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타임캡슐'을 묻어뒀다. 학과 전체에서 한 행사였는데, 필자는 호기롭게 'MBC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은 꿈을 적어 두었다. 정부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낸 공영방송 MBC에 가고 싶었다.

한때 MBC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

'교양제작국 해체, 110명에 이르는 기자와 PD의 현업 배제' 등 MBC경영진의 인사를 규탄하는 방송기자연합회, 언론노조, 기자협회, PD연합회 대표자들이 4일 오후 상암동 MBC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할 MBC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공영방송 MBC'를 지키기 위해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했다.
▲ "MBC는 언론인대학살 중단하라" '교양제작국 해체, 110명에 이르는 기자와 PD의 현업 배제' 등 MBC경영진의 인사를 규탄하는 방송기자연합회, 언론노조, 기자협회, PD연합회 대표자들이 4일 오후 상암동 MBC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할 MBC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공영방송 MBC'를 지키기 위해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PD수첩 : 4대강 수심 6M의 비밀>, <PD수첩 : 검찰과 스폰서> 등의 민감한 이슈를 취재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MBC가 멋있어 보였다. 비록 담당 PD들은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제작 일선에서 배제당하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지적하는 방영분이 가위질당할 정도로 탄압을 당했지만, MBC PD저널리즘은 그때도 고고했다. 하지만 4년 뒤, MBC의 고개는 땅으로 떨어졌고, 정신은 능욕당했다. 나아질 기미는 지금에도 보이지 않는다.

<불만제로>, <휴먼다큐 사랑>, <원더풀 금요일>, <PD수첩>, <W>, <눈물> 시리즈의 공통점은? 모두 MBC 시사교양국 출신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MBC의 시사교양국은 지난 2012년 시사 부문은 '시사제작국'으로, '교양'부문은 '교양제작국'으로 분리되었다. 이 교양제작국은 올해 회사의 '조직개편'에 따라 '콘텐츠협력국'과 '예능1국'으로 공중분해 될 예정이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10월 16일 성명을 내고 위의 조직개편이 MBC의 공영성 하락을 불러일으킨다며 사측을 규탄했다.

사측이 제시한 개혁의 명분은 간단하다. 바로 '위기극복'과 '경쟁력 강화'다. 화려한 수식어지만 속은 별 거 없다. 쉽게 말하면 '돈'이 안 돼서 폐지하는 거다. 이 조직 개편에 따르면 각 본부에는 '사업' 혹은 '마케팅'이라는 이름의 소위 '돈 버는' 부서들이 생긴다. 그만큼 방송국 내에 '수익성'을 강화하는 개편안이다.

결국, 교양제작국은 결국 수익성이 없다는 명분으로 공중분해를 하는 모양새다. 이에 반발하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측과 시사교양 PD들은 10월 23일 사내에서 항의 피케팅을 벌였다. 하지만 안광한 사장은 출장 중이었다.

MBC 시사교양국, 수익성이 없다는 명분으로 공중분해

사실 프로그램을 해체하고, PD들을 대기 발령하는 MBC 헛발질이 그리 새롭지만은 않다. MBC 사측은 2012년에도 같은 일을 했다. 2012년 당시 170일의 노조파업을 마친 기자와 PD들을 신천동 MBC아카데미로 보내 '브런치 제작', '요가수업' 등의 수업을 듣게 하는 '신천교육대 사태'를 만들었다.

MBC 사측의 막 나가는 행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추후 MBC는 '낙하산 사장' 반대와 '공정방송 쟁취'를 외치던 자사의 PD 및 기자 총 7명을 해고했다. 법원은 이들에게 부당해고라며 복직판결을 냈지만, MBC는 "해직자들이 회사에 대해 무조건 완전 복직을 요구하는 것으로 법원 결정을 입맛대로 과잉 확대해석한 것이며 근로자의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한다는 법원의 결정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

방송국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미군정 시기에 방송국시스템을 얻었지만, 그 성격은 영국과 비슷하다. 시스템의 목적이 영국 방송사 BBC와 같이 공중의 계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군사독재로 인해 방송국은 본분을 저버린 채 정부의 선전도구가 되었고 '종속'관계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80년대 민주화를 거치며 유착단계를 극복하고 비교적 건강한 공존관계에 다다랐다. 비록 각 언론사마다 정부와의 이해관계는 달랐지만, 전체적으로 시사기능이 살아있는 '견제'와 '공존'의 분위기였다. 그 중심엔 날이 서있는 공영방송이 있었다. 그 공영방송엔 MBC가 있었다. 시민을 섬기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수칙에 충실한 수많은 MBC의 PD와 기자들이 그 자양분이 되었다.

아무리 공영방송이 '기업'일지라도 그것의 본분은 '수익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하철이 공공기관에 의해 운영되는 것처럼, 돈이 되지 않는 시사부문과 교양부문에도 최선을 다하라고 세금이 들어가는 것이고, 그렇기에 공영방송은 시사교양을 놓으면 안 된다.

이번 MBC의 조직개편은 명백히 공영방송의 책임방기요, 시민들에 대한 배임이다. 정녕 그들이 수익성을 추구한다면, 교양프로그램에 더욱 투자하여 질을 제고해야만 했다. MBC 다큐멘터리 <눈물> 시리즈는 세계 정상급 프로그램 페스티벌에서 이름을 드높였고, 영화화까지 되는 등 건강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자사의 시사보도가 경쟁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을 명목으로 해체하는 건,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우민화 전략에 서 있는 공영방송 MBC가 처량하다

MBC의 보도기능 폐쇄에 대한 강공 드라이브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이래 MBC의 몰락 뒤에는 결국 '권력'의 흑막이 있었다. 이번 역시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많은 언론인과 교수들 그리고 시민들은 안광한 사장의 개선안을 보고 "권력의 시녀를 자처하는 언론", "거세된 언론"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능력 있는 PD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면서까지 "MBC는 제 손에 있습니다"라고 정부와 여당에 신호를 보내는 안광한 사장이 보이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이 살아있던 5공화국 시절에도 존재하던 교양국이 강제로 해체되는 2014년이다. 언론 본연의 가치를 외면하고 우민화 전략의 첨단에 서 있게 되어버린 공영방송 MBC가 처량하다.


태그:#MBC, #시사교양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