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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책표지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책표지 ⓒ 철수와 영희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27개의 문화 키워드로 한국 현대사를 분야별로 흥미롭게 짚어낸 책이다.

저자 이임화는 '이런 것도 역사야? 이게 뭐가 그리 중요하지?'라고 여겨질 꼭지들 속에서 역사에 말을 거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은 먹을거리. 대중매체, 금지, 선거, 교육, 건강, 주거, 슬로건, 일탈, 상징과 기념일이라는 꼭지로 자본, 문화, 국가, 정치, 사회, 몸, 생활, 심성 등이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맥락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2010년 거리에서 '몸뻬'를 입고 춤춘 날라리들을 본 것은 신선하고도 유쾌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몸뻬'는 농촌 중년 여성이나 할머니들의  일복이라는 고정관념이 한 순간에 깨졌다. 노동복의 상징인 몸뻬의 변신은 노동과 운동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사고의 변화를 보여준다. 투쟁도 놀이처럼 일도 놀이처럼 유쾌하게 하려는 의식의 반영인 셈이다.

일본 여성들의 일복이던 몸뻬 강제 착용 규정은 일제 강점기인 1941년 국가가 정한 '금지'의 대표적인 예다. 1944년에는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의 버스와 전차 승차 거부, 집회장이나 관공서 출입까지도 제한했다는 기록이 있다.

- 부인은 외출이나 여행할 때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몸뻬를 입어 어느 때든지 방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 관공서, 학교, 회사, 공장, 조합의 식당이나 상점의 종업원은 반드시 몸뻬를 입어야 한다.
- 전차, 버스에서도 '몸뻬를 입지 않은 부인은 차를 타지 말아 달라'는 글을 붙여 부인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 경찰관의 협력을 얻어 몸뻬를 안 입은 여성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매일신보. 1944년 8월 11일>

복종과 통제,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 군대, 공장에 이어 여성들에게까지 단체복을 강요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이다. 실제로 새마을 운동 산업 역군이라며 가혹한 노동을 강요했던 1970년대 공장에서는 모두 유니폼을 입어야 했고 그 유니폼은 곧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이들의 경우 공돌이, 공순이의 상징이던 푸른 작업복이 너무 싫었다고 기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학생의 신분을 나타내는 교복의 경우도 효율적인 통제를 위한 것이다. 경기여고를 비롯한 공립 여학교의 동복은 발목 부분을 조여 몸뻬와 비슷한 형태였고, 귀밑 1cm 정도의 짧은 상고머리였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박정희 정권의 국민통제

'몸뻬'가 일제 통제의 산물이라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은 박정희 정권에서 행해진 국민 통제였다. 미니스커트는 1967년 미국서 활동 중이던 가수 윤복희가 귀국하면서 입고 들어와 크게 유행했다. 재건복이다 간소복이다 하여  국민들의 옷을 통제하려 했던 박정희 정권은 즉시 미니스커트 단속에 들어간다.

<경범죄처벌법>에 따르면 미니스커트 단속 기준은 무릎 위 20센티미터였어. 경찰이 자를 들고 다니며 길거리에 조그리고 앉아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의 무릎에서부터 치마 끝까지의 길이를 재고 다녔지. 토요일에 교외에 나가는 젊은이들을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청량리역에다 기타를  맡겨놓게 하고 열차를 타게 했다는구나.-책 내용

청바지와 통기타, 장발은 1970년대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맞서 분노와 반발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청바지는 미국의 히피들이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표시로 입었던 옷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장발족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경찰은 길거리에서 머리가 긴 젊은이들을 잡아 강제로 머리카락을 깎아 풀어주거나 거부할 경우 즉결심판에 넘겼다. 풍기문란을 이유로 의복과 두발을 단속하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국가는 공권력을 동원해 무자비한 개인 침해를 자행했다.

경찰은 또 가위를 들고 다니며 장발을 단속하러 다녔어.1974년 6월 장발족 무기한 단속에 나선 서울시경은  일주일 동안 1만103명을 단속했어. 이들 가운데 9841명은 머리카락을 깎아 풀어주고 이를 거부한  262명을 즉결심판에 넘겼어. 단속 대상은 옆머리가 귀를 덮고 뒷머리가 옷깃을 덮거나 파마를 한 경우였대.- 책 내용

해방 이후 들어선 국가는 오랫동안 표어나 슬로건, 국민교육 헌장이나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해 국민을 세뇌하고, 가지가지 단속으로 국민들을 통제했다. 신분 구분이 가능한 학생의 교복, 노동자의 단체복 착용은 효율적인 규율 통제를 위한 것이었다. 

야간 통행금지, 장발·미니스커트·춤바람 단속 등 통제와 금기, 훈련과 복종에 익숙한 국민을 만든 교육과 사회 풍토는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공권력의 이름으로 침해했다.

문화 키워드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짚어보는 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한국 현대사를 알 수 있다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덧붙이는 글 |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이임하 지음/ 철수와 영희/ 15,000원)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이임하 지음, 철수와영희(2014)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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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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