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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토군의 폭격에 맞은 세르비아의 국방성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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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건물이 세르비아 국방성인데 나토(NATO)의 폭격을 맞은 자리입니다.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이유는, 처음에는 복구를 하려고 했지만 예산부족으로 못했는데 어느 날부터 사진작가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운 관광지가 된 것이지요. 지금은 베오그라드의 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오고 있습니다."

폭격을 맞은 국방성 건물이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와의 첫 만남이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폭격의 자리는 참혹한 전쟁의 현장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러고 보면 언제인가 신문, 방송에서 몇 줄의 뉴스로 보도된 것을 본 기억이 나기도 했다. 먼 나라의 이야기를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니. 왠지 슬픈 역사가 많은 나라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총탄의 자리가 전쟁의 잔재를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곳을 그대로 놔두었네."

여기저기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만큼 굴곡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또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아픈 역사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창 밖으로 총탄을 맞은 몇몇의 건물들이 더 지나간다.

세르비아는 전쟁 전만 해도 유고연방 중에서는 가장 잘 사는 나라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40번 파괴되고 다시 지어진 베오그라드

언니, 올케, 나는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8시간 만에 발칸4국 여행 첫 일정인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첫 일정이라 설렘과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베오그라드는 크로아티아어로 '하얀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로마제국 당시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인들이 흰 벽돌로 성벽을 둘러쌓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수도로서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들어와 있으며 종합대학과 300여 개의 학교들, 과학예술 아카데미와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세르비아는 잦은 전쟁을 치른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1,2차 대전의 격전지이기도 했고, 최근에 일어났던 전쟁은 1980년 유고연방의 지도자 티토(세르비아계)가 사망한 이후 유고연방은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코바, 크로아티아 등으로 분열되었다. 연방종주국이라 하는 세르비아가 보스니아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발칸반도 역사에서 가장 심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 바로 세르비아다.  

오랜 전쟁의 결과로 베오그라드란 도시는 40번 파괴되고 다시 지어졌다. 그런 전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도시는 회색빛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곳곳에 남아 있는 전쟁의 흔적을 본 후, 세르비아의 도시들이 폐허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운 중세 분위기와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환경이 남아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도움을 많이 받은 세르비아가 고마움의 표시로 프랑스식 정원을 만들고 기념비를 세웠다.
▲ 칼레메그단 요새 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도움을 많이 받은 세르비아가 고마움의 표시로 프랑스식 정원을 만들고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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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레메그단 요새 첫 번째 문을 지나면 나오는 야외 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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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레메그단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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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레메그단 성곽에서 내려다 보이는 왼쪽이 사바강, 오른쪽이 다뉴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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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강과 다뉴브강의 합류 지점에는 스타리그라드의 높이 125.5m지대에 위치한 칼레메그단(전쟁터란 뜻) 요새가 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곳은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해서 개방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기도 하다. 군데군데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발칸반도의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입는 옷을 그대로 가지고 갔다. 하지만 그곳의 날씨는 겨울을 방불케 했다. 그곳 사람들은 가죽 재킷에 긴 부츠, 누빔파카 털모자 등 완전한 겨울 복장이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은 살속까지 추위가 파고 드는 듯했다. 그나마 얇은 목도리라도 안 가지고 갔더라면 지독한 감기에 걸렸을 것이다. 그런 날씨 변화는 지난해 봄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한 후부터라고 한다.

칼레메그단 요새 성곽에 올라서니 추위는 절정에 이르는 듯했다. 두꺼운 카디건을 넣으려다 말았던 소홀함이 다시 한 번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눈을 번뜩이는 설명이 들려왔다. 성곽 아래에 흐르는 두 강이 사바강과 그 유명한 유럽의 젖줄이라 하는 다뉴브강이란다. 그 두 강은 축복이자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와, 저 위쪽은 달로 가는 길이란다"

 코네즈 미하일로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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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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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오스만 투르크의 오랜 지배로부터 세르비아를 해방하고 수도를 베오그라드로 옮긴 왕
▲ 코네즈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왕의 동상 1867년, 오스만 투르크의 오랜 지배로부터 세르비아를 해방하고 수도를 베오그라드로 옮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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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나와 스카다리아(예술의 거리)와 베오그라드의 중심 코네즈 미하일로 거리로 들어섰다. 전쟁이 많았던 나라답게 도시 전체가 역사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코네즈 미하일로 거리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은 1867년 오스만 투르크의 오랜 지배로부터 세르비아를 해방시키고, 수도를 베오그라드로 옮긴 '코네즈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왕'이다.

그 건너편에는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이 있다. 그 자리는 터키의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 교수대 자리였는데, 터키로부터 해방한 후 그 위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웃음과 감동이 있는 극장을 세웠다고 한다.

저 멀리에서 솟아오르는 분수는 한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추운데 분수가 나오다니?' 노천 카페에도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추위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예술의 거리답게 거리의 화가, 거리의 악사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그런가 하며 겨울 털모자, 식탁보, 화병 받침 등 직접 손뜨개질 한 상품들을 거리에 펼쳐놓고 파는 여인들도 눈에 띄었다.

 'Moon, 달로 가는 길'이란 이정표는 새 희망을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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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불리울 만큼 무명 연주자들의 공연이 많이 열린다는 스카다리아에서 누군가가 "와, 저 위쪽은 달로 가는 길이란다"하며 소리를 지른다. 낭만적이고 인상적인 이정표가 추위를 녹여 주는 듯했다. 'Moon'이란 이정표가 새로운 희망처럼 느껴졌다.

 오이지무침, 짠지무침 ,멸치볶음으로 마신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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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일정을 그렇게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린 와인으로 여행 첫날의 축배를 들었다. 안주는 오이지무침과 짠지무침, 고추장멸치볶음이다. 올케는 "그런데 여기는 괜스레 우울해져요. 전쟁이 많았던 나라라 그런가? 여행은 즐거워야 하는데"한다. 나는 말했다.

"음악 CD를 사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1~2곡이잖아. 그런데 여행은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쨌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니깐 재미있게 즐기자."


태그:#베오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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