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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무엇일까요. 사전에는 '일정한 목적, 설비, 제도 및 법규에 의거하여, 교사가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라고 적혀 있네요. 그러니까 교사가 교과서로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말이죠.

그래요. 중학교까지는 학교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져요. 수능 위주의 교육을 해야 하는 고등학교에서는 예전부터 각종 문제집이 교과서를 밀어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다가 2011년도부터는 아예 고3 교실에서 교과서는 찾아볼 길이 없게 됐어요. EBS교재의 수능 연계 비율이 70% 이상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고3교실에서 수능과목은 EBS교재가 교과서 자리를 꿰찼거든요.

교과서가 그렇게 그립냐고요? 오해하지 마세요. 교과서만 가지고 수업하자는 말은 아니니까요. 교과서를 유일한 학습 수단으로 삼아 교사가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그런 수업은 21세기에 맞는 교육방법이 아니거든요. 필요하다면 이런 참고서도 보고 저런 자료도 보면서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하는 게 수업다운 수업이라는 건, 우리도 알아요. 문제는 애를 써서 만든 교과서가 그냥 버려진다는 데 있어요.

선생님은 시원시원하셨어요. 인터뷰에 응하는 태도도 그러셨지만, 말씀도 참 시원시원하게 해 주셨지요.
▲ “문제는 그 역기능이에요.” 선생님은 시원시원하셨어요. 인터뷰에 응하는 태도도 그러셨지만, 말씀도 참 시원시원하게 해 주셨지요.
ⓒ 강봉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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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은 있어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놓고 어른들이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만 봐도, 교과서는 대단히 의미 있는 교재인 것 같아요. 그렇잖아요.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다시 돌리는 문제도 그렇고, 어느 출판사의 교과서가 과연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칠 만한 교과서인가를 놓고도, 얼마나 사회적 공방이 많았어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박화정 선생님(여수고, 사회 교사)을 만나러 갔어요.

 - 선생님은 수업을 하시면서 어떤 교재를 사용하시나요?
"3학년은 EBS교재가 수능에 연계되기 때문에, 수업할 때 100% EBS교재를 쓸 수밖에 없어요. 고3이다 보니까, 교과서에 나와 있는 활동 위주의 수업을 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고요."

- EBS교재도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가요?
"EBS교재가 수능에 반영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사교육 시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대책은 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문제는 그 역기능에 있어요. EBS교재에서 수능의 70%가 나온다고 하니 안 할 수도 없고, 모든 과목을 다 하려다 보니 공부 양은 너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학생들 개인적으로 공부하게만 둘 수 없으니, 이제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까지 교과서를 제쳐놓고 EBS교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이렇게 EBS교재로 수업을 하니까 인강(인터넷 강의) 듣겠다며 학교 수업을 소홀히 하는 학생도 생기고. 공교육 정상화라는 기준으로 보면,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지요."

EBS수능연계교재로 수업하는 시간. 해당 과목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은 밖에 나가서 자습을 하지요.
▲ 교과서가 사라진 학교 EBS수능연계교재로 수업하는 시간. 해당 과목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은 밖에 나가서 자습을 하지요.
ⓒ 하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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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버릴 교과서는 왜 사게 해요?"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참 착한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는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서서 사립대가 없어지고 모두 국립화되었다고 하던데,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어떤가요? 모두들 목소리를 잃어 버린 것 같아요.

과연 현장 분위기는 어떤지, 조심스럽게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찾아보았어요. 다들 인터뷰라니 거절하기 일쑤였는데,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며 인터뷰에 응한 학생이 있었어요.

- 고3으로서 인터뷰에 응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고마워요. 수업 시간에는 무슨 교재를 가지고 공부하시나요?
"다 알면서 왜 그런 질문을…. 수업시간에는 모두 다 EBS지. EBS교재가 수능에 연계되니까."

- 그러면 교과서는 안 쓰는 거예요?
"아예 안 쓰지. 아무것도 안 써. 받자마자 버렸을 걸. 어디 처박아두었거나."

- 그럼 교과서는 왜 샀어요?
"사라니까 샀지. 수업 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운동부까지 사는데, 안 산다고 하다가는 찍히잖아? 어디 학교에선가는 '교과서 물려주기 운동'을 공약으로 걸고 학생회장에 당선된 친구도 있는데,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한마디 듣고 그 공약 그냥 접었다고 하던데, 뭐."

이 많은 돈을 버려가면서까지, 고등학교 3학년들이 교과서를 꼭 사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 ‘버려지는’ 교과서 대금 이 많은 돈을 버려가면서까지, 고등학교 3학년들이 교과서를 꼭 사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 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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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교과서, 버려지는 돈 420억!"

우리나라에 고등학교 3학년이 과연 몇 명일까요? 오는 11월 13일 시행되는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재학생 응시자가 49만5027명이라고 하니 얼추 50만 명 정도로 잡고 계산해 볼게요.

고등학교 3학년들이 사야 하는 교과서 대금은 얼마나 될까요?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이제는 10만 원은 될 거래요. 교과서는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 공급되다가 2010년 가격 자율화 정책이 도입되었는데, 이러면서 한 권에 2000원, 3000원 하는 교과서 값이 1만 원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니까요.

그래서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2014학년도 여수 3개 고등학교 고3 교과서 대금의 평균이 8만4000원쯤 되니까,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았어요. 그랬더니 수능을 준비하는 전국의 고등학생 50만 명이 8만4000원씩 '버리거나 처박아두는' 교과서를 사는 데 무려 420억 원이 허비된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더 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어요. 현재 고등학교 2학년들 또한 내년에 똑같은 상황에 직면할 거니까요. 내년 교과서 주문은 이미 올 3월에 끝났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하네요.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없을까요? 이렇듯 큰돈을 그냥 교과서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것도 안 된다면 내년부터라도 바꾸면 안 될까요? 내년도 입시 체제가 현재와 같을 거라면, 내년에 2학년이 되는 학생들에게 고3교과서에 대해서 자율선택제를 할 수 있도록 하면 안 될까요? '아예 펴보지도 않을' 교과서니까 살지 말지를 선택하는 권리를 학생들에게 주자는 말이지요. 420억 원을 버리는 것이 매년 반복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비정상의 정상화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입니다. 교육부장관님, EBS교재를 확 줄여 주시든가, 교과서를 안 살 수 있게 해 주시든가, 둘 중의 하나는 꼭 하게 해 주세요. 제발!
▲ 사랑해여수 비정상의 정상화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입니다. 교육부장관님, EBS교재를 확 줄여 주시든가, 교과서를 안 살 수 있게 해 주시든가, 둘 중의 하나는 꼭 하게 해 주세요. 제발!
ⓒ 박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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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강봉명, 강수현, 하재영, 박민기, 문소연, 방현유, 김민정, 김윤영, 박해지, 정시은 기자)

덧붙이는 글 | EBS연계교재의 문제점을 알아보면서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따뜻하게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도 만났고, 등을 두드려 주는 선배도 만났어요. 그중에 잊히지 않는 말씀이 있네요. 여수대양서림 주인인데, 그러시대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잡는 게 잘 안 되더라고. 나는 부모입장이니까 사실 애들이 너무 불쌍해." (여수지역 고등학생 연합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팀장 : 강봉명)



태그:#사랑해여수, #EBS연계교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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