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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이재무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이재무 시집 ⓒ 실천문학사
어항 속 물을/  물로 씻어내듯이/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지혜를 경청한다<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일자리 때문에 면접보고 나오는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철을 타려고  앉아있는데 처량한 내 신세에 서글픈 감정이 가슴에 치밀며 꾸역꾸역 목울대를 넘어 올라온다. 처량하게 혼자 눈물을 쏟을 것 같아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다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서둘러 슬픔을 눌러 담고 지하철을 타려고 일어섰다.

'슬픔'이 목울대를 넘어오면 억지로 밀어 넣을 것이 아니라   <길La strada>의 주인공  잠파노처럼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울음을 맘껏 토해낼 장소가 필요하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가슴에 슬픔을 담아 둘 정갈한 공간 하나쯤은 남겨두었을 것이다. 가슴에 담아뒀던 시인의 슬픔은 언젠가 시가 되어 독자들의 슬픔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의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이재무 시인이 열 번 째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를 출간했다. 그는 '슬픔은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킨다. 슬픔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내겐 아버지 같은 감정이다. 이제 슬픔에게 예우를 해주고 싶었다'고  제목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제부터 나도  슬픔이 치솟으면  슬픔에 저항하지 말고 차라리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겠다.

아내는 비정규직인 나의/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아들이 입대한 후로는 더욱 그렇다/이런날 나는 물그릇에 밥을 말아먹는다/흰 대접 속 희멀쑥한 얼굴이 떠 있다/나는 나를 떠 먹는다/질통처럼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없어진 얼굴로 현관을 나선다/ 밥벌러간다 <나는 나를 먹는다>

시인이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비정규직이다. 시만으로 밥벌이가 되지 않아 그는 비정규직인 시간 강사로 대학을 전전한다. 대학을 전전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길에서 보낸단다.그는 물에 밥을 말아 먹지만 나는 이따금 눈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비정규직인 나의 삶과 샴쌍둥이처럼 닮았다.

그의 시가 눈이 아닌 가슴으로 읽히는 것은   피를 흘리며 자기  가슴의 깃털을 뽑아 고운 천을 짜던 선녀처럼 가슴에 통증으로 박혀 그의 피로  진주가 된  시상을 모아 시를 지었기 때문이리라. 진주는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진액을 뽑아 올린  인내의 결과물이 아니던가. 삶속에서 이리저리 다치고 덧난 상처와 옹이마다 시인의 가슴에서는 진주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이 가슴에 고여  가을이 아픈 이들은 이재무 시인의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로  따뜻한  위로를 받으시라.

덧붙이는 글 |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이제무/ 실천문학사/ 8,000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이재무 지음, 실천문학사(2014)


#슬픔에게 무릎을 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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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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