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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산사이의 지역이란 뜻을 가진 메주고리예 성당
 산과 산사이의 지역이란 뜻을 가진 메주고리예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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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형님. 이쪽이야 저쪽이야?"
"아니, 그쪽 말고 저 아랫쪽으로 가."

길눈이 밝은 언니한테 우리가 소리치며 물었다. 메주고리예성당에서, 그것도 밤에 우리가 갈 길을 잃고 만 것이다. 낯설고 물설은 생전 처음 간 나라에서 생긴 일이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디나르알프스산맥
 차창밖으로 보이는 디나르알프스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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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직접 만져보니 안타까움이 절로 생겼다
▲ 모스타르 입구에 있는 전쟁의 상흔 손으로 직접 만져보니 안타까움이 절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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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모스타르에 도착하다

차창 밖으로 디나르알프스 산맥을 구경하며 사라예보를 떠나 3시간 정도 달려오니 '모스타르'라고 한다. 어느새 주변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모스타르 입구에서부터 전쟁의 상흔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전쟁의 흔적은 공포마저 느끼게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에는 전쟁의 아픔을 겪는 곳이 있을 텐데. 전쟁이 얼른 끝나고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조약돌이 울퉁불퉁 깔려 있고 주변이 강인지라 해가 지니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왔다.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가 날아 가고 겉옷이 바람에 날리기도 했다. 초행길이고 조약돌에 발이 미끌미끌 거리고 주변까지 어두우니 넘어질 위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많은 조약돌을 어디에서 구하고 어떻게 깔았는지 신기했다.

모스타르라는 생소한 이름의 마을은 어떻게 생겼을까? 부지런히, 그렇지만 조심조심 목적지까지 가면서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고 주변의 상가를 넘보기도 했다. 해가 넘어가고 바람이 불어서인지 일찌감치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작지만 소박하고 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아담하고 작은 마을
 아담하고 작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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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다리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성급하게 걸을 수가 없다
▲ 모스타르다리 모스타르다리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성급하게 걸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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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의 그 유명한 다리를 보다

모스타르는 '오래된 다리'란 뜻으로 옛 헤르체고비나 수도로 네레트바강이 흐르고 있다. 모스타르의 다리는 모스타르의 상징이다. 1993년 내전 때 폭격으로 다리가 파괴됐고 헝가리의 잠수부들이 강물에 매몰된 파편들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터키의 건축가들이 건져 올린 파편 1088개의 돌을 재배치해 2004년에 재건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터키식 다리의 이름은 '스타리모스트'다.

모스타르 곳곳에 로마시대의 건축물과 터키 식민지 시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로마와 터키의 전성기가 이곳에서도 느껴졌다. 강물에 매몰된 1088개의 파편들을 건져 올려 재건축됐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놀라웠다. 그런 정성과 열정이 있었으니 세계적 문화유산이 되었으리라.

멀리서 보이는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모스타르다리
 멀리서 보이는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모스타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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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모스타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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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프란체스코성당
 멀리 보이는 프란체스코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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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의 야경은 인상 깊었다. 어디에선가 요술 봉을 든 요정들이 불쑥불쑥 나올 것만 같은 그런 예쁜 마을이다. 야경 속에 더욱 아름다움을 발하는 모스타르 다리, 프란체스코성당은 내가 새로운 곳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약속된 시간이 다되어 우린 부지런히 만남의 장소로 갔다.

하지만 일행 중 4명이 오지 않아 다음 코스로 떠나는 시간이 30분 정도 지체되고 말았다. 가이드가 찾으러 가고 또 다른 사람이 찾으러 가 겨우 만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쇼핑하다 보니 그만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한다. 늦게 온 그들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그들한테 우린 "무슨 쇼핑을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해. 좀 빨리 빨리 서두르지"하며 투덜거렸다.

성당안에서는 미사봉헌이 있었고 TV를 통해 함께 할 수있다
▲ 메주고리예성당 앞마당엔 대형TV와 의자들이 놓여 있다. 성당안에서는 미사봉헌이 있었고 TV를 통해 함께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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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메주고리예성당에 가다

조금 늦었지만 다음 코스인 메주고리예성당으로 간다고 한다. 난 그 성당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가이드님, 그곳은 내일 밝을 때 가면 안 되나요? 지금은 너무 컴컴해요"하니 또 다른 일행도 "그래요, 거긴 내일 아침에 가요"한다. 하지만 가이드는 "안돼요. 그럼 내일 일정에도 차질이 생겨서 안 되고... 멀리 가거든요"하며 단칼에 잘라버렸다.

메주고리예성당은 모스타르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고 겨우 버스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는 언덕길이라 약간 두려움도 느켰다. 올케도 조금 불안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높은 만큼 볼거리도 있었다. 높은 곳이라 내려다 보이는 야경은 정말 멋졌다. 구불구불 언덕길을 지나 어느새 메주고리예성당에 도착했다. 괜스레 흥분됐다. 천주교 신자라면 죽기 전에 꼭 한 번쯤 와보고 싶은 성당 아닌가.

'메주고리예'란 슬라브어로 '산과 산 사이 지역'이라고 한다. 실제로 해발200m의 높이의 산악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가 43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런 메주고리예성당은 1981년 6월 6명의 아이들이 마을 외곽의 크르니카라는 언덕 위에서 성모마리아를 보았다고 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됐다.

하여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지이자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에게 심심치 않게 이야기를 들어서 나도 꼭 한 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곳에 도착하자 난 기대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메주고리예성당은 마치 대낮처럼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야외에서는 대형 TV를 설치해 놓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우린 우선 치유의 청동예수상을 보러 갔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적의 청동예수상 앞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
 기적의 청동예수상 앞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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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흐르는 물이 만져졌다
▲ 청동예수상을 만지고 있는 나 진짜 흐르는 물이 만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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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에서도 천주교 신자들은 줄을 섰다. 드디어 언니와 내 차례가 돌아왔다. 무릎의 작은 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와 이것을 적셔서 아픈 곳에 대면 낫는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 누군가가 "아무리 아무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청동예수상에서 물이 흘러나올 수가 있을까? 하지만 난 의심조차 들지 않았다. 청동예수상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만져 가슴에 갖다 댔다.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성물을 사다가 약속시간을 놓쳐 길을 잃다

그 감동의 시간을 잠깐 맛보고 자유시간이 30분 정도 주어졌다. 우린 성당 앞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성물(묵주, 십자가, 성모상 등 천주교와 관계된 물건)가게로 갔다. 지인들에게 줄 묵주를 사려고 한 가게로 들어갔다. 사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묵주만 10개 사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우리 외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시간을 보니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긴 게 아닌가. 우리 셋은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주변은 더욱 컴컴해졌고 미사는 끝이 났는지 조용했다.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길눈이 어두운 나와 올케는 언니만 의지하고 길을 찾았다. "언니, 형님, 이쪽이야 저쪽이야?" "아니아니. 그쪽 말고 저 아래쪽으로 가" "알았어. 언니. 우리가 얼른 가서 버스 잡아 놓을 테니깐 언니 천천히 와"하곤 뛰었다. 짧은 다리로 뛰려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언니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가니 그 넓은 주차장에는 우리 버스만 덩그러니 있었다. 우리가 안 와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우리가 도착하자 가이드는 완전 뿔이 났는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언니가 도착하자 버스가 움직였다. 정말 미안하고 창피했다. 자리에 앉아 올케와 나는 "에고, 좀 전에 우리가 그이들 흉을 봤더니 금세 당하네"하면서 또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그 상황에 웃음은 또 왜 나오는지.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8시, 늦은 저녁을 먹고 우리 방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하얀 침대 시트가 깔린 침실을 보니 마치 우리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졌다. 또 내일은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와 설렘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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