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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Seeing is Believing 유소년 축구 클리닉’
 2012 ‘Seeing is Believing 유소년 축구 클리닉’
ⓒ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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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2012년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주최로 열린 'Seeing is Believing 유소년 축구 클리닉'. 시각장애를 가진 유소년들에게 무료로 축구를 가르쳐주는 수업이었는데, 여기서 찍힌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골대의 위치를 알려주며 독려하던 한 선수. 그 사진을 통해 나는 시각장애인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눈이 안 보이는데 왜 축구를 하려고 하는 걸까?"
"야, 이 멍청아. 안 보이면 축구하면 안 되냐? 하고 싶으니까 그냥 하는 거지."

지인의 면박에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내가 너무 무지하다는 것을. 그런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기에 관련 서적과 인터넷을 찾아보며 조금씩 시각장애인 축구에 대해 알아나갔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축구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히딩크 재단에서 만든 '드림필드 풋살구장'을 비롯해 지자체기관에서 운영하는 전용구장들. 하지만 비장애인에게는 탐방이나 체험이 제한되어 있어 나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직접 해봐야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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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눈에 들어온 글귀.

'송파 시각장애인 축구장은 시각장애인 축구체험활동을 통해 시각장애인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현영 대리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현영 대리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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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설립되었다는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은 서울시의 지원으로 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다산복지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이 축구장에 단 한 명의 직원인 신현영 대리가 하루 중 제일 더울 때라는 오후 2시에 나의 체험교육을 허락해주고 진행해주었다.

교육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정도 소요되고 크게 시각장애인와 시각장애인 축구에 대한 이론과 체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각장애인 축구를 알기 전에 우선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우선입니다."

안대를 해야만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안대를 해야만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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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영씨의 말대로 안대를 하고 눈을 가린 채 하얀색 지팡이를 짚고 축구장 근처 언덕을 따라 잠깐 걷는데 십여 분이 걸렸다.

"바닥에 깔려있는 점자가 느껴지세요?"

평소 공공기관에 노란색으로 깔려있던 보도블록이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것임을 처음 깨달았다.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는 점자블록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는 점자블록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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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원형은 길이나 지형물이 시작되고 끝나는 걸 알려주고요 일자 모양은 길이 진행된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렇게 간단한 체험을 한 뒤 본격적으로 시각장애인 축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 경기영상을 보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생각보다 빠르고 현란한 선수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일반 축구와 드리블이 좀 다르죠? 한 발로 드리블을 하면 공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왼쪽 발과 오른쪽 발 안쪽을 번갈아 이용해 드리블을 합니다."

소리가 나는 축구공
 소리가 나는 축구공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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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을 위한 안전펜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전펜스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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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20m 세로 40m 규격의 경기장에서 5명이 한 팀이 되어 치러지는 시각장애인 축구는 장애인 올림픽 정식종목인데 금속조각이 들어있어 소리가 나는 공을 가지고 전·후반 각각 25분씩 경기를 한다. 보이지 않는 선수들을 배려해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골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가이드 또한 배치된다. 그리고 골키퍼를 제외한 4명의 선수들은 다이아몬드 대형 혹은 앞뒤로 2명씩 정렬해 축구를 하는데 수비수는 공격수를 마크할 때 자신이 주변에 있다는 걸 소리로 알린다.

"팀 파울과 개인 파울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각각 8m 와 6m 지점에서 PK기회를 얻게 됩니다. (단, 팀 파울의 경우 4회째부터) 시각장애인 축구의 규칙은 선수들을 배려하기 위해 세세한 조항들이 체계적으로 짜여 있어요.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죠. 지금도 조금씩 개정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두려움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게다가 거기에 수반되는 위험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은 맘껏 스포츠를 즐길 수 없다. 정적인 활동을 주로 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축구는 특별한 운동이라고 한다.

"자유롭게 방향 전환을 하며 뛰고 싶은 만큼 뛸 수 있는 스포츠는 축구가 유일하죠."

내가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는 자유. 그들이 오랫동안 잊어왔을 그 느낌을 축구가 찾아준다는 말에 무지했던 나의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답을 찾은 듯했다.

"열악한 환경 탓에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어 한국 시각장애인 축구는 현재 아시아 3,4위권으로 쳐졌어요. 개인적으로 아쉽긴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입니다."

시각장애인 축구경기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마침 찾아간 날은 평일이라 경기가 없었다. 비장애인이 그들의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는 걸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포기는 이르다. 인천에서 열리는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우리나라 선수들도 참가한다고 한다. 다소 생소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그들의 축구. '마음으로 보는 축구'를 올 가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느껴보는 건 어떨까?


태그:#시각장애인, #축구,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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