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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2월 초, 어느 날이었다. 이른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있던 그때, 페이스북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이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김광진(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메시지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랬다.

김광진 의원은 자신이 현재 속해있는 상임위가 국회 국방위인데 군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가 의원실을 많이 찾아오는데 그 분들의 억울한 한을 해결할 방안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군 사망사고와 관련하여 나름 역할을 해 온 당신이 우리 방에 와서 일을 해 보시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지난 98년 사망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중장이 지난해 5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권총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는 군수사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항변하고 있다.
 지난 98년 사망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중장이 지난해 5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권총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는 군수사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항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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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광진 의원의 제안을 받은 후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결국 그 뜻을 수용하여 지금까지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김광진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단순했다. 1998년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 사건 이래 나는 군 사망사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300명에 달하는 국회의원 중 군 사망사고 문제에 대해 해결 의지를 갖는 이가 왜 하나도 없는지 개탄하는 글을 여기저기에 기고했다. 이러한 지적에 화답해온 이가 바로 김광진 의원이었던 것이다. 몇 가지 이유로 고민하다 내가 결국 함께하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이후 나는 군 사망사건 피해 유족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었고 그러다가 5개로 흩어져 있던 유족 단체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제안을 했다. 모두가 다 같은 아픔을 가졌지만 사건 발생 시기에 따라 조금씩 이해관계가 달랐던 유족 단체를 통 크게 하나로 묶어내자고 제안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약한 우리 힘으로 저 거대한 군 권력과 맞서 싸울 수 없다고 설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새삼 내가 알게 된 우리나라 군 사망사건의 현실은 참으로 끔찍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방치된 군인 시신과 유해에 대한 진실은 더욱 그랬다.

15년째 군 병원 냉동고에 방치된 어떤 군인

1999년, 군 복무중인 군인이 사망했다.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시신은 국군 대전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방치되어 있다. 이유는 하나였다. 군 헌병대 수사 결과 '자살'로 처리한 그의 죽음에 대해 부모가 자살을 인정할 수 없다며 그 아들의 시신 인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군 입대한 아들이 어느 날 이유 없이 왜 자살을 했냐며 그 부모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일주일이 지났으며, 한 달, 일 년이 지나면서 어느덧 15년이 흐른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장기 미인수 영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장기 미인수 영현으로 불리는 군인 시신은 8월 13일 현재 모두 22기나 있다.

더 끔찍한 현실은 '장기 미인수 유해' 현황이다. 사망한 아들의 시신 자체를 인수하지 않은 유족과 달리 '미인수 유해'는 일단 장례는 치른 상태를 의미한다. 즉, 시신을 화장한 후 그 뼈를 유골함에 담아 군 병원 창고에 보관중인 상태에서 유족이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장례까지 치른 유해가 군 병원 창고에 방치되어 있는 것일까.

유족들의 호소는 대부분 비슷했다. 처음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후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정신이 없을 때 유족에게 달콤한 말로 속삭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아들이 사망한 부대의 군 간부다. 그들은 대부분 유족에게 "일단 장례를 치러라, 그러면 부대 차원에서 순직 처리할 수 있도록 조용히 도와주겠다"고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했단다. 그러면 유족은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 버티고 싸워봤자 거대한 군을 이길 자신도 없다. 그러니 일단 믿고 화장을 한 후 그 유해를 군 병원 창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하지만 믿고 기다렸던 군 간부의 연락은 다시 오지 않는다. 결국 그제야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 된 유족은 그 약속을 지키라며 유해 인수를 거부하게 된다. 그렇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기지 못한 유해만 2014년 2월 28일 현재 160기나 된다. 바로 그렇게 방치된 유해 중 가장 오래된 이가 1971년 사망한 육군 하사다. 무려 43년째 군 병원 창고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방치된 시신과 유해를 합치면 우리 군이 보관중인 영현은 모두 182기.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 이 참혹하고 끔찍한 우리 군의 인권 현실 앞에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아들 자살 인정 못하겠단 유족에 '증거' 찾으란 '군'

국방위원들과 간담회 갖는 28사단 장병들 국회 국방위원회 황진하 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윤모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 현장조사를 위해 지난 5일 경기도 연천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 내무반을 방문, 현장조사 후 장병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국방위원들과 간담회 갖는 28사단 장병들 국회 국방위원회 황진하 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윤모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 현장조사를 위해 지난 5일 경기도 연천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 내무반을 방문, 현장조사 후 장병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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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국민들은 엽기적인 가해 사실 하나 하나에 전율했다.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인간이 어찌 인간에게 이처럼 극악한 범죄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끔찍한 일을 당한 윤 일병을 향해 "차라리 윤 일병이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윤 일병처럼' 군에서 자식을 잃은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다.

유족들은 말한다. 윤 일병은 그래도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냐고. 하지만 자기 자식들은 왜 죽었는지, 어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지금까지 살고 있다며 울부짖는다. 그러면서 이들 부모들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군에서는 누가 목을 매었고 누가 총의 방아쇠를 당겼냐는 것을 기준으로 자살, 타살을 결론 내린다. 그래서 '스스로 목을 매고,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다'면 자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족은 다르다. 설령 군 수사결과처럼 스스로 목을 매고 방아쇠를 당겼다 해도 유족은 왜 그렇게 목숨을 끊었는지 그 '진짜 이유'를 밝혀달라고 한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러한 유족 불만을 해소해주지 않는다. 가정적, 개인적 요인을 언급하며 부대적 요인은 회피한다. 만약 이러한 군 수사당국의 결론에 유족이 불만을 제기한다면 어찌 될까. 군 당국은 "그럼 유족이 직접 그 증거를 제시하라"고 답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유족이 어떻게 그 증거를 확보하여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번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은 '차라리 지독하게 운이 좋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 사회가 문명국가라면 더 이상 이런 억울한 죽음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족에게 일일이 물었다. 왜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거냐고. 그러나 유족에게 돌아온 답은 간결했다. 국가가 징병으로 끌고 갔고 거기서 목숨을 잃었으니 응당 국가가 그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2013년 9월, 김광진 의원실은 바로 이 같은 유족의 요구를 담아 법안 3개를 대표 발의했다. 지금 윤 일병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정말 필요한 법, 바로 이 법이다.

안장법, 보상법, 진상규명법... 군 인권 보장 3법 통과돼야

첫 번째 법안은 징병된 군인이 의무복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할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순직으로 예우하여 그 시신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다. 이는 순직 대상을 규정하는 현행 '군 인사법'에 '의무복무중 사망한 자'라는 아홉 글자를 추가하는 일부 개정 법률안이다. 이를 통해 징병한 군인이 목숨을 잃으면 국가가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군인의 생명이 함부로 다뤄지지 않게 했다. 또한 아들을 잃은 부모가 그 사망 원인을 입증해야 순직 처리 받을 수 있는 현재의 잘못된 방식을 바꿈으로써 그 고통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두 번째 법안은 2009년 12월 해산된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대신할 민관 합동의 외부 조사 기구를 구성하는 법안이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그것인데 이를 통해 군인이 사망할 경우 그 유족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 법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이번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에서도 확인된다. 군 수사당국은 이 사건의 진짜 진실을 초기에 은폐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군에 불리한 내용을 어찌 군 당국이 만천하에 다 공개하겠는가. 이처럼 공정하지도, 또한 중립적 일 수도 없는 군의 일방적 수사는 안 된다. 이러한 잘못된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억울한 군인의 죽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유족들은 이 같은 민관 합동 외부 진상 조사기구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유족 보상법'이다. 현재 국방부는 의무복무중 군인이 사망하면 5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것으로서 국가의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벽돌로 자동차를 내리쳤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어찌되는가. 실수로 내리쳐 차를 손상시키면 그 물적 피해를 완벽하게 물어야 하고 거기에 고의성이 있으면 형사처벌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귀한 아들을 잃은 유족에게 고작 500만 원을 쥐어준 뒤 책임을 모면하려고 하다니... 이런 사실을 알고 누가 군에 아들을 보낼까. 따라서 김광진 의원실은 이처럼 잘못된 국가 책임을 바로잡고자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담긴 보훈 내용을 유사하게 담은 '의무복무중 사망 군인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를 통해 귀한 국민의 아들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국가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한다.

의무복무중 사망 군인 목숨 값, 아주 비싸야

정문 앞 항의하는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항의서한 전달을 위한 진입이 가로 막히자 유가족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
▲ 정문 앞 항의하는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항의서한 전달을 위한 진입이 가로 막히자 유가족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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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을 접한 국민들의 충격은 너무 크다. 아들을 둔 부모라면, 더구나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의 부모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군대에 아들 보낸 죄인'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이처럼 이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들끓자 국방부 역시 별별 인권 정책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정부는 이번에도 전처럼 온갖 부질없는 '사기 정책'만 내놓고 있다.

군대문화의 근본을 바꾸지 않다면, 그 어떤 대책도 제대로 된 대책이 될 수 없다. 사병의 고민을 상담하라며 군이 운영하고 있는 '헬프 콜' 실태만 봐도 그렇다. 더구나 그 전화 부스 앞에 군 당국이 붙여 놓은 스티커 문구는 참 기가 차다. "나는 불평불만을 말하지도, 듣지도 않겠다." 국방부의 행태가 참으로 경악스럽다.

이런 발상을 가진 군이 무엇을 바꿀 수 있으며 무슨 인권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의무복무중인 군인이 사망할 경우, 국가가 그 대가를 아주 무겁게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500만 원 달랑 주고 끝내서는 제2, 제3의 윤 일병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그리고 스스로 아까운 목숨을 끊는 사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군인 사망 시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무거워진다면, 지금처럼 군생활에 부적합한 아이들을 현역으로 끌고 가는 병력 수급 대책을 유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지금처럼 그냥 죽을 때까지 군대에 방치하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조기 전역 시키는 방안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김광진 의원실에서 대표 발의한 위 세 가지 군 인권 법안은 결코 우리 멋대로 만든 법이 아니다. 182기에 이르는 시신과 유해의 인수 거부하며 지금 이 시각에도 눈물과 절규로 싸우는 그 유족의 간절함이 요구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을 통과시켜 저 안타까운 죽음들을 명예롭게 해 달라.

이는 지금까지 죽어간 이들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우리 군에서는 평균 4일에 한명 꼴로 자살 군인이 발생하고 있다. 2013년 한 해에만 79명이 자살로 처리됐다. 이러한 비극은 군대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미래의 불행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 법안은 필요하다. 아들을 잃고 억울함에 절규하는 그 부모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현재의 잘못된 제도는 이번 기회에 바뀌어야 한다. 김광진 의원실은 이 3개 법안 통과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고상만 기자는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보좌관입니다.



#윤 일병 사건#김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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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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