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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손에 넣기 전에는, 그것을 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손보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 - 주제 사라마구의 <리스본 쟁탈전> 중에서

주제 사라마구는 주로 개인들 삶의 초점을 국가에 맞추어 글을 쓰는 작가이다. <리스본 쟁탈전>은 개인의 삶을 공간 내에만 한정하지 않고 시간이 포함된 역사 속으로 끌어당겼다. 주제 사라마구는 역사와 역사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현재 국민들의 사상을 지배하는지를 나타내었고, 동시에 그 안에서 소실된 개개인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그가 <리스본 쟁탈전>에서 주로 언급한 단어 중 하나는 '권위'였다. 책의 첫 부분부터 그는 권위가 국민들을 심리적으로 정복한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후로 아이들은 파리 다리를 잡아떼면서 여섯 개를 육감적으로 세었다. 하지만 바로 이 아이들이 자라서 저 그리스 현자의 책을 읽게 되면, 자기들끼리 있을 때 파리 다리가 네 개라고 말한다."

<리스본 쟁탈전> 책표지.
 <리스본 쟁탈전> 책표지.
ⓒ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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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식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우리가 배우는 것들이 진리로서 명확히 밝혀지지 못하는 사실이 현실에서 만연한다. 권위가 결국 사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같은 문장을 일반인이 하는 것과 교수, 판사, 연구원, 고위 관리직, 교인 등 직책이 정해진 자들이 내뱉는 것부터 차이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인물이 아니라 그 앞에 붙은 직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같은 말을 인용할 때도 마지막에 어떤 직책을 가진 사람이 말했다는 둥 강력한 출처의 쐐기를 박아 상대에게 자신의 타당성을 주입시킨다. 이러한 권위가 만든 사상은 사회적 통념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오래 전 불혹을 지나 자신만의 사상을 굳건히 다져야 할 나이가 된 주인공 라이문두 실바조차 여전히 시대에 따라 변하는 통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하지만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통념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해 매주 염색한다. 그도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염색한 머리를 고집하고 있다.

분명 염색하는 것이 자기 관리나 젊음의 상징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서를 쓰는 동안에는 절대 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머리 염색에 관해서 시대 통념에 굴복함을 알 수 있다. 역사서를 쓰는 동안 그가 속한 곳은 역사 속이기에 그 시대에 맞게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마리아 사라를 만날 때는 다시 현실이라는 시대에 맞춰 염색하는 이중생활을 한다.

권위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상과 시대통념

주제 사라마구가 <리스본 쟁탈전>에서 언급한 또 다른 단어는 '역사속의 빈틈'이다. 책에 "구두장이는 그림 속 인물이 신고 있는 샌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는, 화가가 그 잘못을 바로잡은 것을 확인한 뒤 무릎의 해부학적 표현에까지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나선다"는 문단이 있다.

언뜻 참견하고 나서고 싶어 하는 인간의 유혹이 구두장이처럼 매우 흔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문장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구두장이는 자신의 삶이 속하지 않은 역사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역사 사이에 자신의 존재를 끼우려고 안달하고 있다.

주제 사라마구가 말하는 역사 속의 빈틈이란 사소한 것 즉, 인간적인 경험을 말한다. 국가의 흥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나, 국가가 보기에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 전 국민적인 축제 또는 평범한 다수를 중심으로 발생한 문제와 같은 큼직한 사실들은 대부분 역사로 남는다. 개인의 삶이 역사로 기록된 경우는 그 개인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 인물이거나 매우 악한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국가의 대다수 국민들은 역사를 쓰기위한 원동력만을 제공하며, 가까운 지인들의 기억 속을 제외하고는 영영 국가의 기록에서 사라지거나 깊숙이 숨겨진다. 교정자 라이문두 실바는 개개인들의 심리, 환경, 사상이 고려되지 않은 신성하기만 한 역사에 질려 있었다. 그는 <리스본 쟁탈전>에서 리스본에서 새벽에 깨어난 무에진이 본 아름다운 풍경을 읽고 싶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면전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듯 세세한 사실들이 자세히 묘사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사소한 사실들이 적당히 언급될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그 시대의 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라이문두 실바는 문득 역사서의 한 단어가 달라짐으로써 변하는 미래가 궁금해졌다. 십자군이 포르투갈인의 리스본 함락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에서 그는 돕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의 단어를 집어넣게 된다. '않을'이라는 단어를 집어넣기 전까지 그는 그 전 <리스본 쟁탈전> 역사서의 포로였지만, 넣은 후에는 무의식중에 새로운 역사를 만나기 위한 도주를 감행한다.

한 단어로 인해 뒤바뀌는 역사와 그 후

라이문두 실바는 일부러 잘못된 교정을 하여 이후의 내용에 대해 자신의 상상력을 일깨우고 싶었다. 그래서 쉽사리 '않을'이라는 단어를 지우지 못했다. 출판사 제작부가 교정본을 가져가자 이내 자신이 역사 왜곡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불안해한다. 다행히 출판사는 그를 용서했고, 심지어 어떤 여자는 그에게 새로운 역사를 써보라며 부추긴다.

새로운 역사서를 써보라고 제안 받는 순간 라이문두 실바는 설득력 있게 보이는 어떤 현실이 여러 버전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여러 역사가들이 같은 사건과 현상을 자신의 생각에 따라 현재와 역사에 동일하게 넣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문두 실바는 현실에서 만나는 동물과 사람, 지형들을 역사적 사실에 동원하여 거대한 역사적 틈 속에 개개인의 역사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완성한 역사서는 읽기에 재미있는 소설이 된다. 라이문두 실바가 새롭게 쓴 것은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소설이었다.

인간적인 경험이 자세히 나열되는 순간부터 역사는 예술이 된다. 어느 시대에나 동일한 개개인의 이질적인 각감들을 지닌 인물들은 존재한다. 이들을 역사에 첨가하여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만든다면 역사는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더불어 현대인들도 역사 속 시대를 강하게 느끼는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만약 역사를 예술로 쓰지 않고 사실적인 내용으로만 쓰려면 몇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우선 특정 사상이 통용되기 전 시대에 이후 시대의 사상을 주입하면 안 된다. 오늘날 개봉되는 여러 영화와 사극에는 이마를 덮은 앞머리 스타일이나, 하이힐, 계량한복 같은 현대식 스타일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의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일부러 시대 융합을 고려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과장된 자연현상과 같은 초자연적 사건을 역사에 집어넣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그 시대에 존재가 불가능한 거대 회오리나, 빙하기 등이 그 예이다. 또한 기존 역사교사서에 첨가되어 있지 않지만 국가 부흥을 위해 노력한 특정 국민의 족적이 발견된다면 역사가들은 언제라도 역사교과서에 이들을 언급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를 쓸 때에는 심하게 남의 나라 역사를 낮추거나 자국의 역사를 추앙하도록 각색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자국의 승리를 알리는 선전용이 아니다. 정확한 근거로 명확한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역사는 예술로 승화돼 개인을 드러내야

오늘날 우리는 역사 교과서를 통해 잘못된 역사에 대한 교훈과, 역사 속에서 각 국이 어떤 피해를 당했고 또한 국민들이 겪은 큰 사건이 무엇인지 등의 사실을 배운다. 그 이면에는 언제나 권위자가 있고 특정 무리가 있다. 현재 독도를 둘러싼 논쟁처럼 알게 모르게 역사를 교묘하게 꼬아 자국민에게 주입한 후 그럴 듯한 과정으로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국가들이 있다.

역사가 권위자들의 조정 가능한 강력한 도구가 되고, 역사 속의 인간적인 경험들이 계속적으로 무시된다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현재뿐이다. 도구가 된 역사는 현재를 만든 모든 이들의 노력과 희생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조차 무의미하게 왜곡 후 후손들에게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에는 인간의 모든 것들이 거짓이 될 것이다.

라이문두 실바는 꿈이 있었다. 교정자가 아닌 글을 쓰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소설가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소설 속에 제시한다. 그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인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는 대장으로 묘사했다. 결국 라이문두 실바는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에 현실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페르소나를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자로 나타내었다.

주제 사라마구 역시 소설 <리스본 쟁탈전>을 통해 라이문두 실바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현실에서 주장하고 싶었던 역사관을 대신 말하게 하였다. 라이문두 실바의 꿈이란 아마도 주제 사라마구의 꿈은 아니었을까.

현재란 인류 탄생으로부터 바로 1초전까지의 날갯짓으로 만들어진 모든 감각들이다. 그래서 현재 역시 역사이며, 우리 모두는 역사 속 인물들의 피를 이어받아 숨 쉬고 있는 생명체들인 셈이다. 어쩌면 역사서 자체는 슬픈 순간과 황홀한 순간을 지닌 개개인들의 역사를 보여주기에는 완벽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 예술이 탄생하여 그들을 대신해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창밖에 백발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간다. 현재를 호흡하며 거대한 역사가 허리를 굽힌 채 걸어가고 있다.

<리스본 쟁탈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교정자 라이문두 실바는 리스본에 살고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는 옛날 무어인들이 살던 도시 밀라그르 드 산토 안토니오 거리의 한 건물에 산다. 나이는 벌써 50이 되었지만, 아직 독신이다.

어느 날 라이문두 실바는 출판사 제작부의 모니카로부터 '리스본 쟁탈전'이라는 책을 교정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삶에 대해 감각 없이 살아온 그는 역사책을 읽으면서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책 내용은 리스본에 처음 정착한 장님 무에진이 뾰족탑으로 올라가 신자들에게 모스크로 기도하러 오라고 외친부분을 시작으로 여러 사건들이 이어진다.

라이문두 실바는 문뜩 책을 쓴 자가 무예진이 처음 땅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과 시간 등을 쓰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러던 중 그는 마치 무엇에 홀린 듯 같은 줄을 계속 읽는다. 십자군이 포르투갈인의 리스본 함락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는 그 부분을 교정하기에 이른다. 십자군이 포르투갈인의 리스본 함락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교정 기간이 끝나고 모니카가 교정 원고를 가지고 갔다. 라이문두 실바는 잘못된 교정에 대해 출판사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며칠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직접 출판사로 간다. 출판사에 도착하자 마침 책의 저자와 여러 관계자들이 그를 추궁하며 왜 이런 잘못을 저질렀냐고 묻는다. 그가 진한 글씨로 눈에 띄게 '않을'이라는 글자를 적어 넣었기에 일부러 썼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글자가 발견된 것은 이미 책이 모두 인쇄된 다음이어서 출판사는 책마다 정오표를 첨부해야 했다.

책의 저자는 라이문두 실바가 피곤해서 실수를 한 것으로 보고 잘못을 용서한다. 그 와중에 라이문두 실바는 새로운 출판사 관계자인 마리아 사라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정오표가 첨부되지 않은 유일한 책 한 권을 선물로 준다. 라이문두 실바는 마리아 사라에게 정신적 혼란으로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며 용서를 구하고, 이 잘못된 책 한 권을 자신에게 주는 이유를 묻는다. 여자는 남자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러한 일탈 행위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에게 십자군이 포르투갈인의 리스본 함락을 돕지 않았다는 사실을 토대로 새로운 역사를 써보라고 권유한다.

처음에는 얼떨떨하게 생각하던 라이문두 실바는 점점 자신만의 역사서를 쓰기 시작한다. 우선 그는 리스본에서 일어날 일들을 새롭게 각색하기 위해 온갖 역사서와 신빙성 있는 문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각색을 한다. 마침내 십자군이 등장하는 부분에 이르렀다. 그는 십자군을 두 편으로 갈라 포르투갈인들을 도와 무어인들을 리스본에서 쫓아내고 기독교로 도로 개종시켜 하느님께 봉사해야 한다는 침략 찬성 입장과, 하느님이 보시기에 그런 봉사는 다른 것에 비해 열등하다는 침략 반대 입장을 구상한다.

그러다 자신의 일탈행위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침략 반대 입장을 우세하게 만든다. 이어 십자군 내에서 침략을 반대하는 여러 이유로 이 새로운 전쟁에서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경우 주님께서 틀림없이 기분이 상하실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결국, 전투에는 십자군의 도움 없이 포르투갈인들만 나서게 된다. 라이문두 실바는 군대 배치, 세부 전략도 새롭게 구상한다. 새롭게 구상되는 '리스본 쟁탈전'은 이미 알려진 결말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말이 날 때까지 벌어진 일들만 달라진다. 또한 그는 역사기록 속의 빈틈들에 관한 이런저런 추측 후 현실 속의 인물들을 역사적인 빈틈 속에 떨어뜨리기로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 새는 나이인 라이문두 실바는 일주일에 한 번씩 스스로 머리 염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서를 쓰는 도중에는 염색을 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본 여러 장소를 역사서에 집어넣고, 언덕에서 만난 개도 역사에 집어넣는다. 그러다가 문뜩 출판사에서 자신에게 새로운 역사서를 써보라고 제시한 마리아 사라를 떠올린다. 그는 마리아 사라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3년 전 남편과 이혼했고, 최근 만나던 남자와는 석 달 전 헤어진 상태였다. 현재는 결혼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화 통화를 하며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던 라이문두 실바와 마리아 사라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이후 둘은 만나서 사랑도 나누며 연인사이로 발전한다.

그는 마리아 사라와의 사랑이야기도 자신의 역사서에 집어넣는다. 역사서 내에서 자신은 전투를 이끄는 대장 모게이므가 되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오우로아나라는 여인과의 사랑을 펼쳐나간다. 현실의 에피소드가 첨가된 역사서는 무어인들이 최후로 지키는 탑을 포르투갈인들이 정복해 함락하면서 끝이 나고, 라이문두 실바는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며 마리아 사라에게 자신의 역사서를 읽어준다.

덧붙이는 글 | <리스본 쟁탈전>/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해냄출판사/ 2007.



리스본 쟁탈전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해냄(2007)


태그:#주제 사라마구, #리스본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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