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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마을 입구에 있는 마천목장군 도깨비상. 김성범씨는  도로 왼쪽에 보이는 작은 도깨비를 먼저 제작해 세웠다. 마천목장군은 도깨비들의 도움으로 어살을 막아 고기를 잡고 효도를 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도깨비마을 입구에 있는 마천목장군 도깨비상. 김성범씨는 도로 왼쪽에 보이는 작은 도깨비를 먼저 제작해 세웠다. 마천목장군은 도깨비들의 도움으로 어살을 막아 고기를 잡고 효도를 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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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난 산속에서 살겠다. 사람하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하고 부딪히며 살아요. 어쩔 수 없이 사람하고 부딪히며 살 팔자인가 봐요."

"왜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이 골짜기에 들어와 도깨비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는가?"라고 묻자,  김성범(52세)씨가 대답한 말이다. 회계사이기도 한 김씨는 전남 곡성에 있는 '섬진강 도깨비마을' 촌장이다.

덥수룩한 수염에 개량한복을 입은 모습이 친근한 느낌을 주지만 범상치는 않다. 넥타이를 차고 목에 힘을 주고 살아가는 요즘 세태와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왜 사람이 싫었는지 궁금해 연유를 묻자 그가 한숨을 쉬며 잠깐 먼 산을 보다가 얘기를 시작했다. 

곡성 도깨비마을 촌장인 김성범씨
 곡성 도깨비마을 촌장인 김성범씨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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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가 가지고 다니는 도깨비 방망이는 소나무에 혹처럼 생긴 부엉이 방귀라고 설명하는 김성범씨
 도깨비가 가지고 다니는 도깨비 방망이는 소나무에 혹처럼 생긴 부엉이 방귀라고 설명하는 김성범씨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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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싫어지게 된 계기는 힘든 가족사에서 비롯됐어요. 3년 동안 사람이 없는 곳을 찾다가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됐어요. 이곳에서 글 쓰고 조각하며 살려고 들어왔죠. 그런데 웬 도깨비냐고요? 제가 도깨비를 연구하려고 해서 온 게 아니라 도깨비가 저를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환상과 호기심, 상상력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도깨비마을은 섬진강가에 있다. 전남 곡성의 섬진강 기차마을 역에서 구례방향으로 6㎞쯤 내려가다 강 건너 지리산 쪽을 바라보면 강가에 커다란 도깨비 모양을 한 조각상이 나온다.
도깨비전시관 모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천여개의 도깨비 조각상이 있다
 도깨비전시관 모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천여개의 도깨비 조각상이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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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에서 1㎞쯤 산속으로 들어간 외딴 곳에 도깨비마을을 조성했다. 현재 1천여 마리의 도깨비가 전시된 도깨비마을은 교육과학기술부 평생학습대상 장관상을 수상(2009년)했다.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2012년) 받아 동아리활동이나 방과후 학습차 이곳을 방문하는 학생들의 배움터가 되고 있다.

도깨비 연구, 도깨비 주제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 계기

도깨비가 김성범씨의 삶속으로 들어온 계기는 광주일보 신춘문예(2001년)에  당선되면서 부터다. 거기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도깨비살이 인연을 더했다. 도깨비살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윗돌로 강물을 막은 둑으로 도깨비들이 하룻밤 만에 뚝딱 강물을 막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기차마을이 있는 도로를 따라 리어커를 끌고 나무하러 다녔던 시절에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도깨비살에 가면 팔뚝만한 고기가 넘쳐났다"고 했다. 도깨비살이 시작되는 지점은 단단한  바윗돌이 솟아있고 그 바로 아래로는 물살이 소용돌이쳐 강바닥을 깊이 파 소(沼)가 형성됐다. 자연히 물이 많고 깊어 고기들이 많이 산다.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제58회 아동문학평론 동시 부문 신인상과 제3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지금은 도깨비마을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인형극을 공연하며 산다. 그가 쓴 책으로는 <숨 쉬는 책, 무익조>, <도깨비살>, <비밀로 가득 찬 세상>, <뻔뻔한 칭찬통장> 등이 있으며 그의 그림책 <책이 꼼지락 꼼지락>은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도깨비전시실에는 김성범씨가 모아놓은 사료가 많이 있다. 사료에는 우리 전통기와집 처마와 문고리 등에 있는 도깨비 문양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다
 도깨비전시실에는 김성범씨가 모아놓은 사료가 많이 있다. 사료에는 우리 전통기와집 처마와 문고리 등에 있는 도깨비 문양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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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깨비살이 있는 강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깨비인 마천목장군 상을 세웠다. 도깨비살은 도깨비마을 전설이 있는 곳 중에서 풍광이 가장 좋은 곳이다. 섬진강기차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는 와본 사람만 안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맑은 물을 따라 가장자리에는 자전거길이, 그 위로는 자동차가, 조금 더 위로는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차가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리는 곳이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도 이만큼 아름답지 않다.

호사다마라고 사람일이 어디 좋은 일만 생기는가?  그가 어느 정도 유명해지고 도깨비마을을 구체화하기 위해 강변에 도깨비대장 조각상을 세우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들어 세운 도깨비가 우리나라 도깨비가 아닌 일본 도깨비라는 항의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14번이나 나오는 도깨비 이야기와 그림을 참조해 만들었는데 일본 도깨비 '오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뿔이 두 개란 것도 몰라요?"
"우리나라 도깨비는 모습이 없는데 당신이 뭔데 맘대로 만들어놨죠?"
"도깨비방망이가 철퇴인 줄 아세요?"

항의전화를 한 사람 중에는 도깨비를 연구하는 학자도 있었다.

"1학년, 6학년 국어책과 미술책에 나와있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나 그림은 아예 일본 10대 설화인 오니예요."

여러 통의 항의 전화를 받은 그는 정확한 자료를 남기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해 책으로 펴냈다. 슬프게도 우리나라에는 도깨비라고 증명해 줄 그림이 한 장도 없다는 걸 안 그는 자신의 주장이 틀렸을지라도 후손들을 위해 자료를 남겨두기로 했다.

"제 주장이 틀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우리 도깨비를 찾는 일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는 일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언제부터인가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합니다. 그들이 오랑캐라고 불렀던 동이족이며, 도깨비의 시조인 '치우'를 대대적으로 발굴 복원하고 있습니다. '치우'가 중국의 역사가 되면 한반도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역사가 되니까요."

최초의 도깨비인 치우천왕은 우리민족인 동이족의 왕

그는 도깨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설명하며 우리의 역사 찾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성범씨의 설명은 이렇다.

치우천왕 상. 중국황제와의 73차례 전쟁을 전승으로 마감해 전쟁신으로 숭상받고 있다. 김씨는 도깨비 뿔이 치우천왕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치우천왕은 동이족으로 우리의 조상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치우천왕을 대대적으로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치우천왕이 중국인의 조상이 되면 한반도인은 자연스럽게 중국인의 후손이 된다.
 치우천왕 상. 중국황제와의 73차례 전쟁을 전승으로 마감해 전쟁신으로 숭상받고 있다. 김씨는 도깨비 뿔이 치우천왕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치우천왕은 동이족으로 우리의 조상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치우천왕을 대대적으로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치우천왕이 중국인의 조상이 되면 한반도인은 자연스럽게 중국인의 후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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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700년전에 있었던 '치우천왕'은 단군이전의 나라 왕으로 고구려의 전신인 구려 국가의 14대 왕입니다. 치우천왕은  중국인들의 시조인 화하족 황제와 10년 동안 73차례의 전쟁을 모두 이겼어요. 싸웠다 하면 모두 지고 말았으니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치우천왕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더군다나 생전 처음 보는 뿔난 투구까지 썼으니 괴물로 보였겠지요"

치우는 중국 황제와 전쟁할 때 삼황오제 중 하나인 '염제'의 모습을 하고 전쟁에 나섰어요. 염제는 농사의 신으로 사람 몸에 소머리를 가진 신입니다. 이런 기록이 중국 사서인 사마천의 <사기>, <산해경>, <술이기>에는 치우천왕의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으려들어요. 일제가 우리의 간도땅을 중국에 넘겨버렸잖아요. 일제 때 공부한 식민사관 학자들이 치우천왕을 인정하지 않아요."

치우는 불을 잘 활용해 철제무기를 만들고 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섰으니 상대방은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 결과 치우천왕은 전쟁신이 되었고 그때부터 중국과 우리나라 장수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치우천왕한테 제사를 지냈다.

신이 되어버린 치우천왕이 격이 떨어지게 된 것은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다. 불교에서는 도깨비를 부처님 아래에 두어 거느리고, 조선시대 유교가 들어오면서부터는 아예 설자리를 잃어 설화가 되어버렸다.

말 그대로 신에서 신화로, 신화에서 설화가 되어 마지막에는 민간신앙이 되어버렸다. 이때부터 도깨비는 남성이 아닌 여성의 모습을 하고 힘없는 존재가 되어 친근한 서민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는 도깨비 뿔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도깨비 뿔이 하나라고 고집하는 분이 답답합니다. 정확한 실체가 없는데 시대에 따라 점점 변하는 게 아닙니까?"

도깨비의 유래...이제는 문화예술로 접목해야

김성범씨가 도깨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성범씨가 도깨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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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전시관에 있는 도끼든 도깨비 상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줬다. 그 도깨비 상은 실상사 백장암 탑신에서 탁본해 만들었다. 도깨비는 '도끼를 든 아비'가 '도깨비'가 되었는데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에서는 도끼를 도치라 불렀고 '도치를 든 아비'가 '도채비'로, '도채비'가 '도깨비'로 음운 변화했다는 주장이다. 내 어릴 적에는 도채비라고 불렀지 도깨비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도깨비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학교에 다니며 교과서를 접하면서부터다.

"우리 조상이 준 최고의 선물은 한글과 도깨비"라고 말하는 그는 "괴물이지만 친근한 이미지와 인격을 가지고 있고 태생자체가 사람에 의해 탄생했으니 이를 문화예술에 접목하자"고 주장한다.

돈 꿔달라고 말하는 익살맞은 도깨비상
 돈 꿔달라고 말하는 익살맞은 도깨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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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먹고, 춤추는 도깨비는 금은보화도 만들고 오래된 물건이 변신해서 도깨비가 됐다고 전해내려와요. 솥뚜껑, 몽당 빗자루 등 오래된 물건이 변해 도깨비가 됐다고 하니 환경보전과 연관이 있고 생태계에도 관련이 있으니 친근한 이미지를 문화예술에 접목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도깨비를 친근한 이미지의 팬시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거예요"

그는 도깨비마을에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체험학습과 강의, 노래공연, 동요, 인형극, 음악공연, 숲체험, 도깨비 인형만들기, 탁본뜨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우리민족의 정체성 찾기에 안간힘을 쏟는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도깨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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