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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상고사건 부담'을 호소하며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는 대법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내놓은 방안들은 '상고심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등 상고법원 반대여론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한 모양새다.

30일 대법원은 "충실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기대,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부응하겠다"며 '사실심 충실화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상고법원 설치보다 하급심인 사실심 강화가 먼저라는 지적에 답을 내놓은 셈이다. (관련 기사 : 상고법원 도입안 공개 '어중간한 절충')

'상고법원 도입' 드라이브 거는 대법원... "사실심 강화하겠다"

대법원은 우선 재판부를 강화하기 위해 4년 내에 단독재판장의 절반 이상은 경륜있는 부장판사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또 소송당사자들이 충분히 재판결과에 승복할 수 있도록 법조경력 20년 이상 경력법관을 임용, 소액·중액사건 전담부로 배치하는 한편, 사실심 최종단계인 고등법원은 법관 전원을 15년 넘게 재판을 진행한 판사들로 구성하겠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법관정원법을 개정, 370명을 더 뽑아 판사 1명당 사건 수를 줄이는 방안 역시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하급심 강화의 또 다른 요건은 재판 자체의 전문성을 높이는 일이다. 대법원은 이를 위해 특허법원 기술심리관 제도를 참고한 '전문심리관 제도'를 만들어 의료, 건축 등 전문재판부에 의사·건축사처럼 관련 분야 전문가를 배치할 계획이다. 전문심리관들은 심리에 참여할 뿐 아니라 재판부 합의 때도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여기에 특성화법원 도입까지 더해진다면 어렵고 복잡한 특정분야 소송들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기대한다.

 대법원이 11월 30일 발표한 '사실심 강화 마스터플랜' 주요 내용.
대법원이 11월 30일 발표한 '사실심 강화 마스터플랜' 주요 내용. ⓒ 박소희

당사자들의 증거수집·확보수단이 부족한 민사와 행정소송절차 역시 달라진다. 대법원은 일반 시민들이 기업이나 의료기관, 국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충분한 증거나 자료가 없어 절차상 불평등을 겪는 만큼 재판이 시작하기 전이지만 증거수집을 위한 증인 신문과 검증·감정,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때 수집된 증거는 본안소송에서 그대로 쓰인다. 만약 한쪽에서 문서제출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재판부는 문서제출명령 신청자가 해당 문서로 증명하려고 한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형사재판의 피해자 진술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법원은 피해자 쪽의 신청이 있다면 그를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피해자의 증인 신문 신청은 원칙적으로 수용하고 의견진술 기회도 적극적으로 부여하겠다고 했다. 또 위자료 기준을 공개하는 등 재판의 투명성을 높이고 전자소송 시스템을 완비해 국민들이 더욱 쉽게 법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이 모든 방안들은 대법원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고법원' 제도와 닿아 있다. 대법원은 "이번 개선안은 소송시작 전부터 소송종료 후까지, 법원 인사제도부터 재판사무까지 등 재판제도와 사법행정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대책"이라며 "사실심 강화 효과의 극대화를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심 충실화는 상소율 감소로 이어지고, 상소율 감소는 상고심의 심리여건을 개선할 것"이라며 이번 마스터플랜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기초공사임을 드러냈다.

"사실심 강화, 당연히 해야... 상고심 문제 본질은 아니다"

 지난 9월 24일 오후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
지난 9월 24일 오후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 ⓒ 대법원

하지만 사실심 강화는 법원의 오랜 숙제일 뿐, 상고법원 반대여론을 넘어설 최종무기로 보기 어렵다.

대법원이 지금 추진 중인 상고법원은 2심에 불복한 사건 중 일부만 심리하는 법원을 따로 설치하는 방식이다. 대법관 한 명이 1년 동안 3000여 건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 충분한 심리가 힘들뿐 아니라 국민의 권리 구제와 최고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 모두 충실하기 어렵다는 고민 끝에 나온 답이었다.

그런데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꾸준히 '사건이 많다면 대법관 수를 늘리면 된다'고 반박해왔다. 숫자는 본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사실상 최고법원 지위를 갖는 상고법원 도입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헌법이 정한 최고법원이고, 대법관 임명절차 역시 헌법을 따르는데 상고법원과 소속 법관들은 헌법상 상고심을 심리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상고법원 반대론자들은 결국 상고법원 도입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대한변협 상고심개선연구위원 이재화 변호사 역시 3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실심 강화는 상고법원 도입과 관계없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은 상고심 문제의 기술적인 면만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심 강화는 일종의 "위장술"이란 얘기다. 그는 "상고심 개선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회 요구에 맞게 대법관을 구성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숫자를 늘리고 구성을 다양하게 해야 사람들이 대법원 판결에 수긍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12월 5일 열리는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사실심 충실화 마스터플랜을 논의, 세부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선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담은 법원조직법과 민·형사소송법 등 관련법 개정안을 준비, 12월 중순쯤 발의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대법원#상고법원#사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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