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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대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집단도 있습니다. 고발하고, 권력으로 압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권력에 응한 어용 판결로 누군가는 피고가 되거나 영어의 신세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뒷걸음질 치듯 퇴보하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던 개그프로그램이 어느 날 갑자기 쪼그라들듯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인기를 더해가던 어떤 개그프로그램이 국내에 서버를 둔 포털에서는 더 이상은 찾아볼 수 없이 어느 날 사라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작금에만 있는 현실은 아닌가 봅니다. 예전, 폭군으로 널리 알려진 연산군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인 2005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은 광대 공길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배우이거나 개그 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선시대에 광대라고 하면 아주 하찮은 신분인 광대 공길이는 왕명으로 유배를 가는 신세가 됩니다. 공길이는 무엇 때문에, 무슨 일로 유배를 가는 신세가 되었는지가 역사로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세시 풍속으로 나례(儺禮)라는 게 있었습니다. 나례는 음력 섣달 그믐날에 묵은해의 마귀와 사신을 쫓아내기 위해 베풀던 의식입니다. 연산군 11년(1505)에도 나례가 있었나 봅니다.

이보다 앞서 광대 공길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아뢰기를, "전하는 요순堯舜 같은 임금이요. 나는 고요庫陶 같은 신하입니다. 요순은 어느 때나 있는 것이 아니고 고요는 항상 있습니다" 하고 또<논어>를 외워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어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한 데 가깝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하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11년(1505) 12월 29일 -<조선과 만나는 법> 87쪽-

대부분 사람들이 듣기엔 아주 지당한 말이지만, 폭군 연산군이 듣기엔 양심을 콕 찌르는 촌철살인의 말로 들렸던 게 분명합니다. 아프지 않았다면 공길이에게 곤장을 치지도 않았으며 유배를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와 이야기가 만나 펼치는 조선 시대 45장면 <조선과 만나는 법>

<조선과 만나는 법> 책표지.
 <조선과 만나는 법> 책표지.
ⓒ (주)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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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만나는 법>(지은이 신병주, 펴낸곳 (주)현암사)에서는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궁금증, '명랑바다에서 이순신의 진짜 모습은?', '어우동은 왜 공공의 적이 됐는가?', '선죽교의 핏자국, 그 진실은 무엇일까?', '경복궁은 왜 '경복궁'일까?', '정도전이 주장했던 왕의 최고 역학은?', '조선이 실록을 보관했던 방식은?'과 같은 질문이 45가지 형태로 제시되며 이에 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도 이러한 질문을 가졌을 거며 답도 들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에 가졌던 질문이나 답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해설되거나 설명된 답이 대부분일 겁니다.

이런 형태로 익히는 역사는 어쩜 미음으로 끓인 음식으로 배를 불리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영양섭취도 중요하겠지만 절대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게 먹는 맛입니다.

아무런 식감도 느끼지 못하며 우물우물 삼키기만 하는 음식을 맛있다고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특징은 조선 역사를  읽는 식감을 날것에 가깝도록 느낄 수 있는 조선의 명문들이 대부분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뭉뚱그려져 불리고 있는 조선시대 왕들의 실록과 일기 등이 원문과 번역문으로 게재돼 있어 식감은 즐기듯 해석하며 더듬을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시고 쓰고 단 맛 등이야 미음처럼 으깨진 음식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감칠맛은 적당히 조리된 것을 직접 씹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이 그렇습니다.

원문(한자) 그대로라면 읽기조차 힘들겠지만 번역돼 있고, 생소할 수 있는 용어에는 주(註, 풀이 글)까지 달려 스스로의 소양으로 음미해가며 역사를 소화해 가는 재미를 실감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당장은 귀 가리고 눈 가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드러나는 게 진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질문처럼 던져진 45가지 제목들을 읽고, 답처럼 이어지는 내용을 읽다 보면 조선에 대한 관심은 넓어지고, 조선 역사에 대한 이해는 가을하늘 만큼이나 높아져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선과 만나는 법>(지은이 신병주 / 펴낸곳 (주)현암사 / 2014년 10월 20일 / 값 1만 5000원)



조선과 만나는 법 - 역사와 이야기가 만나 펼치는 조선 시대 45장면

신병주 지음, 현암사(2014)


태그:#조선과 만나는 법, #신병주, #(주)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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