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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 마령과의 인연은 1988년 마령고에 잠시 근무한 때부터다. 당시만해도 많은 선생님들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학교 생활을했다. 순박했던 학생들과 짧은 학교 생활이었지만 첫 번째 교직 생활이라 이런 저런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주에서 생활하지만 지금도 진안 계남 마을에 한 달에 두 번 골로 다녀온다. 계남 마을 물을 가져다 식수로 먹기 때문이다. 진안에서 살면서부터 식수로 이용한 계남마을 물은 신통력(?)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내동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전주에 살면서 진안과 하나의 끈을 맺어 놓은 곳이 마령 계남 마을이다.

 계남정미소
계남정미소 ⓒ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페이스북

계남 마을과 특별한 인연은 공동체 박물관 계남 정미소 때문이다. 2006년 문을 연 계남 정미소는 마을 정미소에 착안한 사진 갤러리다. 계남 정미소 김지연 관장은 마을사람과 함께 호흡하면서 많은 기획전을 전시했다. 첫 번째 전시가 '계남마을 사람들'로 계남마을 주민들의 옛 사진을 복원해 전시한 것이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귀농, 귀촌을 외치며 농촌에서 살고자 하지만 마을 사람과 거리감이 있는 게 현실인데,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선택한 첫 번째 전시였다. 김지연 관장은 이렇게 마을 사람과 호흡하며 마을사람이 되어갔다. 이후 '마이산으로 간다', '시간에게 길을 묻다-진안골 졸업 사진첩', '용담위로 나는 새' 등은 공동체 박물관이라고 이름 값 하기에 충분한 기획전이었다.

이런 기획은 마을과 지역을 연결하는 주제로 공간적 범위를 지역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지역사회와 결합한 행사도 의미 있게 진행됐는데 청소년 사진 체험학습 및 전시전인 '계남 정미소 사진 찍으러 가요', '지역주민 영정사진 제작'이 그것이다. 김 관장의 개인전 면면은 작품집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정미소', '나는 이발소를 간다', '묏동', '우리 동네 이장님은 출장 중' 등은 현대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기록을 충실히 남기려는 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집이다.

그것은 정미소 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나, 개인과 지역을 넘어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과 맥을 같이 해왔다는 점에서...정미소를 찾아다니는 행위는 유년의 기억, 할머니와의 기억을 더듬는 행위라고 진술되고 있지만, 대상이 주는 특별함이 우리를 근대의 기억으로 이끈다. -<정미소> 중에서

계남 정미소는 한동안 우리지역 문화 메카 역할을 했다. 우리 지역 문화계 소식을 독점하기도 했다. 그래서 계남 정미소를 찾는 사람이 진안역사박물관을 다녀가는 사람보다 많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다. 그런 계남 정미소가 아쉽게도 2012년 9월에 문을 닫았다. 계남마을을 갈 때마다 문 앞을 서성인다. 언제가 진안으로 돌아가면 잠자고 있는 계남 정미소를 깨우고 싶다.

계남 정미소가 문을 여는 날 계남 마을도 보다 활력에 찰 것이다. 김 관장은 전주 '서학동 사진관'에서 어느 때 보다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그런 김 관장도 마음속 깊이 '계남 정미소'가 문 열 날을 누구보다도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첨부파일
DSC06807.JPG

덧붙이는 글 | 이글은 e-진안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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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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