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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우리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아토피를 무서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론을 통해, 주변을 통해 접한  아토피에 대한 정보는 무시무시하기만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 둘째는 아토피 피부염을 갖고 있었다.

처음 증세를 보인 것은 3살경이었다. 한의원에서 진단을 받고 조심해야 할 음식들을 숙지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발라줄 연고와 로션들을 한아름 안고 돌아왔다. 사실 아토피라는 걸 알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음식과 기름진 음식은 먹이지 않은 터라 식생활 조절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사실 아토피라는 걸 알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음식과 기름진 음식은 먹이지 않은 터라 식생활 조절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사실 아토피라는 걸 알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음식과 기름진 음식은 먹이지 않은 터라 식생활 조절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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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받기 전보다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한의원에서 받아온 연고를 두 달 정도 열심히 발라주었더니 얼마 안 가 피부는 깨끗해졌다. 내심 자랑스러웠다. '아토피, 별 거 아니네'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러나 그것은 예고에 불과했다. 아토피와의 한 판 승부는 그 다음 해에 시작되었다. 4살이 막 시작된 2월경 아이는 그 전보다 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밤에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한두 번 밤에도 일어나 긁기 시작하더니 예전과는 다르게 밤에 매우 힘들어 했었다.

한의원을 다시 찾아 치료를 계속했고, 연고도 열심히 발라 주었다. 그러나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힘들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밤에 일어나 우는 아이를 달래며 긁지 말라며 연고를 발라 주는 것 뿐이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긁지 말라고 화도 냈다가 같이 울어버리는 순서를 거치면 조금씩 아침이 밝았다. 남편이랑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 몸 구석 구석에 자리 잡은 아토피 흔적

아이의 괴로움을 보면서도 양의를 찾아가는 것을 꺼렸던 이유는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괴로워하는 아이를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밤에라도 아이를 재워야 할 것 같았다. 아이를 데리고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는 당연하게 먹는 스테로이드와 바르는 스테로이드를 처방해 주었다.

눈물을 머금고 약을 먹였다. 아이는 편안해 했다. 잠도 잘 잤고 다시 밝고 개구쟁이였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숨 돌렸다. 진료시간에 의사에게 스테로이드를 먹이는 게 불안하다는 말을 했지만 의사는 앞으로 아이의 상태를 보면서 점차 스테로이드의 양을 줄일 것이며, 지금 처방하는 양은 지극히 소량이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유아 아토피에 대한 설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유아 아토피에 대한 설명.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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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스테로이드는 무서웠지만 의사를 따라야 했다. 스테로이드의 양을 줄이다 조심스레 약을 끊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이는 다시 예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눈 앞이 캄캄했다. 약을 끊고 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스테로이드를 다시 먹이는 건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다시 한의로 돌아갔다. 아이도 나도 한참 힘들었을 그 때 했던 결심은 아토피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조급해 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이겨내자는 게 그 때 최고의 목표였다. 그러나 결심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얼마나 긁었는지, 오늘은 어제보다 몇 시간을 더 잤는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곤 했다.

일단 가평 친정으로 피난 아닌 피난을 떠났다. 그 곳에서 아이도 나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3월 말의 가평은 아직 녹음이 짙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바라보는 애처로운 눈빛들이 사라졌기 대문이다.

사실 그때 우리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못했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아이는 팔 다리 접히는 곳 뿐만 아니라 목 뒤편, 눈 가에도 아토피의 흔적이 난무했다.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어머, 너 아토피구나', '아이고, 애가 왜 이래' 사람들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는 위축되었고, 불쌍하다는 눈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가평으로 피난을 떠난 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나니 한결 살 것 같았다.

조금씩 편해진 아이, 그러나...

그러나 가평이 잠깐의 안식처는 될 수 있지만 그곳의 생활을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단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병원을 옮기고 아이에 대한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아이는 우유와 계란에 반응하는 알러지성 아토피 피부염이었다. 이제 아이에게 우유와 계란은 금지된 음식이 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 가족은 어떤 음식 재료를 사더라도 봉지의 뒷면에 나온 원재료를 꼼꼼히 살피는 게 버릇이 되었다. 한글을 알지 못하던 첫째도 장을 보러 가면 과자봉지의 뒷면을 살피고 있었다. 그나마 생협은 모든 원재료를 공개하는 재료가 많아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이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조금씩 편안하게 잠도 자기 시작했다. 세상이 무지갯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많이 흘러 이제 밖에 나가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열심히 밖에 나가서 놀았다. 어느 날엔가 놀이터 저쪽에서 놀던 아이가 나에게 뛰어왔다. 내 손을 붙잡고 자기가 놀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자꾸만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첫째와 있던 나는 아이의 행동이 이상해 왜 그런지 물어보고 있었는데 한 젊은 엄마가 이쪽으로 오더니 자기 아이가 쿠키를 먹고 있는 걸 옆에서 바라보고 있기에 쿠키 하나를 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이는 "아토피 있어요"하고 나에게 도망을 갔다고 한다. "아이가 절제력이 대단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젊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네가 그 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그 힘든 시간을 네가 버틴 거 였구나.'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아이에게 뽀뽀 선물을 수도 없이 주었다. 대견하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속으로 울고 또 울었다.

아토피인 둘째 때문에 글을 잘 모르는 첫째도 마트에 가면 과자 뒷면을 살펴본다.
 아토피인 둘째 때문에 글을 잘 모르는 첫째도 마트에 가면 과자 뒷면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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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밥 먹는 게 부끄러워요"

어느덧 아이는 5살이 되었다. 지난해는 나도 아이도 힘들고 지친 해였지만 올해는 많은 것들을 새롭게 시작하는 해였다. 아이는 첫째가 다니던 유치원에 자연스레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유치원 건물 뒤편으로 작은 동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매일매일 동산으로 산책을 나갔고, 직접 심고 키우고 먹어보는 활동이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곳이기도 했다.

마음 놓고 맡길 곳이 있다는 게 안심이 되면서도 엄마하고만 지내다가 단체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가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하루 두 시간만 수업을 진행했던 적응기간이 끝나고 정식으로 유치원 생활을 시작했다. 첫 일주일에 다른 아이들은 간다 안 간다 울고불고 실랑이를 벌이곤 한다. 그 사이 우리 아이도 엄마하고 있고 싶다고 한 적은 있으나 그럭저럭 적응을 잘 하는 것으로 보였다.

'역시 누나가 있으니 적응이 빠른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 두 번째 주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느닷없이 아침에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것도 버스 타기 전에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안아서 차에 태워 보내긴 했지만 하루 종일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가 하원을 한 후, 무릎에 앉혀놓고 물어보았다.

"유치원에 왜 가기 싫어? 거기 가면 친구들도 있고 재밌는 활동도 많이 하잖아." 한동안 말이 없던 아이는 "밥 먹는 게 부끄러워요"라고 했다. 이건 뭘까? 아이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짚이는 게 있긴 했지만 일단 선생님과 상의를 해보기로 하고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선생님께는 보다 구체적으로 의사표시를 했던 모양이다. 친구들과 반찬이 달라서 밥을 먹기 싫다고 말했다고 한다. 예상했던 대로다. 사실 아이가 못 먹는 반찬이 나오는 날은 따로 도시락을 챙겨서 보냈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반찬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게 창피해졌고 그래서 유치원에 가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어린 네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또 한 번 가슴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다. 선생님의 특별조치와 좋아하는 반찬 넣어주기 등으로 '유치원 가기 싫어요'는 무마되었지만 아이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을 것이다.

가끔 남편과 지난 날을 회상하며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되새기고 있다. 물론 우리 아이의 아토피가 완치된 것도 아니고 어떤 음식이든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그런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을 살기에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나도 저거 먹고 싶어요'라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이 있기에, 오늘보다 나아진 내일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고맙다 아가야.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태그:#아토피, #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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