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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은 페이지를 나타내는 숫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족보 아래 견결(見結)이라는 글은 38페이지를 보라는 말입니다.
 <천자문>은 페이지를 나타내는 숫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족보 아래 견결(見結)이라는 글은 38페이지를 보라는 말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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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백수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전설은 숙종에 의해 전해집니다. 숙종은 세자, 훗날 경종이 된 세자가 네 살이 되자 <천자문>을 가르치기 위해 1691년에 <천자문>을 금속활자로 인쇄합니다. 그때 숙종이 지은 서문에 <천자문>의 별명이 <백수문>이 된 까닭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464~549)의 초대 황제는 무제입니다. 이 무제에게는 여러 왕자가 있었습니다. 무제는 이 왕자들에게 글씨를 가르치기 위해 은철석(殷鐵石)에게 위나라 종요(鍾繇)와 동진의 왕희지(王羲之) 글씨 가운데 겹치지 않은 일천 자를 탑본하여 종이 한 장에 한자씩 쓰게 하였답니다. 일천 자는 그렇게 모아졌지만 글씨들은 뒤섞여있어 순서가 없었답니다.

그러자 무제는 주흥사에게 각 글자마다 운을 붙이라고 명했답니다. 무제의 명을 받은 주흥사는 그 모든 일천자를 하루 사이에 편집을 다 했답니다. 그런데 주흥사의 머리와 수염 또한 하루 사이에 모두 하얗게 되어 있더랍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 책은 원래의 이름 <천자문> 외에도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제가 주흥사에게 운을 붙이라고 한 건 단순히 운만을 붙이라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천자를 골고루 써 한 글자도 겹치지 않는 줄거리를 만들라고 한 것이니 얼마나 힘이 들면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하얀 백발이 되었을지가 쉬 어림되지 않습니다.

<천자문>하면 댕기머리를 한 학동들이 서당에 앉아 '하늘 천, 따 지'하며 한자를 익히는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의 <천자문>은 한자를 익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글씨 연습을 위한 교본이었다고 합니다.
페이지를 나타내는 숫자 대신 쓰인'結'자. 결자는 천자문에서 38번째 글자이니 이 페이지가 38페이지가 되나 봅니다.
 페이지를 나타내는 숫자 대신 쓰인'結'자. 결자는 천자문에서 38번째 글자이니 이 페이지가 38페이지가 되나 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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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은 단순히 글씨만을 익히기 위한 교본만도 아닙니다. 천개의 한자를 모아서 역은 하나의 장편 사고언시(四言古詩)이자 익히고 새길 만한 경구들입니다. <천자문> 또한 임진왜란 중 사용하였던 총포의 이름,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에서 볼 수 있듯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양 무제에 의해 만들어진 <천자문>은 장구한 역사를 거치며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 아주 다양한 형태로 편집돼 각양각색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주흥사 <천자문>과 석봉 <천자문>의 대안으로 나온 <주해 천자문>

<난세의 어진 글, 주해 천자문>(편역자 허경진, 펴낸곳 알마출판사)은 그동안 발행된 다양한 <천자문> 중에서 주흥사 <천자문>과 석봉 <천자문>의 대안으로 개발된 <주해 천자문> 중 1804년에 홍태운이 글씨를 써서 광통방에서 간행한 방각본을 대본으로 해 음과 뜻을 좀 더 현대적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난세의 어진 글, 주해 천자문>(편역자 허경진 / 펴낸곳 알마출판사 / 2014년 9월 25일 / 값 1만 7500원)
 <난세의 어진 글, 주해 천자문>(편역자 허경진 / 펴낸곳 알마출판사 / 2014년 9월 25일 / 값 1만 7500원)
ⓒ 알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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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흥사 <천자문> 이래 여러 종류의 대안 천자문이 개발되었지만 이러한 천자문들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못한 것은 주흥사 <천자문>처럼 쉽게 외워지지 않는다는 문제점과 석봉 <천자문>처럼 아름다운 글씨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주해 천자문>은 이런 단점을 보완 해 한자 하나에 두세 가지의 음과 뜻을 소개하고 주해까지 붙여 놓아서 깊은 뜻을 알게 하였을 뿐 아니라 용례까지 소개하고 있어 <천자문>에 담긴 뜻과 의미를 보다 광범위하게 새길 수 있습니다. 

<천자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다른 천 개의 한자를 모아 하나의 장편 사언고시를 엮어냈다는 점인데, 광주<천자문>에는 "여모정결女慕貞潔"의 결潔자와 "환선원결紈扇圓潔의 결潔자가 겹친다.

그로부터 8년 뒤 출판된 석봉 <천자문>에서 한석봉은 "여모정결女慕貞潔"을 "여모정렬女慕貞烈"로 고쳐 썼으며, 그 뒤로 나온 <주해 천자문> 을 비롯한 대부분의 <천자문>들이 "여모정렬女慕貞烈"로 썼다. - <난세의 어진 글, 주해 천자문>(5쪽-

책에서는 <천자문>의 역사라 할 수 있는 변천사까지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한 명으로부터 한 글자씩, 1000명으로부터 한 글자씩 받아 엮어 만든 <천인 천자문>도 있고, <천자문> 구절 중 순조가 직접 쓴 <세손궁어필>도 사진으로 실려 있어 볼 수 있습니다.

(위나라 재상) 사어가 병으로 죽게 되지 아들에게 유언을 했다. "나는 위나라 조정에 있으면서 생전에 현명한 거백옥蘧伯玉을 등용하지 못하고, 간신 미자하彌子瑕를 내쫓지 못한 죄를 지었다. 그러니 내가 죽거든 시신을 그대로 거적에 말라 땅에 파묻어라." (그러자 이 유언을 들은 영공靈公 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공자가어)<곤서困誓> -<난세의 어진 글, 주해 천자문> 203-

위 글은 <천자문> 중 170번째의, 사어병직(史魚秉直)를 설명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천자문> 169번째의 맹가돈소(孟軻敦素)와 구절을 맞춰 '맹가는 본바탕을 돈독히 닦았으며, 사어는 직간을 잘했다'라는 뜻입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을 '하늘 천', '따지', '검은 현', '누를 황'이라고 읽으며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玄은 멀고도 깊게 보이는 빛이므로, 하늘이 검다는 말보다는 "가마득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다.' 설명에 검을 현(玄)자와 검을 흑(黑)자가 같은 검음을 나타내면서도 그 의미가 이렇듯 다르다는 걸 알게 되니 책을 읽는 내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걸 여러 번 경험하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난세의 어진 글, 주해 천자문>(편역자 허경진 / 펴낸곳 알마출판사 / 2014년 9월 25일 / 값 1만 7500원)



난세의 어진 글, 주해 천자문

허경진 지음, 알마(2014)


태그:#난세의 어진 글, 주해 천자문, #허경진, #알마출판사, #한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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