천릿길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렇게 선한 얼굴로 '이웃사촌'이 돼가고 있었다.

십자가 도보 순례 당시 김학일님과 점심시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십자가를 멘 그 분들이든, 뒤따라 걷는 순례자들이든 걷는 동안에도 분노와 슬픔의 눈물이 멈추지 않던 시절이다. 그는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할 줄 몰라 쭈뼛거리는 도보 순례 참가자들 사이로 오시더니, 연신 함께해줘 고맙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4월 16일 그날 이후, 죽은 제 아들 몫을 하겠다는 아이가 있어요. 정말 큰 위로가 되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죠. 그래서 친자식 삼기로 했어요. 비록 제 아이는 잃었지만, 대신 이렇게 많은 선한 이웃들을 얻었으니, 제가 아주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강당에는 어느새 100여 명의 시민상주들이 모여들었고, 풍물패의 뻑적지근한 길놀이로 이내 행사가 시작되었다. 흥겨운 가락에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들썩거렸고, 어깨춤을 추며 상쇠를 뒤따르면서 순간 모두가 풍물패의 일원이 됐다. 말이 공연이지, 무대와 객석이 따로 구분되지 않은, 한바탕 난장이었다. 우리네 삶과 놀이의 원형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길놀이에 이어 한 마리 '사자'가 등장했다. 이젠 TV에서조차 보기 힘든 전통 사자춤을 직접 경험하는 순간이다. 휘몰아치듯 내지르는 힘찬 장단에 해학적이고도 역동적인 사자의 몸짓이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웃으며 함께하자는 격려처럼 느껴졌다. 송년회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다짐하는 자리라면, 가장 어울리는 꼭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마치 경계선처럼 선물 꾸러미가 가득 쌓여있다. 추첨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줄 경품들이다. 대충만 봐도 사람보다 경품의 수가 훨씬 더 많으니, 말이 추첨이지 그저 순번표 받는 일에 불과하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데면데면한 참가자들에게 모두의 이름을 한 번씩 당첨됐다며 큰소리로 불러주는 행사다. 말하자면, 추첨을 형식을 빈 '자기소개' 시간인 셈이다.

그 많은 경품은 모두 어디서 난 것일까. 알고 보니 협찬한 곳이 따로 있지 않다. 시민상주들이 개별적으로 내놓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생업이 제각각인 까닭에 경품의 종류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은 무료 식사권을, 청과물 가게 주인은 과일 상자를, 마트 주인은 각종 잡화를 꾸러미 째 가져왔고, 콘서트 초대권과 아동용 자전거, 심지어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도 있다.

형식은 경품 추첨이지만, 내용인즉슨 '돈이 필요 없는 바자회'였다. 내가 가진 것을 네게 주고, 네가 가진 것을 내가 받는, 말 그대로, 물물교환식의 나눔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경품으로 내놓은 물건을 추첨을 통해 다시 자기가 가져가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물론, 그 자리에서 다시 기증하고 재추첨하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지만 말이다.

나눈 건 경품만이 아니다. 길놀이를 하고, 사자춤을 추고, 콩트를 하고, 창을 하고, 노래를 한 이들 대부분이 생업으로 하는 나름 전문가들이지만, 그 누구도 대가를 바라고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그들 모두 시민상주들이거나, 적어도 모임에 뜻을 같이하는 이웃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자발적으로 경품을 기부했다면, 그들은 '재능'을 무대 위에서 기꺼이 나눈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손에 손을 잡고 내일을 이야기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을 단숨에 동지로 엮어주었다.
▲ 송년회의 절정, 강강술래 손에 손을 잡고 내일을 이야기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을 단숨에 동지로 엮어주었다.
ⓒ 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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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행사의 절정은 '강강술래'였다. 언뜻 익숙한 네 박자 장단과 식상한 그 후렴구가 그토록 재미있고 뭉클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본디 강강술래는 '주로 여자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노는 전통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지 케케묵은 전통 유산이 아니라, 놀이와 춤의 형식을 빈 이웃 간의 가장 원초적인 소통과 공감의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네 박자 장단에 자신의 바람을 담아 이야기하면, 모두는 손에 손을 잡고 돌면서 강강술래로 응답한다. 거친 비유지만, 교회의 목사가 설교하면 신도들이 '아멘'하고 외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강강술래라는 후렴은 곧, '네 뜻과 같다', '너와 함께 하겠다'는 맞장구이며, 처음 만난 사람들조차 단숨에 동지로 엮어내는, 실로 마술과 같은 힘을 지닌 듯했다.

강강술래의 압권은 시민상주인 엄마와 아빠를 따라온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이 몸을 숙여 이어 만든 다리를 밟고 지나가는 순서에서다. 이름 하여 '놋다리밟기'인데, 의미를 담고 보니 더 이상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우리 어른들이 기꺼이 다리가 돼주겠다는 다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유가족 두 분도 함께 엎드려 다리를 놓았는데, 그분들의 감회는 더욱 남달랐으리라 생각된다.

천일 순례와 송년회를 함께하며 새삼 깨닫는다. 우리 현대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호기롭게 말하면서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만 곳곳에서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방향' 없이 목청만 돋우다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시나브로 잦아들자 그 '당위'마저 흔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정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해답을 이곳 광주의 천일 순례와 송년회의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고 감히 자부한다. 우리 이웃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꺼운 나눔, 그리고 내남없이 우리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까지. 세월호 참사에 가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느낀 뒤, 나이도, 성별도, 학력도, 직업도 구애됨 없이, 새삼 이웃임을 확인하고 안전한 마을을 만들려는 공감과 작은 노력들에 그 답이 있다. 비록 송년회는 끝났지만, 내일도, 모레도, 이웃들의 마음을 담은 천일 순례는 계속된다.


태그:#세월호 참사, #광주 시민상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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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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