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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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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갈 길이 바쁜데 청와대 문건 파동으로 정치권이 시끄럽고 특히 야당은 진상조사단 구성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59)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4일 새누리당의 공식 회의석상에서 나온 유일한 관련 발언이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거론하면서 "문제는 경제다"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이 권부 내 권력암투 '설'에 신경쓰지 말고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부터 신경써야 한다는 요지였다. 그는 "검찰에서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나중에 그 결과가 미흡하다면 여야가 합의해서 후속대책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경제를 살리는 데 올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무성 당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는 전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이어 이날 역시 비선 실세 의혹에 대해 함구했다. 다만 야당을 향해 공무원연금 개편안을 제출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회의가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나는 이야기 안 하겠다"라며 입을 닫았다. 야당의 '문고리 3인방' 퇴진 요구에 대해서도 "대변인에게 들으라"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 역시 "나는 입이 없다"라며 함구했다.

대표는 "나는 이야기 안 하겠다"... 원내대표는 "나는 입이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아예 손바닥을 내밀지 않는다. 여야 지도부는 통상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공식 회의석상에서 발언하면서 이슈를 확산시키고 전선을 분명히 긋는다. 그러나 비선 실세 의혹을 대하는 여당 지도부는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결국 비선 실세 의혹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이슈를 죽이고 나선 셈이다.

굳이 당의 공식 입장을 따지자면,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 정도다. 정씨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각각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맞붙은 지난 3일 새누리당의 논평 요지가 바로 그랬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정치권 또는 청와대에서 국가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로서 전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진실게임은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며 "검찰 수사에 협조하라"라고 촉구했다. 정씨와 조 전 비서관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더 이상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지 말라고 요구한 셈이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그 사람들이 다 대통령 모신 사람들 아닌가"라며 "나라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는 일을 이제 그만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앞서도 그는 이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저는 (정윤회 관련) 그 문건 내용 전체가 제가 파악하고 있는 사실과는 좀 멀다고 알고 있다"라며 정씨와 조 전 비서관 모두를 비판했다. 아울러 야당의 '3인방 퇴진 요구'에 대해서도 "그 비서관 3명은 사실 오랫동안 대통령을 보좌해온 사람들인데 이 문건에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조치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사안의 진실이 먼저 밝혀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여당 지도부가 암묵적으로 함구하고 나선 것은 이번 사안의 파괴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JTBC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3일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 '(정윤회 문건 사건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62.7%를 기록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53.4%가 특검과 국정조사를 단행해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응답하기도 했다.(전국 1000명 대상 유선전화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이같은 여론 추이는 정부·여당 입장에서 부담될 수밖에 없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JTBC와 한 인터뷰에서 "전 연령대가 (정윤회 문건 사건을) 법 체제를 흔드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새누리당 지지층도 10명 중 5명 가량 국정농단 사건으로 응답했다"라며 "계속 이런 공방이 이어진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향후에도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비판론

그러나 당 지도부의 바람과는 다르게 당내에서도 청와대를 겨냥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그 옛날 궁중비사에나 나올 법한 의혹들만 며칠째 뉴스로 보게 된다는 그 자체가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며 "국가 최고 권력의 의사결정 판단에 비선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번에 전부 파헤쳐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악의적 중상",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해당 의혹을 사실무근으로 일축했는데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비선실세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다. 김 의원은 "이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라며 "집권 2년 차 정권에게 레임덕을 걱정하는 나라라면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같은 당 박민식 의원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과 한 인터뷰에서 "제1책임은 비서실장한테 있지 않겠나"라며 "초기부터 단호하게 대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같은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는데 수수방관했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대통령께서 어떻게 발언했다고 해서 검찰이 그것 외에 다른 부분을 수사 못하는 건 20년 전의 일"이라며 "문건 유출뿐 아니라 (측근 인사의) 호가호위, 월권행위까지 포함해 수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의혹의 내용까지 포함해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의원은 "총리나 장관보다는 청와대에 비서관이다 이런 사람들이 힘이 세다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라며 "차제에 청와대 의사결정시스템이 대변신해야 한다"라고도 지적했다.

중진 의원들도 나서고 있다. 정병국 의원은 지난 3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정운영 전반이 투명하지 못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비선, 소위 말하는 권력실세가 대두된다"라며 박 대통령의 불통을 문제 삼았다. 원유철 의원은 청와대 보안시스템 재정비는 물론, 인사 및 검증시스템 점검을 요구했다. 비록 이번 의혹의 당사자들을 직접 겨냥하진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 때문에 이같은 의혹이 불거졌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적극 목소리를 내는 주체들이 '범친이계'로 분류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움츠러들었던 친이계가 이번 사안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청와대와 친박 주류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만큼 이같은 당의 엇박자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총선 당시부터 당내에서 박 대통령 주변의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존재했다"라며 "이번 의혹으로 그런 인식이 조금씩 표출되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아직 사안의 진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말들을 삼가고 있지만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면 당 지도부도 더 이상 침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정윤회, #박근혜, #김무성, #비선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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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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