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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오후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
24일 오후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 ⓒ 대법원

대법원이 공청회를 통해 상고심 맡을 상고법원 도입안을 공개했다.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여 건의 상고사건을 처리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이뤄졌지만, 근본 해법이 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24일, 오후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한승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이 발제문을 통해 밝힌 상고법원 도입방안에 따르면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 심판은 상고법원이 담당하게 된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의 법률해석과 판례에 입각해 1·2심이 법률을 올바르게 적용했는지를 보는 법률심을 맡는다는 구상이다.

상고심 대부분 상고법원에서 심판, 전원일치 판결

1·2심에 불복해 상고하면, 대법원 소부에서 직접 심판할 사건과 상고법원으로 보낼 사건을 심사하고 이 결정은 불복할 수 없다. 그러나 상고법원에서 대법원 판례가 없어 심판할 수 없다든지 의견일치가 안 돼 판결이 불가능할 땐 사건을 대법원으로 이송할 수 있다.

대법원이 맡는 사건은 새로운 법리 선언이 필요하거나 동일한 쟁점에 여러 다른 판결이 있는 경우 등 법령 해석의 통일이 필요한 사건, 재판 결과가 공적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 등이다. 대법원이 맡는 사건 수가 현재보다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심사 없이 곧바로 대법원이 맡는 사건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 무기금고가 선고된 형사사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소송과 선거 과정의 불법으로 당선무효가 될 수 있는 공직선거법 사건 ▲지자체 주민투표소송 ▲군사법원 사건 등이다.

대법원이 맡지 않은 사건들은 상고법원이 맡는다. 도입방안에 따르면 상고법원은 대법원과 같은 소재지, 현재로선 서울 한 곳에 설치된다. 상고법원에는 판사 3인 이상이 부를 이루되 부장판사는 없이 전원일치로 심판하도록 한다. 상고법원 판사는 항소법원 재판장을 상당 기간 경험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법원장 정도의 자격을 갖춘 판사 중에서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보임한다.

상고법원의 판결은 선고 즉시 확정판결의 효력을 가진다. 그러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특별상고할 수 있는데 대법원이 특별상고가 이유있다고 판단하면 상고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판한다. 특별상고 인정 이유는 ▲재판에 헌법 위반이 있을 때 ▲대법원 판례와 상반된 판결을 한 때 등이다.

"대법관 증원은 왜 외면?"..."상고법관 출신 다양화해야"

그러나 이 같은 대법원의 상고법원 구상은 현재의 상고심을 개선하는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날 공청회 토론자로 나선 이재화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상고심개선연구위원)는 "그동안 많은 국민과 법조인들은 대법관 증원안을 제시했는데 대법원이 진지하게 검토조차 않고 상고법원 도입을 관철하려는 건 상고심 개선 문제를 국민의 관점이 아닌 대법원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라며 "그 기저에는 '대법관이 증원되면 대법원의 위상이 추락할 것'이라는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상고법원 도입으로 현재 연간 30건 수준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활성화돼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이 변호사는 "남성고위법관 일색의 엘리트·보수 성향 인사로 구성된 현재 대법관 구성으로는 심도 있는 토론으로 결론 내린다 해도 지금과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다양한 대법관 구성을 통한 대법관 증대안이 해법"이라며 "대법관 수는 30~50명으로 늘리고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하면 충실한 심리가 가능하고 사회의 변화된 현실과 다양성을 담아 사회적 가치기준을 마련하는 정책법원 기능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현호 <한겨레> 논설위원도 "상고심 제도에 대한 논의는 상고법원 설치 방안만 놓고 벌일 일은 아니라 대법관 수 증원과 상고허가제 등 다른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설득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법원이 정책판단과 권리구제의 두 기능을 모두 수행하려고 하면서도 소수의 대법관을 유지하려는 모순된 입장이고 어중간한 절충"이라고 일침을 놨다.

그러나 상고법원 도입이 대법원이 선택 가능한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여 논설위원은 "상고법원 법관을 현직 엘리트 법관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경력을 지닌 전직 법관이나 재야 법조인 등으로 넓혀야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 등을 해소하고 법률심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경희대 법학전문재학원 교수)은 상고법원 도입을 전제로 대법원 기능의 정상화를 주문했다. 서 소장은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전원합의부로 운영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대법원 전원합의부 사건은 반드시 공개구두변론을 거치고 제3자 진술 및 진술서 제출의 기회 확대 ▲하급심 심리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서 소장은 "상고법원을 서울 한 곳에 설치해 현재의 중앙집중적인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건 시대의 발전적 흐름에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상고법원 판사라는 새로운 고위직 판사 보직이 법원장이나 고등부장을 넘어서는 또 다른 출세 목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사법부 내 관료화와 수직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상고법원 판사의 보직은 외부에서 다양한 배경·경험·지식을 가진 법조인들이 보임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고법원#상고심#대법원#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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