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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서 특강을 마치고 귀경길에 함양휴게소(대전통영 간 서울방향)에서 겪은 일이다. 진주 톨게이트로 접어들어 1시간 좀 지났을까? 차창 밖에는 온통 붉은 감나무 천지다. 푸른하늘과 붉은 감의 색깔이 곱다고 느낄 때쯤 바로 고속도로변에 손에 잡힐 듯 말듯 탐스런 감나무가 줄지어 있다.

아이쿠! 순간 차를 세우고 감 하나를 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함양휴게소를 들렸다. 감나무가 지천일 걸로 봐서 혹시 특산물판매소에 감이 나와 있으면 좀 사고 싶어서였다.

곶감 함양휴게소(서울방향)에 매달린 황금빛 곳감은 찾는이들의 마음을 고향집에 온듯 편안하게 해준다
▲ 곶감 함양휴게소(서울방향)에 매달린 황금빛 곳감은 찾는이들의 마음을 고향집에 온듯 편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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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사! 휴게소에 차를 대고 내려 보니 휴게소 입구 천장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곶감을 하기 위해 매달아 놓은 것이지만 삭막한 휴게소가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들어 선 느낌이다. 휴게소를 그렇게 많이 들러보았지만 이 황홀한 광경에 그만 넋이 나갈 뻔했다.

특산물판매소에 들러 단감 한자루를 1만5천원에 사고 내친김에 마침 점심시간이라 밥을 먹고 가려고 휴게소 안으로 들어섰다. 

보리차 대접 보리차 한잔이지만 손님을 왕처럼 맞이해주는 함양휴게소의 마음이 곱다
▲ 보리차 대접 보리차 한잔이지만 손님을 왕처럼 맞이해주는 함양휴게소의 마음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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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주임 은주전자에 보리차를 담아 따라주는 사원 (왼쪽), 채소를 손수 담아주는 영업주임
▲ 영업주임 은주전자에 보리차를 담아 따라주는 사원 (왼쪽), 채소를 손수 담아주는 영업주임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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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 테이블이 밝은 색이라 깔끔한 인상을 받으며 자리에 앉아 김치찌개를 시켰다. 아직 밥을 기다리고 있는데 호텔에서 봄직한 복장의 종업원이 다가와 역시 고급 호텔 식당에서 봄직한 반빡반짝 빛나는 은주전자를 기울여 따스한 보리차를 따라주는 것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나는 김치찌개도 먹는 둥 마는 둥 따스한 물을 따라주는 종업원(최정인, 판매사원)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일이에요. 이렇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보리차를 따라주시다니..."

"네 저희 함양휴게소에서는 오래된 일인걸요" 하며 상냥한 미소를 띈 판매사원은 식사를 시키고 밥을 기다리는 손님을 찾아 이리저리 식당 안을 다니고 있었다.

부침개 점심때마다 이곳에서는 계절별 재료를 써서 부침개 한쪽 씩을 무료료 서비스한다
▲ 부침개 점심때마다 이곳에서는 계절별 재료를 써서 부침개 한쪽 씩을 무료료 서비스한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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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이용객인 우리들이 느끼는 서비스나 친절은 아직 먼 느낌이다. 따스한 보리차는 고사하고 우선 식당 안 테이블에 질질 흘린 음식물 자국이라도 닦아 놓았으면 싶은 곳도 많다.

예전부터 우리겨레는 목마른 나그네에게 시원한 냉수 한그릇을 대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생긴 일화도 많다. 하물며 호텔 여직원이 입는 복장에 반짝이는 은주전자 를 들고 다니는 아리따운 직원으로부터 따스한 보리차를 대접받다니 마치 여왕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말 간판 휴게소 안에 알기쉬운 우리말로 예쁘게 써놓은 간판들
▲ 우리말 간판 휴게소 안에 알기쉬운 우리말로 예쁘게 써놓은 간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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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랑 아기랑", "빈 그릇 놓는 곳" 과 같은 우리말 사랑이 담뿍 담긴 실내 간판들도 맘에 들었다. 어떤 휴게소에는 "베이비 쉼터" "빈 그릇 반납장소" 와 같이 외래어나 한자어로 되어 있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함양휴게소 안을 둘러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서미자 영업주임이 다가와 식사를 잘했느냐고 묻는다. 이런 말도 처음 듣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점심시간마다 무료로 드리는 부침개 한쪽을 권한다.

이 휴게소에서는 점심시간마다 부침개 한 쪽을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단다. 놀라운 일이다. 거기에 휴게소 뒤편에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휴게소에 오시는 손님께 제공하고 있다니 이건 또 무슨 감동이란 말인가? 그러면서 손수 기른 채소를 깨끗이 씻어 먹기 좋게 담아 놓은 곳에 가서 한 접시 가득히 무공해 채소를 담아준다.

"휴게소 입구 천장에 매단 곳감은 저희 직원들이 전부 일일이 작업을 하여 매달아 놓은 것입니다. 해마다 11월에 감을 매달아 놓지요. 내년 3월까지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곶감 걸리 휴게소 천장에 매달린 감이 고와보여 누가 이렇게 했는가를 물으니 영업주임이 말하길 직원들과 휴게소 손님에게 직접 체험행사로 감을 꿰었다는 것이다.(영업주임 제공)
▲ 곶감 걸리 휴게소 천장에 매달린 감이 고와보여 누가 이렇게 했는가를 물으니 영업주임이 말하길 직원들과 휴게소 손님에게 직접 체험행사로 감을 꿰었다는 것이다.(영업주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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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손님들은 함양휴게소의 매력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저희는 고객님들께 어떻게 하면 더 가까이 다가설까 늘 고민하고 있지요" 말도 예쁘게 하는 주임이다.

그렇다. 따스한 보리차를 따라 주는 마음이 이 휴게소를 다시 들르고 싶게 만드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 고속도로 고객 고문으로 활동한 적이 있어 남들보다 휴게소에 대한 평이 좀 날카롭고 점수가 좀 짠 편이다.

그러나 "고객을 편히 모시고 싶은 마음"을 읽게 된 함양휴게소는 칭찬하고 싶어 바쁜 짬을 내어 글을 쓰게 되었다. 모든 휴게소가 함양을 닮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보며 서울로 향했다.

함양휴게소 함양휴게소(대전통영간, 서울방향)
▲ 함양휴게소 함양휴게소(대전통영간, 서울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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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아쉬운 것이라면 보리차를 따라주는 스텐컵을 도자기로 바꾸고, 그리고 김치찌개와 함께 나온 반찬이 마르지 않도록(미리 담아 놓아 약간 말라버린 느낌, 이날 김치찌개에는 파래무침, 김치, 고추삭힌것, 김 한봉지) 하는 지혜를 짜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것 빼고는 정말 완벽히 쉬고 싶은 휴게소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다.

"손님이 왕"인 체험을 하고 싶은 분이라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에도 보냈습니다



#함양휴게소#곶감#보리차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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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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