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也 어조사 야(也)는 갑골문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한자인데, 여성의 생식기, 뱀, 주전자와 같은 그릇의 상형 등의 이견이 분분한 한자이다.
어조사 야(也)는 갑골문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한자인데, 여성의 생식기, 뱀, 주전자와 같은 그릇의 상형 등의 이견이 분분한 한자이다. ⓒ 漢典
우리말이나 영어·일어 등 자모로 구성된 언어에서, 모든 자모를 사용해 한 문장을 만드는 것을 팬그램(pangram)이라고 한다. 이런 팬그램은 폰트를 개발하고 자모가 구현되는 것을 확인하는데 유용하게 쓰이는 모양이다. 우리말에는 "동틀녘 햇빛 작품" "닭 콩팥 훔친 집사" 등이, 영어는 "The five boxing wizards jump quickly(다섯 명의 권투 마법사가 재빨리 뛴다)" 등이 비교적 짧은 팬그램이다.

한자는 자모로 구성된 문자가 아니기 때문에 팬그램이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중첩되지 않는 1000자로 구성된 <천자문(千字文)>이 그나마 팬그램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자문>은 위진남북조시대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명에 따라 주흥사(周興嗣)가 하룻밤 사이로 완성한 걸로 알려져 있다. 왕희지(王羲之)의 행서 글자 중에서 중복되지 않는 한자로 4글자씩 125개의 문장을 완성했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고 해서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불린다.

주흥사는 어렵지 않게 992자의 문장을 만들었지만, 마지막 8글자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도인이 나타나 "어조사에는 언(焉), 재(哉), 호(乎), 야(也)가 있다"고 알려줘 마지막 문장 '위어조자, 언재호야(謂語助者, 焉哉乎也)'로 <천자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존재감 없지만 소중한 것... 바로 어조사다

주홍사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의미를 지닌 한자에는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 의미를 연결하거나 도와주는 어조사는 존재감이 별로 없어 가볍게 여기거나 간과하기 쉽다. 검은 커튼이 없으면 빛도 힘을 잃고 흩어지기 마련이다. 별을 사랑하는 밤하늘도 자신을 온통 별로 채우지는 않는다. 문장 속에서 어조사는 비록 그 고유의 빛을 발하진 않지만, 우리 삶의 쉼표처럼 호흡을 가다듬고, 무대의 검은 커튼처럼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하는 소중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어조사 야(也, yě)는 갑골문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한자인데, 아직도 그 형성 과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상형이라고 하고 있지만, 뱀, 주전자와 같은 그릇의 상형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말에서는 대야(大也)처럼 그릇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중국어에서는 고문에서 주로 문장의 끝에 놓여 전환이나 종결의 의미를 나타냈으며, '~도', 또한 등의 의미로 주로 쓰인다.

저마다 빛을 뿜어내면 어떤 별도 밝게 빛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빛을 숨기고, 어둠이 되어 줘야 한다. 주목받는 처음이 있으면 누군가는 묵묵히 마지막에 자리해야 한다. <천자문>의 마지막 글자 어조사 야(也)가 어쩌면 그런 존재인 것 같아 무슨 이유인지 사랑스럽다. 꼭 안아주고 싶다.


#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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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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